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 프로스트 펑크(2018)
지구의 기온이 높아지고 각 나라들의 기후가 변해간다. 과학자들은 빙하기의 시대가 돌아올 것을 예측하며 환경문제를 앞장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인류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석탄연료는 지속되었고, 쓰레기 문제는 여전히 방치되었다. 인류의 무분별한 결정에 지구는 더이상 분노를 참지 않는다. 돌연 그가 파업을 선언했다. 더이상 지구에는 살아있는 생명체를 기대할 수 없을만큼 추워졌다. 결국 동식물이 생존하지 못하는 척박한 눈과 얼음의 대지로 변해갔다. 인류는 척박해진 토지와 무너진 국가를 뒤로하고 생존을 위해 길을 떠났다. 살아남기위해 중앙에 거대한 발전소를 지었다. 그리고 남은 자원으로 그들을 먹이고, 옷을 입힌다. 나는 원칙에 따라 분배를 맡고, 그들을 통제하게 된 사령관이 되었다.
얼어붙은 세계를 이야기하면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있을 것이다. 바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이다. 얼어붙은 대지 위에서 철도를 따라 움직이는 설국열차라는 소재는 매혹적이다. 하지만 설국열차의 세계는 또 다시 이야기 할 것이기에 잠시 접어둔다. 대신에 2018년에 나온 인디게임 프로스트 펑크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고 싶다. 게임 프로스트 펑크는 예고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 이유는 디스 오브 워 마인 제작사의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실제 상황에서 생존자의 선택과 반영된 현실을 게임 속에 그대로 스며들게 만들었던 그 게임 말이다. 제작진은 전쟁의 참혹함을 실감시키고도 부족했는지 멸망한 세계와 생존자의 시점을 게임 속에 담아냈다.
다만 게임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보통의 생존게임처럼 좀비를 막고, 살아남기 위한 수단을 강구한다. 대체적으로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약간의 차별점을 두고있다. 바로 도덕적인 선택이다. 프로스트펑크에서 도덕적인 선택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달라진다. 어린아이를 차디찬 일터에 내보내기도 한다. 부족한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생존자들에게 주는 식량을 부족하게 배분하거나 안좋은 물질을 넣어 양을 불려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수단이다. 플레이어의 도덕심에 따라 맡기는 결과는 게임을 진행하는 내내 고민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다.
게임은 점차 플레이어의 생존적인 도덕을 넘어서 집단의 정체성을 만드는데도 적용된다. 우리들만의 신을 믿어 생존자 집단을 강력한 종교로 지배할 것인가? 강압적인 파시즘을 전파해서 그들을 하나의 단일 세력으로 무장시킬 것인가? 옳은 선택을 할 수록 그들의 생활은 풍족하지만 게임 진행일수가 길어질수록 플레이어의 선택에는 신중함이 묻어나게 된다. 그러나 만약 얼어붙은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그들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게임을 한다면 고민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생존자집단을 위해서라는 말을 반복하며 노동을 하는 인간을 기계처럼 사용하고, 죽은 시체의 장기를 떼어내고, 잘먹고 잘 살자라는 일념으로 지도자의 통치아래 살아남으면 되니까 그만이다.
그러나 생존이라는 목적을 가져도 인간은 인간이라는 존엄성에 대해서 잊을 수 없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지만 같은 조건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약점과 삶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기에 부족한 것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지원받으며 불평등한 것들을 맞춰나간다. 완전한 평등은 없겠지만 불평등의 차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끊이지 않는다. 다만 상황이 생존으로 맞춰진 사회라면 달라져야 할까에 대한 의문을 품는다. 살아남기 위해서 약자를 버리고, 불필요한 노동력을 감축시킨다. 만약 그들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가 대신 그들의 짐을 짊어지고 가야한다. 풍족하지 않는 삶에 또 다른 짐은 힘겹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지도자가 생각한 도덕적인 행동에 점차 나빠지는 상황이 치솟을 수록 그들은 플레이어를 내쫓아버린다.
하지만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주지 않고 생존에만 몰두하면 또 다른 입장을 가진 이들의 희망은 사라지고 사회는 암울하게 변해갈 뿐이다. 고통받는 현실이 수레바퀴처럼 빙빙 돌아가는 현실에 우리가 어디를 따라야할지 참으로 어렵게만 느껴진다. 무엇이 옳다고 단정짓기는 힘들다. 도덕적인 선택이 당연히 훌륭하겠지만 그리 쉬운 선택은 아니기에 더욱 지쳐간다. 그래서인지 프로스트 펑크는 정해진 결말을 내주려고 하지 않는다. 도덕적인 선택으로 모두가 해피엔딩을 맞이하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플레어이는 게임이 끝날 뿐이지 모니터 너머의 그들은 여전히 생존 중이기 때문이다. 언제 죽을지 모를 운명에 맞선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기 때문이라는 메세지를 담은 것 같다.
그만큼 프로스트 펑크는 인류의 멸망과 생존을 담아낸 게임이며 인간의 존엄성의 가치와 평등 그리고 도덕적인 의미를 극단적인 형태로 묻고 있는 게임이다. 전쟁은 일어나고 있는 지역과 그 주민들의 문제이다. 또한 전쟁은 인간의 의해 시작되어도 희망이 조금은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전쟁을 넘어 인류 전체가 위협당하는 상황 속에서도 과연 도덕적인 결정을 지지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다른 점은 책 속에 설명과 긴 문장을 배제한다. 그리고 상황 속에 투입시켜 그들에게 제시한다. 극단적인 상황이라서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니까 라는 변명을 동반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게임 시나리오를 끝낼때마다 내가 과연 도덕적인 선택을 현실에서도 내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제작진들이 말하고 싶은 의미를 그대로 이해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의도에따라 영향을 받는 것같다. 살아남았을 때 도덕적인 의미를 모두 부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그렇게 존엄을 지켜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