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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야 Apr 09. 2024

나의 'Godot' 에게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 극작 - 사뮈엘 베케트 / 연출 : 오경택

고도를 기다리며 (2023)


1945년 세계 2차 대전이라 불리는 전쟁이 끝을 맺었다. 전쟁은 서쪽에서부터 시작해서 동쪽까지 수 없는 세계의 대륙과 바다를 횡단하며 이어졌다. 밤낮으로 젊은이들은 죽었다.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세계에서 살아남았다고 한들 미래는 그리 밝지 못했다.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 무력감이 나를 감싸 안았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신만이 안다는 교회의 설교는 통하지 않았다. 무너진 계급과 사회의 전면에선 이들의 앞에 무슨 희망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무너진 도시의 전면을 바라보며 서있는 반복적인 운명에 매달린채 살아가는 죽지 못한 자들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들을 묘사하고, 기록하는 작가들은 글을 쓰고, 출판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던졌다. 당신의 삶에 대한 의의를 말이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세상을 보는 인간들에게 질문을 건네는 대표적인 연극이다. 사무엘 베게트라는 아일랜드 작가에 손에 쓰인 희곡은 상당히 특이했다. 두 사람은 산에 올라와서 고도를 기다린다. 그가 누구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오로지 산 위에서 시간을 보내며 고도를 위한 기다림을 갖는다. 그것이 전부다. 인생에 대한 아무런 목적도, 이유도, 변화도 없는 그들에게 고도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왜 그토록 고도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도라는 존재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지만 아무도 그 질문에 시원하게 답변하지 못했다. 50년대부터 지금까지 연극은 무대 위에 올라왔다. 그리고 관객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연극이 무대 위에 오를 때마다 지켜봤다. 그러나 대답은 허공을 맴도는 허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토록 고고와 디디가 찾던 고도를 쉽사리 답할 수 없을까? 상징으로 표현되는 존재에 대해서는 쉽게 말할 수 있다. 신에 대한 표상이다. 자유로부터 의지다. 희망, 절망, 분노, 시대의 대한 불안 등의 여러 가지 답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고도’에 대해서는 정확히 무엇인지를 인지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고 믿는다. 우리는 나의 'Godot'를 찾지 않았기에 모를 수밖에 없다. 

  

나의 'Godot'는 무엇일까? 그 답은 연극을 보는 배우의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희곡 속에 쓰인 텍스트에서도 찾을 수는 없다. 여러 고도를 기다리며의 저서에 분석을 한 논문도 해결되지 않는다. 나의 ‘고도’는 오로지 무대 아래에서 관람하는 나에게 주어진 숙명으로서 찾아내야 하는 무엇이라고 본다. 이것은 작가의 의도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아닐 것이다. 그러면 고도를 찾는 이유가 없지 않냐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고도를 찾는 것보다 고도에 대한 해석이 먼저라는 이론적인 문제도 답변도 등장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런 이론적인 문법에 의존하는 해석을 통해 고도를 알아간다고 한들. 관객이 과연 고도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고도는 무엇입니다.라는 해석적인 답변으로 암기시켜 고도에 대한 의미를 심어준다고 가정한다. 관객은 고도라는 존재를 객관적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고도에 대한 나의 주관적인 입장과 사고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가 느끼는 고도에 대한 의식은 무시당한다. 그러면 우리는 진실된 고도를 알 수 있을까? 나의 고도를 깨우칠 수 있는가를 둔다면 아닐 것이다. 연극에서도 항상 코미디처럼 슬픈 행동을 반복해 온 고고와 디디의 운명에 대해서도 우리는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가 연극에서 본 것은 고도라는 존재를 기다리는 어리석은 두 남자의 바보 같은 삶의 전주곡을 지켜본 시간 낭비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의 고도라는 것을 찾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나의 고도는 무엇인가 혹은 누구인가 혹은 어떤 의미인가를 파악하며 접근하며 고도라는 존재를 마주해 나간다면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알 수 없을지도 모르는 고도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찾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연극에서 보여준 두 인간의 가냘픈 희망 앞에서 우리가 느낄 것을 찾고, 고도를 인식한다면 연극은 바라보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 앞에 서있는 현실이 될 것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을 제대로 바라보는 게 되는 시야를 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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