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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야 Mar 04. 2021

[극장에서 본 오늘의 영화]
춘광사설

춘광사설 (1997)


한국에서 번역된 제목은 해피투게더이다. 하지만 왕가위 감독의 영화 제목은 언제나 4글자였기에 규칙을 지키고자 춘광사설 이라는 제목을 사용한다.


영화 춘광사설은 왕가위 감독이 만들고자 했던 이상향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화양연화가 나오기 직전에 찍었던 영화는 화양연화의 모티브와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아니 화양연화의 구조는 비슷하다. 그러나 화양연화에서 보여준 모더니즘 같은 분위기와 연출을 제거한다. 


대신 남미라는 뜨거운 열정과 혼란스러운 시선을 영화 속에 깔아 둔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모두 보고 나서 극장을 나서도 여운처럼 남은 기억은 머릿속을 채운다. 영화 속에 담겼던 식지 못할 감정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만큼 왕가위 감독만의 가장 뜨거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 연기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왕가위 감독의 이전 영화들보다 열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영화는 남미의 날씨가 주는 분위기보다 더 차갑게만 느껴진다. 왜 그럴까를 고민해보면 춘광사설에서는 그리워하는 사람, 그리운 사람, 그리워할 사람의 축축한 로맨스가 절묘한 조화가 만들어낸 색다른 하모니가 빚어낸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동성커플 아휘와 보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서로 다른 성향의 두 사람은 자신들의 관계를 회복하자며 가게 된 남미 여행에서 헤어진다. 아휘는 더 이상 보영을 만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돈을 벌며 남미에서 살고 있다. 보영은 그런 아휘를 다시 만나게 되면서 그에게 매달리고 집착한다. 


그렇게 만남을 이어가지 않던 도중에  보영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보영에 대한 경멸을 한껏 드러내고 사라진 아휘는 씁쓸했다. 그러나 보영은 두 팔이 모두 부러지는 폭력을 받은 뒤에 아휘에게 찾아간다. 아휘는 결국 보영을 다시 받아들이고 그를 간호를 하며 한 아파트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아휘는 보영이 팔이 나을수록 과거와 같은 일에 반복 때문에 두려워한다. 다시 떠날지도 모르는 그를 보고 있는 아휘와 그런 아휘의 마음도 자기의 마음도 정확히 모르는 보영의 관계는 어렵다. 


결국 아휘는 일을 하던 탱고바에서 중식당으로 일자리를 옮기면서 새로운 만남을 가지게 된다. 장이라는 대만 출신의 남자를 만나면서 운명은 다시 혼란스럽게 변한다. 운명처럼 만난 관계는 결국 다시 헤어지게 되었다. 떠나간 자리의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아휘도 남미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결국 세 사람의 관계는 다시 흩어지듯이 떠나버렸으며 그리운 형태를 영화 속에 남겨두고는 영화가 모두 끝난다.


영화의 서사를 보고 있으면 아휘와 보영 그리고 장이라는 세 남자의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이별에 대한 코멘터리를 담은 영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왕가위 감독의 영화 춘광 사설에 열광한다. 그의 화려한 미장센과 편집 기법은 어느 영화나 똑같다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오히려 화양연화가 더 아름답고, 표현력이 풍부한 연출로 영화의 매력을 남겼다. 


춘광사설은 투박했고, 표면적으로는 지나친 낭만성이 드러났다. 절제된 미학을 장면 속에 지운다. 오히려 남미의 열정적인 분위기에 취해버린 것처럼 장면들은 과정 되었다. 그렇지만 완성된 영화는 관객들에게 스며들었다. 화내고, 분노하고, 그리워하는 과정까지 모든 것에 취해버렸다. 그렇기에 춘광사설은 왕가위 영화의 근본이면서도 더 이상은 나타나지 않을 작별인사 같은 영화이다. 많은 관객들이 이토록 끌리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 일 것이다.


작별같이 떠나버린 춘광사설은 어느 영화보다 고독한 메시지를 드러낸다. 떠나간 세 사람이 사랑을 했던, 우정을 마주하던, 그리워했던 감정이 있더라도 이제는 모두 끝나버린 지 오래다. 훗날 그리워할 누군가를 보고자 찾아갈 곳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현재로서의 관계는 끝이 났다. 아무리 후회해도 끝나버린 감정 속에 담가 두고 모든 것을 삼켜내야 한다. 


그렇게 깨달음을 얻는 과정의 영화는 역설적으로 희망적인 모습을 비추게 된다. 이미 떠났을 때 깨달은 감정을 후회처럼 달고 다녔던 기존 영화와 다르게 찾아갈 사람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떠나고서 후회하는 수많은 영화와 다르게 왕가위는 아휘에게 고독에서 벗어날 기회를 남겨준다.  


바로 장의 남극에서의 카세트 장면과 아휘의 지하철 장면을 통해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둘은 서로의 감정을 이해했다. 그리고 여정을 떠나는 과정을 통해 그 둘은 언젠가 만날지도 모른다. 그곳이 어디인지 모른다. 하지만 알게 된 관계를 지속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아휘와 장은 떠난 자의 그리움을 알기에 다시 만날 것이라는 표현처럼 보인다. 참으로 왕가위 다운 결말이며 왕가만의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영화 춘광사설의 서사는 참으로 빈약하고, 영화의 장면들은 부담스럽고, 감정을 담아낸 세 사람의 관계를 맹렬하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면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은 영화로 느껴진다. 남미의 햇살이 뜨거워서 그럴까? 아휘와 보영의 관계 때문인가? 장의 씁쓸하게 떠나버린 여행 때문일까? 관객들은 제각기 다른 대답으로 춘광사설의 씁쓸함을 찍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이 있다. 수많은 관객들이 대답한 것들이 영화 속에 있는 한 절대로 잊힐 수 없는 영화가 될 것이다. 왕가위의 영화가 먼 훗날의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 영화의 빈자리를 메꾸고, 많은 사람들이 기억에 일부로 남은 영화가 될지라도 말이다. 


점수 : 4.5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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