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의 왕

마틴 스콜세지

by 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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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조커에서 익숙함을 느꼈다고 생각할 정도로 영화는 조커와 닮아있다. 아니 조커보다 더 미쳐버린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코미디의 왕이 되고 싶은 한 남자 루퍼드 펍킨의 인생은 아이러니하다. 무엇이 진실이고 허구인지 스스로 구분할 수 없다. 영화는 그런 그를 코미디의 왕으로서 영상 속에 그려낸다.


영화 코미디의 왕은 유명 코미디언이자 쇼 비즈니스 진행자인 제리를 동경하는 남자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루퍼드 펍킨이라는 인물은 나사가 빠진 존재 같다.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현실에서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비웃는다. 그럴수록 그는 자기가 믿는 세계를 믿는다. 바로 코미디라는 왕국 그 자체이다. 그에게 있어 코미디는 우스꽝스러운 농담과 표현으로 사람을 웃기는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코미디 속에 세계는 나의 모든 것이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가 세계의 전부가 되어준다.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삶과 과거를 농담처럼 자연스럽게 내뱉는다. 그렇게 그가 농담을 했을 때 사람들은 그의 말에 웃어준다. 모든 것이 농담이라고 생각해서 심각한 현실은 잊어버린다. 마치 밀란 쿤데라의 소설 농담의 한 문장이 연상된다. '나는 이 옛날의 세계를 사랑했고, 내게 피난처가 되어 달라고 빌고 있었다.' 이 문장처럼 코미디는 그에게 피난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농담과 완벽한 코미디를 선사하는 왕이었다. 하지만 영화의 끝으로 갈수록 왕의 농담은 코미디가 아닌 것으로 변해버린다.


영화는 스스로를 코미디를 잘하는 코미디 세계의 적임자로 생각하는 루퍼트 펍킨의 한 사건을 주목한다. 펍킨은 코미디계에서 유명한 인물 제리를 우연히 돕게 된다. 그를 도와준 대가로 제리의 차를 타는 영광을 얻는다. 펍킨은 스스로 코미디언이라고 생각하며 제리의 토크쇼에 출연하기를 요청하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는다. 그럴수록 그는 제리라는 인물을 자신의 친구이자, 동료이며 어깨를 견줄 인물이라고 믿기 시작한다.


영화는 점차 광기 속에 빠져가는 펍킨의 문제를 다각도로 주목하기 시작한다. 제리에 대한 집착과 코미디라는 세계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지만 그는 모든 것이 실패한다. 그래서 펍킨은 위험한 방법을 이용해서 제리의 토크쇼에 출연을 요구한다. 결국 그는 제리의 토크쇼에 하루 동안 출연하면서 혜성 같은 데뷔에 성공한다. 킹이라는 이름을 사용해서 말이다.


영화는 화려한 코미디의 왕이 데뷔하는 과정에 대한 아이러니를 담아낸다. 코미디의 세계에서 모든 것이 농담처럼 허용된다. 제리와의 만남과 토크쇼에 대한 이야기도 가능하다. 자신을 부정했던 학교와 사회로부터 인정받는다. 모든 것을 보상받는 듯한 기분으로 자신을 인정받는다. 다만 펍킨의 세상은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자신의 집마저도 화려한 토크쇼의 스튜디오로 꾸며놓은 채 살아간다.


언젠가 자신이 코미디의 세계에서 성공했을 때만이 진정으로 세상에 공개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것이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는 TV에서 데뷔에 성공한 코미디언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모든 것은 실패한 인생에 지나지 않는다. 왜 영화는 실패한 남자 루퍼드 펍킨의 코미디를 주목하였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그의 섬뜩한 스탠드 코미디와 뇌리에 영원히 박혀버린 그의 농담 아닌 농담은 영화를 보는 내내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섭다. 오히려 루퍼드 펍킨 그 자체가 코미디인가도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루퍼트 펍킨을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롱거리처럼 전락된 그에게 동정을 느낀다. 성공하지 못한 인생에 대한 안쓰러움에 말을 잇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었다. 그 점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과거부터 곁에 있어왔던 폭력과 가난은 펍킨을 물들였다. 평생을 따라붙은 문제아 꼬리표와 정신병원의 기억은 그를 농담처럼 만들었다.


