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느 가족 by. 고레에다 히로카즈
가족. 식구 등의 표현을 우리는 당연하게 사용한다.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과 나와 같은 핏줄로 태어나 삶을 공유하는 형제 등이 같은 살아간다. 그 외에도 조부모, 이모, 조카 등의 여럿 가족의 피로 이어진 인연을 가족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완전한 가족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핏줄로 이어져도 가족은 종종 남보다 못한 순간이 온다. 매번 같이 살아가도 나의 혈육과 모든 것을 공유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가족이라는 형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본다. 진짜 가족이라는 의미에 대해 과연 우리는 올바르게 정의 내리고 있는지 말이다.
이러한 점을 고민하던 중에 영화 '어느 가족'을 다시 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영화 '어느 가족'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추구하는 가족의 세계를 완성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매 순간 가족에 새로운 해석을 보여준 감독의 영화룰 돌이켜보면 더 그렇게 생각된다. 영화 '환상의 빛'에서부터 시작했던 가족의 세계는 영화 '아무도 모른다'에서는 가족의 무정함을 보였다.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가족의 해체를 건드렸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가족이라는 세계에 소속된 ‘나’의 시선을 주목했다. 나라는 존재가 속해진 가족에 대해서 감독은 꾸준히 영화로서 가족의 의미를 고민했다. 그리고 감독의 많은 영화들을 봐왔던 나에게도 있어 가족의 의미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영화 '어느 가족'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완성시킨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에서 가장 어려운 영화라고 생각했다. 영화적인 메시지나 표현은 어려운 것이 전혀 없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의미만을 보면 영화는 꽤나 이해하기는 어렵다. 불안정한 수입과 범죄를 가르치는 부모, 누구의 핏줄인지 모르는 아이들 그리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가족의 형태를 보면 과연 이게 가족이 맞나 싶을 정도다. 그러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 가족은 집이라는 공간에서 누군가와 마주하는 동안 행복해질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비록 그들이 핏줄로 이어지지 않은 존재이지만 가족이라는 점을 명시해 둔다.
과거에 개봉한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때도 비슷한 영화의 결을 통해 가족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영화 ‘어느 가족’과는 결이 다르다고 느껴진다. 혈육이 아닌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은 각자의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이 가족이 되었다. 각자의 이유에 따라 목적에 따라 만났다. 그러나 그들은 식구(食口)로서 함께 인생을 이어간다. 그 점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생각하는 가족은 곧 단순히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함께 살아가는 가범주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본다. 영화는 비록 범죄라는 문제를 안고 있는 그들이 용서받지 못할 행동들도 인해 존중받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일본 사회와 전 세계를 통틀어 가족이라는 역할과 모순에 대한 고민을 세밀하게 들어낸 영화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전 세계에서 가족의 형태는 다양하다. 동성애자의 가족도 있고, 결혼하지 않는 동거자의 가족, 늙은 누군가와 같이 살아가는 가족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일까 뉴스에서 과거에 나이 드신 분들께서 같이 동거하시며 늙어가는 자신의 삶을 같이 정리하는 가족의 형태를 기사로 읽었다. 더 이상 자식이 신경 쓰지 않는 그들에게 남이었던 다른 노인들과의 만남은 가족의 형태로 재결합하기에 충분했다. 다만 제도상의 문제로 인해 여러 가지 골치 아픈 사건도 많은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에 일어날 제도의 한계도 분명히 사회에 새로운 화두로 떠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되짚어보면서 영화 ‘어느 가족’을 다시 봤을 때 한국도 이런 사회적 문제에 대한 새로운 지점에 고민을 할 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항상 공동체가족에 대한 문제를 동성애자들의 결혼 문제라는 식으로 넘겨짚는 세태를 넘어서야 한다. 한국이 늙어가는 황혼의 시대가 온만큼 더욱 고레에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가족의 역설을 신중히 고려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