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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야 Mar 09. 2021

[극장에서 본 오늘의 영화]
동사서독 리덕스

왕가위

동사서독 리덕스 (2008)

왕가위 영화의 4번째 영화 동사서독을 보고 났을 때 다시 한번 왕가위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는 모더니스트가 아니라 낭만주의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할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영화 동사서독은 일반적인 무협영화와의 다른 형태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인 강호에서 나타난 무술의 달인들과의 대결과 우정을 담아내는 것보다 각자의 심리와 감성 그리고 그리운 관계를 각자의 기억 속에서 추적해 가는 과정을 무협의 일부로서 보여준다. 


이렇게 특수한 무협영화를 통해 왕가위가 말하고 싶은 주제는 뚜렷했다. 하지만 왜 무협이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을 때 이것마저도 영화의 결말에서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이 하나 더 있다면 아비장전과 화양연화라는 영화의 모던한 색채와 세련미로 그는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감독 왕가위는 모더니즘의 시대를 겪었지만 영화계에 홀로 남은 낭만주의자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아이러니한 연출과 스토리의 진부함 그리고 결말에서 느끼는 불쾌한 여운까지 왕가위를 설명하는 주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 동사서독은 이러한 왕가위라는 인물의 완성형이자 새로운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다.


훗날 서독라고 불리는 구양봉과 동사라 불리는 황약사의 만남으로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기억을 잃어버리게 하는 술 취생몽사를 먼저 들이킨 황약사는 떠돌이처럼 떠돌아다니며 인생을 살아간다. 그에 반해 구양봉은 사막의 객잔에 홀로 청부살인 업을 중개하는 중개업자로 살고 있다. 


세상의 인연 없이 살아가던 그들이 왜 이러한 인생을 결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주요한 결단이 있다. 바로 누군가를 사랑했던 감정과 기억의 연결 때문이다. 버리지 못한 미련일 뿐인가 아니면 버릴 수 없는 영원한 기억일까? 두 사람의 감정은 객잔을 방문하는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서서히 밝혀지고 어렴풋이 기억나게 만든다. 그럴수록 사막에 남은 구양봉의 감정은 삐뚤어지고 고통스러워 질뿐이다. 이러한 무협의 세계 속에서 구양봉은 마지막 선택을 하고 사막을 떠난다.


영화 동사서독은 사랑의 세계를 다룬 왕가위 영화 중에서도 가장 고전적이고, 로맨틱하다. 사랑을 이루고자 했던 두 사람 황약사와 구양봉은 친구임에도 복잡하다. 언제나 찾아오는 친구의 방문을 거절할 수 없으며 친구의 방문으로 만날 수 있는 상대를 기약하며 매년 약속 없는 시간들이 지속되었지만 가슴속에 남은 허전함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다. 언제나 쌓여가는 기억은 구양봉만이 아니다. 자신의 객잔을 찾아오는 수많은 무협의 강호들에게도 똑같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의 아쉬움을 달랠 것은 없으며 그저 지나가는 감정을 붙잡은채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위해 살아간다.


무협영화 답지 않은 서사적인 구조와 함께 무협을 행하는 장면마저도 왕가위의 낭만성이 독창적으로 드러난다. 해를 봐야만 시력을 볼 수 있는 인물과 왼손잡이 검객, 비 속에 흔들리는 장면을 통해 베이는 수많은 검객들의 혈투를 보면 영화는 무협의 짜릿한 액션보다는 몽환적인 형태의 무언가를 깨닫기 시작한다. 왕가위의 무협은 그들의 감정이 얼마나 몽환적이고 흐릿한지를 보여준다. 또는 잘려나간 그들의 죽음에 통쾌한 액션보다는 허무한 감정만이 그 안을 잠식한다. 어차피 변하지 못할 과거처럼 그들의 내공을 발휘하는 무술 장면들은 관객들에게 절망적인 감정까지 전달한다. 이렇게 영화가 모두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와도 그 감정의 복잡함은 끊임없이 나를 잠식해온다.


이러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영화는 왕가위밖에 할 수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나의 표현 방식들이 서사로 엮었을 때 클리셰 범벅처럼 쏟아져버리는 서사는 유치하다. 그럼에도 왕가위는 낭만이 스며들도록 편집과 연출로 이를 해결한다. 조각처럼 잘게 잘린 장면들을 자기의 생각에 따라 끼어 맞춘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를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그렇게 모더니즘의 시대에서 낭만을 찾는 감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떤 이는 왕가위 영화에서 표현되는 반복적인 주제를 보며 자기 복제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주제의 반복이라고 해도 그 주제의 표현이 달라진다. 


동시에 영화만의 흐름이 바뀌면서 엔딩 크레딧에 남는 여운만큼은 다르게 느끼게 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왕가위 감독의 영화가 비슷해도 그것을 잊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결말 속에 품은 낭만은 다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가 비슷하다고 하지만 그의 영화를 놓지 못하는 이유라고 본다.


점수 : 4.5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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