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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섭코 May 29. 2020

<12> 걱정을 앞당겨 쓰는 버릇


(*5월 4일의 기록)


 행복할 때 온전히 행복만을 탱자 탱자 즐길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행복의 순간일 때마저도 왜 온갖 걱정들을 앞당겨 쓰곤 하는지. 롤러코스터 꼭대기에서 떨어질 걱정을 하게 되는 것처럼 어쩔 수 없는 걸까.


 스스로가 한심했던 4월의 굴레를 어느 정도 벗어난 5월이다. 4월과 비교해서는 꽤 책상 앞에 자주 붙어있기도 하고, 글도 다시 조금씩 쓰고, 열심히 조깅을 해서 페이스도 높여가고 있다. 5월에는 50km를 달릴 거고,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고, 주말이면 근교에 친구네를 놀러가거나 드라이브를 다닐 예정이다. 코로나로 갇혀 살다 보니 마트 장 보는 것과 월세 빼고는 돈 쓸 일도 없어 이북을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이것도 소소한 낙이 되었다. 초반에 영어 때문에 힘들었던 것들도 많이 괜찮아졌다.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된 것은 아니지만, 영어로 충분히 나라는 사람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많이 없어졌다. 농담 같은 것들, 머릿속 번역 회로를 거치지 않고서도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문장들도 제법 많아졌다. 여전히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버퍼링이 걸리지만 말이다. 많이 가까워진 플랫 메이트 중 한 명은 이 곳에서 다른 학위를 이어하면 안 되냐며 내가 떠날 미래의 날에 대해 아쉬움을 보였다. 이런 대화, 마음들을 마주할 때마다 이 곳에서 많은 것을 얻었음을 꽉 차게 느끼곤 한다.


 덴마크는 해가 어마어마하게 늦게 진다. 해가 가장 길 때는 밤 11시는 가까워져야 어둑해진다고 한다. 가끔 한국의 3~4시처럼 훤한 대낮인데 시계는 7시를 가르키고 있어 내가 지금 먹는게 점심인지 저녁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 시간 즈음 저녁을 먹고 기약없이 산책을 하다 보면,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선명한 분홍빛, 보랏빛, 형광빛이 도는 남색 하늘 등 다채로운 하늘들을 볼 수 있다. 라라 랜드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색감의 하늘들이다. 그런 색의 하늘 위로 구름이 환상적으로 펴발라져 있는 날이면 멈춰 숴서 한참을 구경하곤 한다. 이런 게 낙이고, 이런 걸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거 하나만으로 하루하루 꾸준히 행복하다. 노트북이 박살나고 조모임에 이리 저리 치이던 초반에는 결코 몰랐던 덴마크 휘게의 마법이 바로 이것인가! 마땅히 부담을 느끼지 않으며 살고 있어서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 행복들을 잔뜩 느끼는 것에만 시간을 써도 좋을 텐데 걱정을 앞당겨 쓰는 내 버릇이 자꾸 딴지를 건다.


City of stars 가 자동 플레이되는 광경


 누군가는 공감할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행복해서 차분하게 불안한 기분. 이렇게 있어도 진짜 괜찮은 건가 하는 애먼 걱정이 울리는 잔잔한 진동이 마음 한켠에서 울리고 있다. 아침에 비몽사몽간에 대충 끈 알람처럼, 대충 불안을 지워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웅웅 울린다. 이 곳에서 보내는 기간을, 인생에서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기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 일시정지를 진짜 하고 있어도 괜찮을까 하는 물음이 튀어오르는 것이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행복하게 눈을 꿈뻑이다가도 톡톡 튀어나온다. 왜 전전긍긍할까 가만 생각해보니 한국에 돌아가면 닥쳐올 치열한 삶에 대한 걱정이 주된 시발점인듯 했다. 막상 불안의 뚜껑을 열어보니, 결국 한국에 가서 해도 충분한 걱정들이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라도 걱정에 쓰는 시간을 줄이기로 했다.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행복하자. 이 곳에서의 행복을 돌아가서 지속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아쉬움의 걱정도 줄이기로 했다. 여행을 갔을 때 느끼는 '맛탱이간 금전 감각'을 내 삶의 터전과 일상에 적용할 수 없는 것처럼, 이 곳의 여유와 행복을 꾸역꾸역 한국에 들고 가지 않으려고 한다. 한국에 돌아가면 해치워야 할 여러 불안이나 불안들도 있지만, 동시에 한국 만의 여유와 행복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서 찾은 감각들을 담아가지 못하는 것에 큰 미련도 두지 말자.

 앞당겨 걱정을 쓰지 말자. 행복은 당겨 써보지도 못하면서.



(*Update 5월에는 고작 27Km만 달렸다. 역시 난 미래의 나를 믿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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