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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야 May 12. 2021

[극장에서 본 오늘의 영화]
더 파더

더 파더 (2020)

영화 더 파더를 보면서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는 아직 죽지 않았구나를 느꼈다. 그만큼 치매라는 무서운 병을 가진 노인을 연기하는 그의 모습에는 현실이 담겨 있었다. 특히나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닥칠 불행과 공포를 느끼게 만들어준다.


영화 더 파더는 나의 미래에도 언젠가 일어날 수 있을 사건임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나의 부모 혹은 형제 아니면 나 자신에게도 닥칠 수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축적된 기억은 언젠가 누군가를 잡아먹는다. 다만 기억은 단숨에 그를 헤치지 않는다. 서서히 그의 행동을 무력화시킨다. 사고를 멈추게 하다가 끝내 혼란을 느끼게 만든다. 


주변 인물들에게도 그의 행동은 공포이며 절망이다. 특히나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부모를 원망할 수도 없다. 부모는 죄가 없다. 그렇기에 원망할 대상도 없었다. 영화는 치매라는 소재를 공포와 미스터리를 결합하여 이야기를 구성한다. 치매라는 소재를 이용할 때는 대체적으로 슬픔을 끌고 온다. 치매가 걸린 당사자가 아닌 그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이용해서 말이다. 


하지만 더 파더에서 치매는 달랐다. 특히나 주인공 안소니가 겪게 되는 사건들이 여러 개로 분할시킨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느낄 감정과 혼란을 스크린에 표현시킨다. 그에게 있어 지금의 현실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결과물이 퍼즐처럼 짜였을 때 이미 잔혹한 현실은 지나간 뒤였다. 


그만큼 영화는 잔인하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주인공이 겪게 되는 과거의 기억은 모두 허구에 가려져 있다. 우리는 허구 속에서 진실을 찾아야 한다. 영화는 묘한 긴장감을 만들었다. 하지만 현실이 개입하면서 영화는 잔인하게 변했다. 


현실에서 자신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기억 속에 자신은 충분하다고 느껴도 세상은 온전하지 않다. 자신이 생각할 것을 모두 잊어버렸다. 영화는 그 지점을 마주하게 한다. 주인공은 그대로 무력해진다. 자신감이 넘치던 그의 태도와 혼란스러움에 맞서 싸우려는 모습은 한순간의 어리석은 존재로 추락시킨다. 아버지라는 권위 대신에 기억 속에 남은 자식만이 존재한다. 


그러다가 점차 자신이 매달리던 기억은 무너진다. 끝내 그에게 남은 것은 현실뿐이다. 나는 그 지점에서 슬퍼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분명히 슬퍼서 눈물이 나야 할 장면이었다. 하지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암시되었던 결과가 끝내 실현되었다는 사실에 힘이 부쳤다.


특히나 영화는 주변 인물이었던 딸 앤을 이용하여 치매라는 잔인한 면모를 부각한다. 안소니에게 그녀는 기억 속에 파편이었다. 하지만 시간과 동선이 퍼즐처럼 짜 맞춰진 순간 그녀는 파편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동시에 치매환자의 현실로서의 감정을 관객들에게 부각한다. 


단지 치매환자를 보호하는 불편한 행동을 넘어선다. 오히려 잃어버린 기억으로 인해 그녀가 받게 될 상처와 불안을 기록한다. 그를 더 이상 보호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그녀에게는 무리한 선택 같다. 하지만 그녀는 현실과 선택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잔인한 행동을 실행에 옮긴다. 아버지를 끝까지 책임질 것이라는 강한 믿음과는 별개였다. 


영화 속에서 그녀를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드물 것이다. 보호자로서 아버지를 지키고 싶어도 세상을 녹록지 않다. 경제적 여건과 시간은 언제나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끝내 선택한 딸의 결정에는 딸보다 더 슬픈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화 더 파더는 지금까지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잔인했다. 살인도, 표현된 광기도 없었다. 피 한 방울도 영화에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는 끝없이 나를 괴롭혔다. 미래의 나 자신이 치매가 올 지도 모를 현실이 무서웠다. 치매로부터 보호자가 되었을 때 같은 딸 앤과 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다. 


이런 사실들이 가슴 깊이 새겨들었다. 무엇보다도 그런 영화적인 환상은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했다. 영화는 현실의 시간들을 편집해서 만들어 놓은 환상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영화관을 나왔을 때 영화 속에 장면들이 잊히지 않았다. 아니 안소니 홉킨스의 마지막 장면은 좀처럼 잊을 수 없었다. 대상자와 보호자 두 모습을 모두 상상하면 더욱 그러했다. 


점수 : 4.0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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