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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야 Mar 08. 2021

[극장에서 본 오늘의 영화]
살아남은 사람들

버르너바시토트

살아남은 사람들 (2021)


헝가리 영화는 생소했지만 영화를 모두 보고 났을 때는 특유의 낯섦 보다도 영화를 찍은 감독의 이름을 먼저 찾게 되었다.


영화 살아남은 사람들은 홀로코스트와 공산주의의 압박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과연 그들은 완벽하게 살아남은 것인가? 감독의 질문에서부터 시작하는 영화는 그래도 살아남은 것에 대한 축복과 슬픔을 그리고 허무했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를 만났다. 그렇게 지나온 수 없는 날들이 인생에 있었기에 그들은 살아남았다고 할 수 있다. 영화의 끝에는 그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살아남았지만 살아가고 있었다. 


영화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소녀 클라라와 산부인과 의사 알도의 우연한 만남으로부터 시작한다. 서로 가족을 잃었으며 전쟁에 대한 생존자로 혼자가 되었다. 아무리 자신들 거두어준 가족이 있지만 클라라는 만족하지 못한다. 자기에게 가족은 할머니가 아니었다. 


의사 알도와의 연결로 서로를 의지하는 가족이 된다. 하지만 새로운 형식의 가족의 모습은 부자연스럽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말이다. 그렇게 불편한 관계를 지속하던 그들에게 또 다른 생존의 시간이 들이닥친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살아남았다. 그렇게 새롭게 탄생한 가족이 그들의 식탁에서 건배를 하기까지 살아남기 위한 여정은 길고도 어지러웠다.


영화는 희생된 자들의 안타까움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희생된 자들과 다르게 남겨진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집중한다. 그들은 살아남고 싶어서 살게 된 것아 아니다. 우연히도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 고통의 감내는 먼저 가버린 자보다 더 깊고 어둡다. 그렇게 의지할 수 있는 상대가 생겼지만 고통을 견디기에는 무거웠다. 그렇기에 감독은 남겨진 자들에게 시선을 돌린 것이라고 본다. 


영화는 남겨진 자들의 감정을 억지로 다가서게 하지 않는다. 대신에 클라라의 성장을 딸을 가진 아버지의 시선으로 그리고 아버지에게 의지하는 딸의 시선에만 집중시킨다. 그렇게 관찰자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면 희생된 자들보다 나은 것은 없다. 살아남았기에 그저 살고 있다. 그리고 점차 그들의 삶이 서로를 의지하는 과정으로 변하면서 살아남은 것은 사라지고 살아가는 과정으로 변한다.


이렇게 생존했다는 삶을 정의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살아남은 것이 기쁜 것인가?라는 말을 꺼내기가 무척이나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아남았기에 우리는 살아야 한다. 상처를 극복해야 하고, 새로운 만남을 지속하며 새로운 시대에 목매면서 남겨진 삶을 지속해야 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과정을 새롭게 밟아 갔을 때 우리는 삶에 대한 의미를 다시 되찾기 시작한다. 


암울한 시대 속에서 죽지 않았던 나의 인생에 대한 깊은 감정을 느끼면서 말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영화 속에서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오로지 클라라와 알도의 시선 속에서 새로운 만남과 질투 그리고 클라라의 성장과 시대의 변화를 통해 관객에게 유추하도록 한다.


그러나 마지막의 한 장면은 달랐다. 바로 의사 알도가 화장실에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이것은 첫 번째 알도가 화장실로 갔던 장면의 반복일 수 있다. 하지만 그때의 알도는 다르다. 외로움에 남겨진 삶에 비극을 느꼈던 감정을 떨쳐냈다. 대신 이제 곧 변한 삶과 변하게 될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와 복받치는 감정을 화장실에서 토해낸다. 이것은 인생에 대한 찬가라고 생각한다. 


알도가 화장실에 들어갔을 뿐이다. 남겨진 삶을 토로하는 인생과 다르다. 오히려 남아 있는 삶의 아쉬운 감정을 토해낸다. 그렇게 변해버린 인생을 비교하는 표현방식은 독특하다. 특히나 비극 속에서 살아남았지만 살아가는 인간의 강인함 혹은 연대하는 자들이 정신적인 표현은 감독만의 진한 메시지로 보인다. 그렇기에 영화는 음울한 인생에서도 끝내 삶의 비극을 전환시킨 인생 찬가를 담백한 서사에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화의 담백한 서사는 반복적인 관계는 흥미를 이끌었지만 점차 똑같은 패턴에 지루해졌다. 하지만 그런 시대를 표현하기에는 더없이 좋았으며 감독만의 느낌을 잘 살려준 영화였기에 만족할 수 있었다. 헝가리라는 낯 선 세계의 영화였지만 감독만의 특징 있는 연출과 표현은 매혹적이었다. 나는 헝가리 영화감독 버르너바시 토트의 다른 장편 영화들이 훗날 극장에서 걸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점수 : 3.5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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