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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야 Apr 08. 2021

[극장에서 본 오늘의 영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반지의 제왕 - 왕의귀환 (2003)


영화 반지의 제왕의 마지막 시리즈 왕의 귀환은 판타지 영화의 절정이자 인간승리를 보여준다. 웅장한 시리즈와 방대한 원작을 축약한 만큼 영화는 왜곡도 있었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은 어떠한 영화보다 인생에 대한 의미를 가르쳐준 영화라고 생각된다. 가장 위대한 판타지 시리즈의 마지막을 감상하게 되어서 기쁘다. 


사우론과 거대한 악의 세력으로부터 승리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집약한다. 포기하거나 두려움으로 등을 돌렸던 이들마저도 사우론의 맞서고자 전쟁터에 나선다. 물론 모든 인간들이 그렇지는 않았다. 사우론의 세력에 붙어 같은 인간을 공격하기도 했다. 그들이 맞서 싸우는 것은 무모했다. 하지만 그들을 악의 세력과의 전쟁을 피하지 않는다. 운명을 무시하고 미래를 접어둔 채 말이다. 그렇게 그들은 나약함을 던지고 승리를 쟁취했다. 두 개의 탑과 반지 원정대에서 인간들은 아직까지도 분열과 절망 속에 족속 되었다. 


언젠가 악의 세력이 자신들을 집어삼킬 것이라는 공포는 피부에 새겨져 있었다. 무너진 인간들의 나라 곤도르는 더욱 그러했다. 몇 번의 전쟁에도 굳건히 버텨온 세력이지만 쇠퇴하는 시대는 거스를 수 없었다. 그렇기에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서 그들을 규합하고 하나의 세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얻은 용기를 바탕으로 승리했다. 그러나 영광스럽고 위대한 결과라기에는 초라했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기록할 페이지를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은 승리를 얻기까지의 노력했던 인간들의 험난한 전쟁을 배경으로 담아낸다. 아라곤과 로한은 사루만을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사루만의 군대가 무너져도 사우론은 남아있다. 전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하지만 곤도르와 로한 그 두 세력이 하나의 힘으로 합치지 못했다. 곤도르에는 왕이 없었고, 로한에는 곤도르를 향한 배신감이 남아있었다. 그런 전쟁의 서막 속에서 간달프는 사우론의 다음 계획을 알게 되어 곤도르로 향한다. 섭정 데네소르의 어리석은 행동에 전쟁이 시작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그들은 달라져야 했다. 


나약한 인간 데네소르를 무시하고 간달프와 곤도르의 군대는 사우론을 막아선다. 수 없는 희생이 넘치는 전쟁 속에서 로한은 곤도르의 구원 요청에 군대를 파견한다. 또한 아라곤은 자신의 조상과 약속했던 동맹군을 다시 불러 모아 반지 전쟁에 참여시킨다. 운명이 새로운 방향으로 길을 만들었다. 하지만 사우론의 세력은 강대했고 절대반지는 파괴되지 않는다. 그래서 곤도르와 로한 세력은 반지 운반자를 위해 무모한 계획을 세운다. 바로   원정대의 앞을 막아서는 모르도르의 오크들과 사우론의 관심을 유도시켰다. 한 낯 미래를 알 수 없는 순간 반지는 화염의 산에서 파괴된다. 사우론은 야욕을 이루지 못한 채 소멸한다. 


절대 반지의 파괴와 사우론의 소멸 그리고 운명을 바꾼 자들의 이야기는 후세를 거듭하여 전승된다. 전승되는 이야기는 흥미로운 모험담이 전부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살아가는 여정을 기록하는 방법을 알려준 영화였다. 우리에게 기회는 수 없이 찾아온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회는 행복한 여정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우연이라고는 하지만 불행과 접목되어서 우리의 인생에 불편을 줄 때도 많다. 반지 원정대의 시작도 마찬가지였다. 절대반지를 파괴해야 하는 임무를 우연하게 얻었다. 자신의 삼촌 빌보에게서 물려받은 것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자신과는 전혀 관련 없을 모험에 끼어들었다. 오크들을 피해 사우론에게서 도망쳐 운명에 산에 올라야만 했다. 프로도의 운명과 나의 인생은 조금 비슷하다. 그리고 후회를 느끼고 고민을 반복한다. 하지만 프로도는 버텨냈고 샘은 끌고 간다. 그 둘은 끝내 운명의 산에 도달한다. 나 하나만 포기하면 모든 것을 편하게 살 수 있다. 고작 손가락에 끼우는 반지의 중압감에 시달릴 필요도 없었다. 영화의 결말이기에 샘과 프로도는 주인공이니까 할 수 있는 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주인공이 아닌 우리는 그들과 다르기에 포기해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 반지에 의해 사우론이 부활하는 허무맹랑한 걱정은 필요 없다. 그저 내 인생의 기회 중에 하나가 날아갈 뿐이다. 그러나 기회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달라질 것이다. 절대반지처럼 어마 무시하게 변화되지는 않지만 세상은 변한다. 여정을 시작하고 고통스러운 여정을 지난다. 고통스러운 운명에 포기를 할까 하는 유혹에 휩싸인다. 그래도 끝내는 많은 사람을 규합하고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얻어낸 승리는 위대했다. 


물론 승리 뒤에 찾아온 결과는 초라할 수도 있다. 기회만큼의 보상은 부족하고, 미래에 나 자신은 부족해 보이기도 하다. 호빗과 엘프, 난생 그리고 인간들의 승리 또한 그러했다. 사우론의 소멸 뒤에는 인간의 세계로 복구되는 것이 전부였다. 곤도르의 새로운 왕이 취임하였다. 로한과 곤도르의 역사는 지속된다. 호빗들은 샤이어로 다시 돌아왔다. 승리라는 영광을 얻고 나서 찾아온 미래는 이전과는 다를 바 없는 인생이다. 그래도 우리는 사우론을 물리치고 승리를 얻기까지 아무것도 모른다. 승리를 얻은 후에도 우리가 어떻게 되어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정을 떠난다. 페이지에 기록될 무언가를 찾고자 말이다. 


그래서 영화 반지의 제왕은 인생의 지침서와 같다고 생각한다. 여정이 다사다난했지만 승리 후에 얻게 될 영광은 부족하다. 그리고 나의 미래는 실망스럽다. 그만큼 인생은 나를 향해 아무것도 모르는 형체로 다가온다. 그래서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뒤에도 다시 미래를 위해 달려야 한다. 그렇다고 기회를 포기하고 운명에 맡겨진 인생을 살기에는 생애가 너무 길다. 그만큼 삶은 복잡한 것들 투성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든 인생을 기록하며 살고 있다.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할까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영화는 인생은 아무도 모르기에 살아야 한다고 대답하는 것 같다. 아이러니하지만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반지 원정대의 프로도의 샘이 운반자로 여정을 떠날 것은 관객들은 알고 있다. 특히나 그들의 여정이 험난하며 고통스러울 것도 안다. 하지만 주인공 프로도와 샘은 모른다. 우리 인생도 관객이 있다면 미래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모른다. 그래서 마주한 것에 최선을 다하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얻은 승리와 미래에 다시 도전한다.  


결국 영화 반제의 제왕 시리즈는 원정을 떠났고, 용기와 위상을 얻어내며, 승리하고 귀환한다. 나의 인생의 페이지도 마찬가지다. 저런 여정을 아무도 모르기에 살아봐야 한다. 비록 저런 여정의 기록만큼을 아닐지라도 말이다. 프로도와 샘이 우연히 얻게 된 운명처럼 말이다.


점수 : 5.0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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