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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야 Sep 14. 2022

자연 앞에 선 지배자 인간?

놉 by. 조던 필

놉 (2022)


미지의 존재가 자연 속에서 나타난다면 인간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두려움 혹은 공포가 아닐까 싶다. 내가 알지도 보지도 못한 무언가를 상대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존재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해봐도 무력한 자신을 한탄하게 된다. 아니면 신비한 생명체를 이용해서 관심과 돈을 챙길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런 욕심이 가슴속에서 튀어나온다. 그래서 인간은 카메라를 찾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력으로 기록하고 싶어도 자연은 이를 용납시키지 않을 때가 많다. 

  

영화 '놉'은 그런 미지의 자연이 주는 공포를 담아낸다. 자연 앞에 선 인간의 무력한 모습을 그린다. 그렇게 자연을 파헤칠 때마다 새롭게 도출되는 결과에 얻게 되는 인간의 공포를 집중시킨다. 그 결과가 인간을 굴복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굴복하기보다 버티고, 승리를 원했다. 비록 자연이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지만 인간은 버텨낸다. 다만 그것이 인간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통제할 수 없는 자연 앞에서 인간은 살아남았을 뿐이다. 


인간은 항상 자연을 통제했다고 믿는다. 대표적으로 동물 사육을 이야기할 수 있다. 같은 자연의 일부이지만 인간은 동물을 통제했다. 아니 통제하도록 훈련시켜왔다. 다만 그것은 완전한 통제는 아니었다. 동물은 인간의 도구가 아니었다. 결론이 도출되었지만 인간은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오만한 통제권을 가진 불안한 존재로 남았다. 자연적인 본능으로 행동하는 동물의 행동 때문이다. 아무리 나와 친숙한 동물이라도 불가능하다. 본능이라는 문제를 뒤로 두고 생각해도 동물은 인간이 통제하여 사용되는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기적인 욕심을 동물에게 드러냈을 때 문제가 일어난다. 영화 놉에서도 외계 생명체 혹은 미지의 존재를 등장시킬 때 지적인 생명체가 아닌 자연의 일부로 표현한다. TV에 출현한 침팬지 사건과 비슷한 존재로 비유한다. 그들은 동물이다. 본능과 위협을 감지하면 폭력성을 드러낸다. 다만 인간은 그들을 통제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통제된 것은 동물이 아니라 통제했다고 믿은 인간이었다. 그 결과는 급하게 종영한 TV쇼의 비극적인 영광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영화 놉을 보고 나서 피터 싱어의 저서 ‘동물해방’을 떠올렸다.  그의 말처럼 인간은 동물을 지배했다고 믿은 채로 실험, 촬영, 심지어 식사를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착각이다. 인간이 동물을 지배한 것은 아니다. 인간을 위해 강제로 사유화한 거라고 본다. 그렇다고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으로서 동물을 기르거나 먹는 것은 필요한 일이기에 나는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영화 속에 나온 것처럼 인간은 스스로 지배자로서 행세할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영화는 통제되지 않는 미지의 존재로부터 잠시 벗어난다. 대신에 아시아인 주프의 과거를 회상시킨다. TV쇼에서 살아남았던 주프의 입장은 지배자가 아니었다. 침팬지가 동등한 존재라고 판단했기에 생존할 수 있었다. 그는 주먹을 맞대고 나를 받아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주프는 미지의 존재를 마주했을 때 자신이 겪었던 과거를 모두 잊는다. 대신 자연의 일부를 통제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자신감을 가진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비극적인 사건은 반복된다. 동등한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TV쇼의 주인공을 보조하는 침팬지와 같은 도구처럼 존재를 이용한다. 존재에 대한 존중은 전혀 없다. 인간은 존재를 다루고, 굴복시키고자 한다. 그런 존재에게 복종을 받아낸다면 인간은 큰 부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오만은 반성도 없이 반복되어 비극을 탄생시킨다. 누구도 자연의 대상 앞에서 지배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데도 항상 그래 왔다. 그런 판단 했을 때 결과는 과거와 다른 참상을 남긴다. 


결국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통제되지 않는다면 동물에게 죽거나 인간이 동물을 죽이는 것이 전부다. 

그렇기에 인간은 앞서 말한 대로 무력하다. 하지만 인간도 지구상에 생명체로써 문명의 이기적인 욕심을 이끌어야 한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생존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존법칙을 위시한 지배권의 강요가 들어간다면 달라진다. 

  

물론 동물이 인간을 위해 훈련을 받고, 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인간이지만 동물을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워야 한다. 대신 영화에서 OJ가 말한 대로 교감을 통해 받아들이는 것을 먼저 해야 한다. 미지의 존재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생명체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한낱 미물이라고 깎아내려도 인간조차 똑같은 자연의 일부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이 필요한 일을 위해 사용되는 동물의 임장을 고려하는 방법을 점차 늘려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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