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 달러 베이비 by. 클린트 이스트우드
인생에서 가끔씩은 내가 도저히 알 수 없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다만 내가 받아들인 결정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내가 실패를 할 수도 있다. 혹은 성공해서 내 인생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지나간 직후에 알 수 있는 결과론과 같다. 진행 과정 중에는 과정에만 몰두해야 한다. 흘러가는 대로 움직이다가 모든 것이 끝났을 때 우리는 지나간 자리를 돌이켜본다. 다만 주변의 인물들이 평가하는 성공과 실패의 의미가 아니다. 자신이 인생에서 선택한 결과에 후회하느냐 아니면 받아들이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그런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초중반만 해도 성장영화, 가족영화라는 수식이 잔뜩 매달린 영화라고 믿었다. 프랭키와 매기의 관계는 특별했다.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챔피언과 그런 챔피언을 보좌하는 트레이너의 모습이 강렬했다. 동시에 가족으로부터 멀어지거나 가족의 이기적인 매달림에 지친 두 사람의 연대마저도 특별했으니까. 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모든 수식어를 떼어냈다. 대신에 영화를 관통하는 한 가지의 의미를 담았다. 바로 인생에서의 선택이다.
인생에는 수많은 상황들이 직면해있다. 그리고 그 적절한 상황을 선택하며 인생을 진행시켜나간다. 어린 시절에는 간식을 고르고, 대학을 가고, 취업과 결혼, 육아를 거쳐 죽음까지 말이다. 다만 우리들의 선택이 언제나 맞아떨어진 것 아니다. 매번 실패라고 생각하며 과거를 후회한다. 또는 잘못된 문제라고 여기며 인생의 선택을 되돌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인생이 결정된 직후에 성공과 실패가 갈라지는 것은 훗날의 이야기다. 그에 대한 영향력을 현재의 시점에서 평가를 내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프랭크도 그런 존재라고 생각된다. 매번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스스로를 자책한다. 두려움에 떨어서 선수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다. 자신이 결정한 결과를 미루기만 할 뿐이다. 언젠가 받아 들어야 할 결과를 다음으로 미루기만 할 뿐이다. 그의 겁 많은 모습은 영화 속에서 겉으로만 보여주는 카리스마와 다르게 안타깝게만 느껴진다. 매기와의 만남을 통해 그의 과거를 청산했다. 그러나 이전까지 그가 내린 결정에 민감한 평가서에 걸음을 멈췄다. 그가 만약 용기를 내서 결과를 받아들였다면 삶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매기에게조차도 그는 선택을 거부했다.
자신의 챔피언이자 가족이기에 거부했을까? 오히려 자신에게 변명하고, 숨기 위해 그녀의 시선을 회피했다. 다만 마지막 그의 변화와 결정을 받아들인 프랭크의 모습은 영화가 끝나고도 잊을 수 없었다. 삶에 있어서 모든 결정은 받아들이지 않거나 도망쳤던 그가 내린 결정이었다. 그의 결정을 돌이켜보면 평가할 수 있는 사안은 많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결과에 실패했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결과에 평가보다 결과 자체를 받아들였다. 성공과 실패는 평가에 따라 결정된다. 기록에 항의도 가능하다. 하지만 나 자신의 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힘들다.
그만큼 인생에서 내가 결정한 것이 많을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인생의 선택들이 결과에서 벗어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지도 고민하게 되었다. 나의 삶에 주권을 가지고 내가 결정한 것이 하나라도 있을까? 그리고 그 결정을 나는 다 이해했을까?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수많은 훈수들이 내 결정에 박혀서 내 결정이라 믿으며 결과를 기다렸다. 실패하면 훈수한 남들의 탓이 되었다. 성공하면 나의 결정이 맞았다며 좋아하지만 그것이 내가 결정한 것인지 정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점을 일일이 따져봤자 결과는 평가론일 뿐이다. 중요한 건 내가 결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마치 프랭크의 마지막 결단처럼 내가 진중하게 내렸다고 믿는 것을 받아들였는지 모른다. 프랭크도 가족같이 곁을 지켰던 매기를 위해서 저지른 행동이다. 하지만 프랭크도 자신의 결정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안다. 하지만 그는 결정을 순순히 받아들였기에 망설임이 없었다. 굳이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나 생각할 수 있다. 내 인생에서 결과만 좋으면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이 등장할까 봐 우리는 근심을 달고 살아간다. 그래서 매번 선택의 늪에 빠질지도 모른다. 진짜 내가 선택과 결정인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결국 인생은 수많은 선택에 따라 결정된다는 말처럼 수많은 선택들이 나를 괴롭힌다. 단지 선택들이 내가 받아들인 선택보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찍은 것이 더 많은 것에 후회를 느낀다. 지금이라도 별반 차이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인생에서 선택이 많아서 그럴 것이다. 결국 다시 흘러가는 대로 내가 진짜로 받아들였는지 결과에만 집착한다. 그리고 선택을 잊어버린다.
하지만 프랭크처럼 내가 변화되거나 추구해야 할 것이 있다면 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 프랭크는 매기를 처음에는 거부했다. 하지만 그는 모쿠슐라로서 그녀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까지 그가 선택하고 받아들였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매우 쉽다. 그러나 프랭크처럼 행동하는 것은 어렵다. 일단 나를 믿는다는 것부터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영화 속에 프랭크는 씁쓸한 결과에도 그녀를 위해 자신의 선택을 받아들인다. 다만 그가 선택 이후에도 감정이 몇십 번이고 바뀌었을 것이다. 그래서 남은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 것이다.
우리는 그보다 더 힘들지도 모른다. 그래도 버텨내야 한다. 그래야만 다음에 있을 선택과 결정을 이어갈 수 있다. 모든 인생이 종점에 다다를 때마저도 선택은 필요하다. 그러니까 죽음조차도 우리는 결정해야 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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