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코 록카쿠 전시회 (2023)
어린 시절 크레파스, 혹은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던 기억이 남아있다. 알록달록한 색깔을 도화지 위에 칠해 넣었다. 그림이라고 하기에는 정확인 표현이 없는 어린아이의 그림실력으로 그려낸 한 폭의 도화지. 어른들은 그걸 보며 장하다는 칭찬을 늘어놓으며 즐거워하고, 자랑도 했다. 그런 칭찬을 들으며 종종 나의 예술적인 세계에 감탄하며 인생에 대한 미래를 다짐하고는 했다. 나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도화지 속에 화폭에는 어린 시절에서 변하지 않은 손이 도화지의 한 폭을 그려 넣는다. 너무나도 부끄러운 듯한 그림에 탄식하며 그림 그리기를 멈추었다. 대신 그림을 보는 걸로 대신 만족하기로 했다.
이번에 다녀온 아야코 록카쿠 전시회는 신선함 느끼기에 충분했다. 처음에는 최고의 화가로 알려진 일본인 아야코 록카쿠의 그림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화면으로만 본 그림의 첫인상은 어색했다. 어린 시절 내가 그린 것 같은 그림의 표현과 거친 질감과 표현이 선뜻 잘 그렸는지 몰랐다. 그래서일까 과연 이런 그림으로 전시회를 하는 그녀의 그림을 봐야 할지 고민까지 들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무엇이 그녀를 최고의 화가로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이 나왔기에 그림을 직접 바라보러 찾아갔다. 그리고 전시회를 선 나에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그림은 유치하고, 단조로워 보이지만 그녀의 그림에는 자신만의 신념이 담겨있었다.
초창기 작품에서 그녀의 그림은 정물화처럼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그대로 그려낸다. 무언가 복제된 그녀의 그림은 도화지 대신 골판지 박스라는 생소한 방식으로 그려낸 표현이 인상적이었으며, 동시에 날렵한 특징만을 잡아 담은 색감 가득 표현한 울긋불긋한 표현이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만약 스타일에만 멈췄더라면 그녀의 그림이 세상에 알려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처음에 보여준 거친 질감과 바라보던 세상은 조금 더 변화되었다. 특히 그림의 표현방식은 자신의 내면으로 이어졌다. 그녀가 눈으로 따라갔던 세상에서 자신이 사고하는 세계로 관점을 변화시켜 그녀의 그림은 말 그대로 캔버스 위에 묻어 나왔다.
다만 그녀의 그림에서 변화되지 않는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그녀의 그림을 향한 욕망이었다. 어느 화가라도 욕망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욕망이라는 것은 단지 욕구적인 것이 아니다. 그림을 그린 화가가 자신의 세계를 캔버스 위에 담아내기 위한 태도를 뜻한다. 그렇기에 아야코 록카쿠라는 화가가 표현하는 붓터치, 색감의 변화만으로 그녀를 평가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그림에서 욕망. 바로 누구라도 그릴 수 있는 희망과 기적이 있다는 의지. 그 자체의 태도를 말하고 싶다. 전시회를 끝으로 마지막 그림을 보고 나서 그녀가 남긴 문구를 보고 감탄했다. 자신의 그림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릴 수 있다.
아마도 관람객이라면 그녀의 그림에 용기나 자신감을 얻고 나갈지도 모른다. 저런 그림도 전시회에 걸리는데 나라고 못할 것인가.라는 한껏 부푼 마음을 가진채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그림이 얼마나 기적과도 같은 순간을 품어왔고, 노력이 깃들었다 것을 깨달았다. 그런 점 때문인지 그녀가 쉽게 던진 용기의 표현이 짜증스럽기도 했고, 부럽기도 했다. 그녀의 말에 나도 해볼 수 있어라는 쉬운 용기를 가진다면 다행이지만, 알고 있는 용기마저 무너뜨릴 만큼의 실력자가 건네는 악의 없는 제안이기에 더욱 슬펐다. 다만 그럼에도 나는 전시회를 통해 아야코 록카쿠라는 세상을 보며 한껏 좋아졌다.
왜냐하면 요즘의 현대미술의 경향은 많이 달라지기도 했다. 특히 최근 사람들은 현대미술하면 어렵거나 무언가 가치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치부한다. 물론 인터넷의 발전과 가치만을 중시하는 사회의 태도 때문이겠지만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으니까. 그러나 아야코 록카쿠는 그런 현대미술의 가격과는 별개로 그림이 여전히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림 한 점에 가격이 얼마이라는 마케팅적인 태도, 뉴스기사의 헤드라인과 달리 순수하게 그녀가 그린 그름을 심취하며 전시회를 다닐 만큼 만족했던 순간이 되었으니까. 조금은 화가 나는 그녀의 그림실력을 알고 있지만 그녀의 그림이 한국에 와준 것에 나는 나름의 감사를 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