세상은 그를 정의 내린 지 오래다. 미쳐버린 코미디의 왕. 하지만 코미디의 왕은 루퍼트 펍킨이라는 인물에게 중요했다. 그것은 이미 미쳐버린 현실에서 미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그들에 대한 복수였다. 혹은 맹렬하게 열정을 쏟아부어서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고 증명하는 표식이었다. 그렇게 미쳐버린 세상과 미쳐버린 사람들 사이에서 비웃음 당하는 루퍼트 펍킨이 조롱거리로 전락당한 자신을 부정하고 했다. 오히려 자신이 조롱거리가 아니라 모든 이들을 웃긴 존재로 승화하고자 선택한 결과였다.


그래서 그는 코미디의 세계에서 관객에게 주목받아야 했다. TV쇼에 등장해서 많은 시청자들이 자신을 바라봐야 했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인물에게도 인정받아야 했다. 왜냐하면 그는 코미디의 왕이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미쳐버린 현실을 말하는 것보다 코미디가 더 낫기 때문이다.


영화는 루퍼트 펍킨의 우연한 코미디에서부터 시작했지만 코미디는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코미디는 세상의 뿌리 박힌 전부였다. 그래서 세상이 우스꽝스러운 이유를 찾고 싶어도 찾아낼 수도 없다. 왜냐하면 세상은 코미디를 연 속으로 꼬아내서 복잡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세상은 우스꽝스러운데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누구에게 소송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소송을 선택한다. 방송국의 흥행을 위해 선택한다. 테러리스트의 메시지 혹은 공산주의자의 습격을 두려워한다.


가난과 폭력은 누군가를 구원하지 않는다. 부자라도 세상은 외롭고 침울하다. 사랑받지 못한 욕망은 웃음으로 변했고 점차 집착으로 변한다. 무엇하나 가 완벽하지 못한 세상은 관객들의 웃음 속에서 묻혀버린다. 모든 것은 하루 동안 일어나는 코미디이다. 그렇게 믿고 하루를 넘기면 세상은 여전히 코미디의 상태다. 그곳에서 왕은 코미디를 한다. 그는 세상의 미쳐버린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 왕으로서 자기가 겪어낸 현실을 말이다. 하지만 관객과 시청자는 코미디의 왕이 내뱉는 우아한 농담 따위에는 안중에도 없다.


그렇기에 영화의 결말을 보면서 나는 지독할 정도로 비참함을 느꼈다. 데뷔한 코미디의 왕 루퍼드 펍킨의 현실과 환상에 대해서 정확한 결말을 내리지 않는다. 또한 그는 유창하게 해왔던 코미디를 더 이상 꺼내지 않는다. 관객의 기대감과 환호성에도 그는 침묵했다. 그것을 두고 많은 이들은 결말에 대해서 의문을 가진다.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 결말의 현실과 환상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쳐버린 세상이 코미디처럼 그를 추종한다. 범죄를 저지르고 고약한 농담으로 불편한 세상을 꼬집어낸 루퍼트 펍킨을 말이다. 감독은 이를 통해 펍킨이라는 인물이 코미디의 왕으로서 의미가 되기보다 코미디 같은 세상에 던져진 왕이라는 점에 주목한. 그가 뇌리 속에 담아두었던 코미디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대신 펍킨이 미친 남자의 데뷔에만 주목했다. 관객들은 그가 던진 위험한 코미디 대신에 여전히 그의 모든 것을 조롱한다. 그는 성공한 코미디언인가를 물어본다면 나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루퍼트 펍킨은 코미디의 왕으로서 무대 위에 자신만의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그의 코미디는 실패했다. 그리고 그는 코미디처럼 미쳐버린 세계에서 주목받는 실패자였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코미디언 루퍼트 펍킨의 농담에 웃고 싶었지만 감독은 절대로 웃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점수 : 4.0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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