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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야 Jul 12. 2023

굿바이 누벨바그, 굿바이 고다르

네 멋대로 해라 by. 장 뤽 고다르

네 멋대로 해라 (1960)


2022년 09월 13일 프랑스의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가 죽었다. 그의 나이 91세였다. 그는 죽는 순간마저도 자신의 영화처럼 사라졌다. 생을 더 이상 살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의지로써 막을 내렸다. 그렇게 누벨바그의 마지막 순간을 장식했던 감독이 끝내 운명했다. 그것이 영화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더 이상 누벨바그의 시대가 오지 않을 것이다. 고다르와 같은 프랑스의 이단아들이 탄생시킨 영화계의 새로운 업적. 영화라는 세계를 뒤집어버린 혁명이었던 누벨바그. 그만큼 누벨바그 영화는 시대의 업적을 남겼다. 훗날 많은 감독들이 누벨바그를 찬양했고, 모티브로 사용했다.

  

그중에서도 영화 ‘네 멋대로 해라’는 누벨바그 영화 역사에서도 가장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누벨바그 시대를 개척한 감독이 새로운 시작을 열었다. 그렇게 완성시킨 영화는 누벨바그 영화라는 이름을 달고서 시대를 찢고 나왔다. 동시에 고다르라는 감독이 자신의 시대적 정신을 영화 속에 새겨낸 작품이기에 더욱 중요했다. 다만 지금에 와서 1960년대 영화를 보며 현대의 영화와 비교한다면 재미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다르의 영화를 보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고다르와 누벨바그 영화를 보고 나면 시대라는 의미를 품어낸 감독의 열정과 표현의 순간을 이끌어낸 결과를 보며 고다르를 찬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 '네 멋대로 해라'는 60년대를 기준으로 로맨스와 멜로 같은 영화구조에서 벗어난다. 범죄자로 활동하는 주인공과 파멸로 이끌리는 여 주인공의 관계와 갈등 그리고 복합적인 사회구조를 냉철한 시선으로 필름에 담아낸다. 불안정한 주인공의 태도와 모습은 전형적인 클리셰의 구조를 담지 않는다. 개과천선은 전혀 없는 배신과 반전으로 영화를 덮어버린다. 순간마다 표현되는 카메라의 표현은 고전스러운 영화와는 절대적으로 다른 미적 구조를 탐닉시켰다. 고다르는 제목 그대로 영화 내내 자기 멋대로 영화를 편집하고 잘라낸다. 

  

수많은 주인공들의 언어표현은 화려한 수식어가 사용되지 않는다. 사랑을 갈구하는 메시지는 없다. 철학적인 삶의 담론과 자신만의 상징으로 무정한 인간의 혼잣말로 자신을 방어한다. 마치 알베르 카뮈의 소설 주인공 마냥 떠들고 있다. 그래서 영화는 한 치 앞을 모르는 인간의 비교적 복잡한 삶을 공유한다. 제대로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항상 달라지는 파편화된 카메라의 장면들은 지금 그가 무엇을 위해 운명에 뛰어드는지 불분명하다. 결국 관객들은 그가 흘러가는 대로 바라보는 대로 시선을 맞추고 있다. 

  

관객은 스스로 스크린에 움직이는 영상을 이해하기를 포기한다. 단순히 고다르만의 세계를 빨아들이고자 표현에 집중한다. 그래도 영화와 자신만의 간극을 메울 수 없다. 결국 그들은 포기하고 고다르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 고다르라는 영화사에 자신만의 불투명한 미학을 전파시키는 불친절함을 감내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관객이 스스로 영화에 흠뻑 빠져든다. 철저하게 완성된 스토리 구조를 따라가기만 하던 친절한 영화에서 관객의 역할은 오리무중이다. 항상 감독의 입맛에 따라 감동하고, 웃고, 울면서 감정을 소비한다. 하지만 고다르의 영화 ‘네 멋대로 해라’는 이미 관객의 상관관계를 넘어선다. 

  

그만큼 60년대 누벨바그 영화는 한 시대에 머물렀던 순간 같은 것이 아니었다. 만약 영화사에 획으로만 남겨졌다면 지금까지 누벨바그 시대는 영화를 위한 진보적인 도약으로 기억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다르가 남긴 영화와 그의 이름은 시대에 남겨진 정도가 아니었다.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누벨바그는 그 이상의 것이었다. 매 순간을 고다르의 흔적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항상 고다르만큼의 진보적인 영화라는 세계를 자신만의 뒤엎을 무엇을 향해 환영을 쫓는다. 

  

다만 시대가 바뀌었고, 영화는 한층 더 다양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다르의 시대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그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누벨바그 기수로서 세대의 종말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누벨바그는 끝났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여전히 많은 극장가에 실린다. 누벨바그라는 이름의 가치는 영화사에 또 다른 장르 혹은 강렬한 투지로서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고다르 아니 누벨바그는 끝난 것이 아니다. 새롭게 개척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고다르의 영화 '네 멋대로 해라'는 개척의 시초이자 진행하는 많은 영화인들의 안식처로서 그 가치를 상기할 것이다. 장 뤽 고다르라는 영화인들의 영원한 스승으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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