brunch

매거진 이런저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룸펜 Jan 25. 2017

Frindle : 좋은 교사란?

  미국의 한 소도시에 살고 있는 재기발랄한 소년 Nick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꼬장꼬장하기로 유명한 Granger 선생을 만나게 되다. 그녀는 language art(우리말로 굳이 번역하자면 언어 정도)를 가르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전통적 교사의 sterotype같은 분이라고 보면 되겠다.     


    대망의 첫 번째 수업시간, 선생이 숙제를 내주려는 걸 막으려 Nick이 회심의 질문을 던진다. Nick의 의도를 알아차린 Granger 선생은 Nick 스스로 질문에 대한 조사를 해서 발표하도록 시킨다. Nick의 패배. 그렇다고 순순히 포기할 녀석이 아니지. 발표를 최대한 길게 끌어 어떻게든 되치기를 시도한다. Nick의 작전을 알아챈 Granger 선생은 발표를 중단시키려 하고 다급해진 Nick은 무심결에 자신의 인생을 바꿀 질문을 던진다.


   Who says that d-o-g means the thing that goes 'woof' and wags its tail? Who says so?     


 역시나 Nick의 인생을 바꿀 Granger 선생의 답변.      

 

   You do, NIcholas. You and I and everyone in this class and this school and this town and this state and this country. We all agree.      


  선생은 언어가 어떻게 형성되고 전파되어 많은 이들이 이를 받아들이는가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Nick은 엉뚱한 곳에 꽂히고 만다. ‘You do, Nicholas.’ 선생의 이 한 마디에 소년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그리고 볼펜을 frindle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장난처럼 시작된 frindle이라는 단어는 Nick과 학교, 그리고 지역사회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사진출처 : http://blog.naver.com/anchorus/80193086662

  



  <Frindle>은 짧은 소설이다. 게다가 평이한 영어로 쓰여져 있어 고등학교 1학년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언어의 형성과 전파, 긔록 사회적 통용에 대한 과정을 그 어떤 이론서보더 더욱 매력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소설에서 주목한 이는 바로 Granger 선생이었다. 이 매력적인 노교사가 frindle이라는 단어를 둘러싼 소동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약간 진부하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주제인 ‘좋은 교사란 어떠해야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흥미로운 답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 http://blog.naver.com/anchorus/80193086662




   기꺼이 악당이 되기 : 주도권을 학생에게

  몇몇의 학생들이 pen이라는 단어 대신 frindle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을 때, 사전과 언어를 사랑하는 Granger 선생은 무척이나 고답적으로 반응한다. 누구라도 frindle이라는 단어를 쓰는 학생은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백 번 쓰라고 지시한다.       


   I am writing this punishment with a pen.     


  단어전쟁의 시작. Granger 선생이 악당을 자처하자 학생들은 되려 신이 나 펄펄 날라 다닌다. 일부러 선생에게 가서 frindle을 빌려 달라고 말해 자랑스럽게 벌칙을 받는 학생까지 생겼다. 게다가 벌칙으로 위 문장을 쓰면서 pen 대신 frindle이라고 쓰고 이를 자랑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런데 Granger 선생은 자신이 그런 벌칙을 내리면 학생들이 어찌 반응할지 몰랐을까. 심지어 pen 대신 frindle이라고 써도 별 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 이를 단순한 실수 또는 자포자기로 볼 수 있을까.      


  다들 예상하시겠지만 그렇지 않다. Granger 선생은 기꺼이 악당되기를 선택함으로써 아이들에게 일부러 주도권을 준다. 소설 초반 Granger 선생은 앞 뒤 꽉 막힌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교사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이 시대 교육의 가장 큰 화두 중의 하나인 학생에게 주도권을 넘기는 것을 자연스럽게 실천하고 있다.      


  장기적 비전

  사실 이 모든 소동은 선생의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그녀가 frindle이라는 단어를 쓰는 학생들을 처벌하기 시작하자 삽시간에 이 단어는 5학년을 넘어 전교생이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Grandger 선생이 이를 계획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 단어를 둘러싼 소동을 알게 된 기자의 뉴스 때문에 마을 전체에서 frindle이라는 단어가 통용되게 되고, 심지어 전국뉴스에서도 방송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선생이 이처럼 고의적으로 사건을 크게 만든 진정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frindle이라는 단어를 더 널리 퍼뜨려 이 단어가 진짜 단어가 되길 원했기 때문이다. 마치 로마의 박해로 기독교가 세계 종교가 된 것처럼.      


  소설 말미,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 그녀는 Nick에게 편지를 보낸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무슨 말이지? 그녀가 보내준 사전을 들춰 보던 Nick은 할 말을 잃어버린다. frindle이란 단어가 사전에 등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놀랍지 않은가. 하루, 일주일, 일년 단위 계획도 잘 세우지 못하는 우리의 교육현실에서, 자그마치 10년 앞을 내다보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Granger 선생의 안목은 참으로 부러울 뿐이다.      


  학문에 대한 사랑

  어떻게 그녀는 이런 식으로 하면 frindle이 진짜 단어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그것은 그녀가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언어가 어찌 형성되고 전파되는지 그리하여 하나의 사회적 약속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사전에 등재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런 무모한 처벌로 아이들이 frindle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도록 의도적으로 부추겼고, 조그만 소도시를 너머 미국 전역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게 만든다. 자신이 맡고 있는 과목에 대한 애정과 전문성이 교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자세히 살펴보기 그리고 격려하기

  그렇지만 여기에서 머물렀다면 Granger 선생을 좋은 교사 또는 스승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유심히 NIck을 살펴본다.      


  사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가장 많이 변한 것은 바로 Nick이었다. 언제나 아이디가 넘치고 이를 실천하는데 두려움이 없었던 그는 조심스러워졌다. 또다시 그런 평지풍파를 일으키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 급식의 문제점을 깨닫고 이를 해결할 방안까지 생각하지만 그는 주저한다. 그런 Nick의 변화를 Granger 선생은 재빨리 눈채챈다. 6학년 진급을 앞둔 어느 날, 그녀를 찾아온 Nick에게 그녀는 말한다.       


  But your idea was a good idea, and I have been very proud of the way you behaved-most of the time.     


  이 대목을 읽으며 짜릿했다. 꽉 막힌 전통주의자처럼 보이는 그녀가 철없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의 아이디어를 유연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처음부터 지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따뜻한 응원과 격려. 그보다 더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것이 또 있을까. Perfect timing! 선생과의 대화 후 Nick은 원래의 그 자신으로 돌아오고 다시 두려움없이 자신의 계획을 실천에 옮기게 된다.  이처럼 아이들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살피는 모습이 그녀를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닌 진짜 교사로 만드는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뭐 대강 눈치채쳤겠지만 나도 Granger 선생과 동종업계에 종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더욱 더 이 책이 각별하게 다가왔다. 물론 미국과 우리, 그리고 가르치는 학년이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이런저런 잡무와 입시라는 핑계로 내가 올바른 교사로서의 덕목을 잊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반성하게 되었다.      


  소설 마지막 부분, Granger 선생은 NIck에게, Nick은 Granger 선생에게 두 사람 인생에 오래오래 간직할 선물을 주고 받는다. 아름다운 사제동행의 모습. 혹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계는 연인도 아니고, 부부도 아니고, 사제관계라고 했다. 누군가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부담스럽다고 하는 게 맞겠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얼마나 나의 과목을 사랑하고 정진하고 있는가, 아이들을 위해 얼마나 긴 안목으로 고민하고 있는가, 아이들을 얼마나 자세히 살펴보고 있는가.  


제목 사진 출처 : http://www.pluggedin.co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