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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야 Mar 22. 2021

[Black &white] 이다

이다 (2013)

영화 '이다'는 수녀원에 속해있는 수습 수녀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신을 모시고 존경하며 순정과 순결을 따라야 하는 수녀들의 삶은 침묵으로 가득하다. 거기다 겨울까지 찾아오면서 신을 위해 숨소리도 내뱉지 않는다. 침묵은 건물 전체를 뒤덮고 있다. 신을 향한 공간 속에서 처음으로 침묵의 서약을 깨고 주인공에게 말을 던진다. 생존한 혈육이자 너의 이모가 있으니 찾아가라는 말이었다. 


수녀원에 평생을 살았던 주인공 '이다'로서는 밖이라는 공간은 두려운 곳이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버려지고 수녀원에서 길러진 그녀에게는 더없이 말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모를 찾아 나선다. 폴란드의 매서운 겨울을 뚫고 찾아간다. 그리고 마주한 그녀의 이모는 자신이 생각한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이다는 종교에 따른 순결도 없는 욕망에만 치우쳐진 존재였다. 하지만 그녀의 이모는 신 따위는 믿지 않을 사람이었다. 둘은 서로의 존재를 불편하게 인식했다. 


이모는 이다에게 또 하나의 불편한 사실을 가르쳐준다. 바로 그녀가 유대인이라는 진실을 말이다. 그러한 대답에 이다는 어찌할 줄 모른다. 유대인이라는 것도 부모에 대한 것도 모두 처음 듣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다는 자신의 이모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죽은 부모의 시신을 찾고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둘은 불편한 여행을 시작한다. 다만 여행이 끝날 무렵에 둘은 서로 상반된 존재가 되어버린다. 신에 대한 믿음으로 무장했던 그녀가 믿음에 여백이 생긴다. 그렇게 생긴 공허한 감정은 이모에게로 전염된다. 그렇게 남겨진 사람들은 무엇조차 채우지 못했다.  


세계대전이라는 암울한 전쟁 속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적인 과거와 남겨진 사람들이 죽은 자들을 기억하는 과정을 흑백으로 다루고 있다. 동시에 전쟁 직후에 변해버린 폴란드의 정치체계와 잔혹한 공산주의 시절이 겹쳐진다. 사라진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은 두 시대에 공허를 배워왔다. 그렇기에 신에 대한 믿음과 신념을 가지고 있더라도 과거를 바로잡을 수 없다. 


이야기는 그 지점을 중심으로 전개가 이어진다. 부모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버려진 아이 이다에게 과거를 찾는 동안 신으로부터 보호받았던 것과 다르게 감정이 요동친다. 하지만 이모의 감정은 요동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분노에 가까운 행동을 선보인다. 그렇기에 그녀가 자신의 언니의 시신에 집착하는 점은 의문스럽다. 이다의 냉정함보다도 과열된 분노는 부담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모든 서사의 끝에 이다의 부모 곁에 묻힌 소년만이 남아있었다.  


영화 '이다'에서 공허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어느 홀로코스트의 영화에서 볼 수 있던 분노와 슬픔도 빨려 들어갈 만큼 차갑다. 그렇기에 영화는 다른 홀로코스트의 영화와는 달랐다. 학살당한 가족을 쫓는 남겨진 가족의 서사를 흑백으로 그려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의미 있는 점은 시대적인 배경이었다. 영화는 전쟁과 전쟁 이후 사회를 이중적으로 구조화시킨다. 그리고는 학살당한 사람들과 학살될 피고인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마주 보게 만든다. 피해자의 가족으로 남겨진 인물과 가해자로 학살의 주범이 된 인물은 복잡하다. 


그렇기에 이다가 보는 세계는 더욱 심오했다. 인생이 곧 신으로 직결되었던 이다에게 이모는 복잡했다. 하지만 이모의 삶의 마침표를 찍는 여행의 마지막 날은 달랐다. 이다는 이모를 통해 과연 신에 대해 묻게 만들었다. 퇴폐적인 삶의 이유와 공허를 배워보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신의 길을 선택한다. 그녀가 공허함이 사라지는 방법은 신을 믿으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을 것인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알 수 없다.  


오히려 그녀는 과거를 직접 마주한 자로서 흔들리는 인간이 되어 신에게 걸어 나간다. 가해자로서 또 다른 학살을 경험했지만 얻을 수 없던 이모를 대신해서 말이다. 다시 돌아가는 그녀의 여정은 순탄치는 않다. 두려운 감정을 품은 채 길을 되돌아 가야 했다. 그렇기에 그녀가 처음으로 신을 향한 감정이 아닌 자신의 심정을 드러낸 엔딩은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러면 이다는 신에게 돌아가기에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과거를 마주 볼 수는 있게 되었다. 그것은 거대한 성장이고, 자신의 가는 길에 대한 확고함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점수 : 4.5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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