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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야 Mar 17. 2021

[극장에서 본 오늘의 영화]
하나와 앨리스

하나와 앨리스 (2004)

이와이 슌지의 영화를 골라야 한다면 많은 이들은 러브레터, 4월 이야기를 고를 것이다. 누구라도 인정할 만큼 아름답고 감성이 묻어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와이 슌지의 영화를 이야기하라면 언제나 릴리 슈슈와 함께 하나와 앨리스를 고른다. 내가 좋아하는 이와이 슌지만의 이미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나와 앨리스라는 영화는 이와이 슌지의 첫사랑과 성장을 담아낸 영화이다. 언제나 선택해왔던 주제처럼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형태의 영화에 사람들은 자기 반복적인 영화라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나 보다 싶다. 그러나 하나와 앨리스의 방식은 조금 다르다. 과거라는 기억을 소재로 사용하지만 둘의 모습은 현재에 공존해있다. 절대적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자신들의 청춘을 즐기는 두 친구의 모습은 완벽하다. 하지만 각자만의 사건이 생기면서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던 두 사람에게도 미묘한 선이 그어진다.      


하나에게는 첫사랑이 앨리스에게는 갑작스러운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마치 이상한 연극처럼 벌어지는 사건들은 하나에게도 앨리스에게도 중요한 교차점이 된다. 이 점에서 이와이 슌지의 마법이 영화 전체를 조율하면서 하나와 앨리스를 완성해간다. 누군가는 유치한 서사에 이와이 슌지의 영화를 달리 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요소마저도 하나와 앨리스의 청춘이라고 생각한다면 영화는 참 사랑스럽게만 느껴진다.       

영화 하나와 앨리스는 중학교 때의 어떠한 사건에 의해서 만나게 된 두 소녀이다. 그 둘은 같은 발레학원에 다니면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와 앨리스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영원한 친구 사이였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입학 가는 그날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하나는 미소년이었던 미야모토를 스토커처럼 정보를 파헤치면서 그에 대해 알게 된다. 한 학년 선배에 만담 동아리 회원인 그를 쫓아 동아리에 가입도 한다. 하지만 쉽게 자기의 마음을 고백하지도 못하고 관심도 끌지 못하는 하나는 미야모토가 실수로 머리를 다치면서 기절했을 때 기억상실증이라고 속이면서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 이렇게 벌어진 사건을 수습하기는커녕 하나는 거짓말을 거짓말로 덮어간다.       


결국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 앨리스에게 자신의 연극에 동참해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하나와 앨리스 그리고 미야모토의 관계는 이상하게 엮이면서 이상한 형태의 삼각관계가 연결된다. 하지만 연극은 영원할 수 없는 법이다. 미야모토는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하나는 이렇게 밝혀진 사건에 분노하며 힘들어한다. 하지만 엮어진 관계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만들어진 새로운 관계, 옛 친구와의 관계까지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되돌아온다.       


정상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하나와 앨리스의 관계가 원래의 친구로서 이어지는 것이 정상일까? 영화는 하나와 앨리스의 특수성을 자주 언급하며 그 의미를 상기시킨다. 중학교 때 일어난 오해로 인해 시작된 하나의 과거에서 벗어나게 한 소녀 앨리스의 인연은 소중하다. 그것만으로 과연 이 둘의 관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영화는 그 둘의 관계를 집중하고 그들의 세계를 눈여겨본다. 하나의 세계가 그러했듯이 앨리스의 세계도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미 엄마와 이혼한 아버지와의 만남을 이어갔다. 그런다고 해도 자신이 지속하고 싶던 가족의 따스한 관계는 돌아오지 않는다. 자신이 느낄 수 없는 것에도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는 강인한 소녀이다. 하나는 어떠한가 과거로부터 탈출했지만 사랑하는 짝사랑에게 인정받고 싶은 소녀이다. 무리한 연극마저 할 만큼 누군가를 깊게 사랑할 수 있는 감정이 풍부한 소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의 소녀였던 시절에 대한 모습은 너무나도 닮았고, 애착이 가게 만든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추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면 추억은 바로 이상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억지스러운 대답이겠지만 그렇게 말할 것이다.       


이상한 나라는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굴 속으로 빠져서 들어간 나라이다. 이곳은 수 없이 이상한 사건과 인물과 존재들이 상상 속에만 나타날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나도록 만든다. 모자 장수도, 4월 토끼도, 하트 여왕도, 공작부인도 그들은 모두 어디 나사 하나씩은 빠진 듯한 존재이다. 그러나 이 모든 세계가 이상해도 앨리스에게 결말은 자기가 잠들면서 꿈꾸었던 상상했던 과거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한 나라는 마치 허상과도 같은 곳이라서 꿈을 꾸지 않는다면 알 수 없고, 가 볼 수도 없는 곳이다. 마치 추억의 공간처럼 우리는 추억을 나의 기억 속에서 꺼내오지 않는다면 가볼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추억은 이상한 나라처럼 모든 것이 이상하다.       


내가 기억할수록 내가 벌인 사건들은 어색하고 부끄럽다. 혹은 기억의 왜곡처럼 추억은 내가 기억하던 것과 다르게 펼쳐지기도 한다. 나만이 믿고 싶던 사건처럼 그 기억을 간직해 왔기 때문이다. 하나와 앨리스에서의 이야기는 현재의 모든 사건들이지만 동시에 추억이 되어버린 과거처럼 보인다. 이와이 슌지 감독도 이점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생각된다. 이상한 나라인 것처럼 학교의 축제 장면, 하나와 앨리스의 집 등의 공간과 시간을 이용한다. 이렇게 덧붙여진 이와이 슌지의 세계는 더욱 몽환적이다.       


현재를 왜곡하고 추억을 상기하듯 만든 영화 하나와 앨리스를 보면 지금 이야기를 해주는 화자가 현재의 주인공인지 의심스럽다. 마치 화자인 두 사람이 소녀의 자신보다 소녀를 지난 미래의 인물들이 들려주는 것 같다. 그때를 회상하며 대화하는 그 시절에 부끄러운 만담으로도 보인다. 자신들은 그때 진지했지만 돌이켜 보면 세상에 이렇게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그렇기에 영화에서 하나와 앨리스는 겹쳐진 관계 속에서 다시 한번의 각자만이 감정과 세계를 확장했다. 서로가 성장한 만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공유하는 과정을 겪었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영화를 보고 나서 돌아온 현실은 진부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영화의 끝에서 돌이켜 생각하게 만든 추억과 이상한 나라는 뚜렷한 의미를 남겨주었다. 그렇기에 이와이 슌지의 영화의 어느 영화에 비교해도 훌륭하다는 말을 건넬 수밖에 없다고 본다.       


점수 : 3.5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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