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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야 Mar 10. 2021

[극장에서 본 오늘의 영화]
펀치드렁크러브

폴 토마스 앤더슨

펀치 드렁크 러브 (2002)

폴 토마스 앤더슨 흔히 PTA라고 불리는 감독의 영화는 한마디로 평가하기 어려운 영화들이 너무 많다. 잔잔한 바다 위에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를 모르는 상태로 거대한 폭풍우를 맞닥뜨리게 만든다. 영화는 점차 폭풍 속에서 혼돈을 느끼고 난 그 빈자리를 결말로 보여주며 관객들을 쥐고 흔든다. 하지만 이번에 이야기할 펀치 드렁크 러브는 PTA라는 영화에 세계에 고정되었던 편견을 벗어나게 해 준 영화이다. 사랑스럽고, 낭만적인 영화마저도 장르가 완전히 뒤섞일 정도로 만들어낸 영화이다. 그래서 나는 PTA 감독의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시작한다. 혹은 사랑을 아직 겪어보지 않더라도 감정은 느끼기 마련이다. 이것을 우리는 연애라고 말한다. 하지만 연애하는 것은 무조건 달콤하거나 아름다운 상황만이 펼쳐지지 않는다. 자신의 가장 은밀하고도 부끄러운 부분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은밀한 사생활을 감추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자신의 상태를 보며 놀라거나 민망한 자기의 위축한 모습에 스스로 분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는 것이 있다. 나의 벽을 허물고 상대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는 사랑하는 상대뿐 만 아니라 나와 수십 년의 시간을 같이 지냈던 가족에게조차도 거북스러운 문제이다. 


특히나 가족이라는 이유로 들켜버린 나의 사생활에 대하여 가족의 시선은 냉정하거나 고통스럽게만 느껴진다. 가끔씩은 나의 사생활은 문제라고 여기며 나를 통제하려는 남들의 시선과 간섭은 불편하다. 그런 와중에 사랑하는 연인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상대에게 사실을 밝히는 건 죽기보다도 싫다. 문제 있는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는 바로 이 점을 기준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의 주인공 배리는 부끄러움이 많고 자기만의 시간을 중요시 생각하는 남자이다. 다만 배리가 하는 유일한 소일거리가 있다면 푸딩에 붙은 스티커를 모아 항공 마일리지를 모으는 것이다. 평생을 여행도 다니지 않은 남자가 식품회사에서 하는 이벤트에 응모하기 위해 푸딩을 잔뜩 사서 항공 마일리지를 모은다는 것만으로 영화는 심상치 않다. 하지만 더욱 아이러니한 점은 배리의 가족들이다. 오로지 누나들만 있는 집에서 혼자 남자였던 배리에게 누나들은 폭풍처럼 느껴진다. 자신의 삶을 간섭하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사사건건 괴롭히는 이들과의 인연이 괴롭기만 하다. 그런 그에게도 사랑이 찾아온다. 


레나라는 인물의 등장으로 배리의 인생은 완벽하게 변해버린다. 그녀를 사랑하고자 자신을 감추려고 한다. 하지만 나의 신용카드 정보, 신분증 번호까지 알려주었던 과거에 폰섹스 업체가 그를 집요하게 괴롭힌다. 평생 자신을 감추고자 했던 배리가 그녀에게 그런 사생활이 들켜서는 안 될 노릇이었다. 결국 그녀에게 부끄러운 자신을 감출수록 그녀와는 멀어지기 마련이다. 결국 배리는 멀어진 그녀와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그녀가 여행 간 하와이로 쫓아가지만 여행이 끝나고 찾아오는 것은 악당들의 습격이다. 이러한 문제로 배리에게 남은 것은 자기의 부끄러운 사생활일까? 아니면 레나에게조차 들켜버렸지만 이해받을 수 있는 사랑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영화는 참으로 기묘한 결말과 함께 끝난다.  


영화의 장르는 로맨스 코미디였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폭발적인 액션과 진득한 로맨스 그리고 풍자가 전부인 코미디 드라마의 조합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멈추지 못하게 만든다. 특히나 폰섹스를 통해 욕망을 해소하기보다는 나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내고 싶었던 배리의 고백은 일품이다.  배리는 분명히 자신과 연결되지 않은 남에게서 나를 드러내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배리의 응어리진 욕망보다 물질적인 탐욕을 위해 그를 이용한다. 그래서 폰섹스 업체의 그녀는 배리의 은밀한 사생활을 훔쳐간다. 그는 자신을 감추었던 세상에 자신이 드러날지도 모르는 공포에 고통스러워한다. 이러한 사건은 현대사회에서 비일비재하다. 결국 내가 평생을 숨길 수밖에 없는 나만의 고민들은 오히려 감추고 사는 것이 편하다. 


사생활과 비밀은 나에게서 벗어난 순간 나와 친한 사람들 앞에서조차 그것은 당당해질 수 없다. 오히려 나의 약점처럼 받아들이는 상대들 때문에 부끄러운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복잡한 나의 속마음을 나에게는 항상 어렵기만 한 상대에게 보여주는 것은 죽을 만큼 힘들다. 하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는다면 나의 관계는 연결되지 않는다. 뚜렷하지 못한 의미로 그녀의 곁에 맴돌 뿐이다. 그래서 나는 상대가 나를 받아주기를 기도해야 한다. 만약 상대방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면 상대에게 나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꼴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우리는 관계를 맺기를 원할 때 페르소나를 뒤집어쓴다. 가면 속에 나를 가두고 겉으로 보이는 나를 위해 꾸미고, 불편한 진실보다 간편한 거짓을 택한다. 이것을 매우 편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페르소나를 벗어던질 필요도 없이 침묵하는 수행자처럼 살 수만 있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인생은 수행자로서의 침묵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 자신을 감출 거짓말을 사용하고, 익명 속에 숨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폭력과 술로 진실에 해부돼버린 부끄러움을 해소하거나 회피하고자 갖은 노력을 시도한다. 


그러나 모든 관계에서 사용하는 나만의 페르소나를 평생 가지고 살 수 없다. 거짓된 삶은 솔직한 나를 드러내지 못했을 때 느끼는 죄의식과 감정 폭발로 인해 폭력의 원인으로 돌아올 뿐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허물없이 드러내고 솔직하게 살아야 하는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솔직한 자신은 누군가에게는 돈벌이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은밀한 내면의 폭력성은 나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미쳐버릴 것 같은 현대사회 속에서 무엇이 옳은지 전혀 알 수는 없다. 


그렇기에 영화 속에서 주인공 배리의 선택을 보며 우리는 공감을 느낀다. 하지만 PTA 감독은 서사를 이용해 조심스러운 배리가 신용카드 번호를 알려주는 실수를 범하게 만든다. 그리고 기묘한 방법으로 그의 모든 것을 발가벗긴다. 동시에 배리는 자기 안에 감추기만 했던 내면의 폭력을 드러낸다. 레나에게는 절대로 보여주기 싫었던 부끄러운 행동이었지만 배리는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녀도 그의 모습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존재를 이해하고 자신들의 관계를 받아들인다. 


이렇게 영화는 서로를 열렬하게 사랑을 선택할 때 배리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언제나 끌려다니거나 정체성 없이 흘러가는 대로만 살아가던 삶을 벗어던진다. 오로지 그녀만을 위해 자신의 적극적인 행동과 의사표현을 단행한다. 솔직하게 맞서는 태도는 배리의 모든 것을 탈바꿈시킨다. 이것은 솔직함을 통해 얻게 된 용기이며, 숨겨진 나를 감추고자 모든 것을 회피하고자 했던 상황에 적극적으로 맞서게 되면 성장동력을 얻게 되었다. 


영화는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고백하는 과정이 곧 사랑에 대한 고백과 비슷하다는 역설의 표현을 상징하는 것 같다. 사랑한다면 페르소나 뒤에 숨은 자기 자신보다는 모든 것을 고백하는 것이 감춰진 현재보다는 낫다. 모든 것을 드러낸 상대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 나와 다르다고 해도 서로에게 맞춰가도 사랑은 충분히 이뤄진다. 폭력을 사용할 줄 아는 상대와 여행을 좋아하는 상대를 위해 시선을 맞춰가는 배리와 레나의 사랑말이다. 


이렇게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는 모든 로맨스 코미디 장르에서 나타나는 것을 서사를 충실히 이행했다.  현대사회에서 느끼는 관계의 메마름과 나의 존재가 부재되어가는 현상을 사랑으로 엮어내어 의미를 창출한다. 동시에 나라는 존재도 사랑을 통해 나 자신을 확인하고 성장을 겪어내고 둘 사이의 관계가 머뭇거렸던 태도는 서로의 진심을 깨닫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펀치 드렁크 러브는 다른 로맨스 코미디 영화의 충실함과 다르게 이질감을 느끼게 만든다. 무엇이 영화에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지를 생각해보면 바로 로맨스 자체에 대한 표현이 다르기 때문이다. 관계의 부재를 대화가 아닌 액션과 폭력을 선택하고 로맨스의 구조를 해체했던 폴 토마스 앤더슨만의 사랑찬가 때문이었다. 그래서 영화는 로맨스 코미디의 장르로서 우리의 감정을 뜨겁게 달구지만 폴 토마스 앤더슨이 내린 사랑에 대한 의미 덕분에 로맨스 영화에서 색다른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점수 : 4.5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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