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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야 Jul 23. 2021

저널리즘 시대의 논리

더 포스트 by. 스티븐 스필버그

더 포스트 (2018)


영화 더 포스트는 언론에 대한 영화이다. 70년대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파헤친 기자들의 숭고한 노력을 담았다. 70년대라는 혼란 속에서 국민을 속이려는 정부를 향한 날 선 도전은 지금도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강렬하다. 특히나 사주의 입장에서 진실과 경영이라는 두 가지 난제를 두고 있는 캐서린과 기자들의 실제 모습은 영화보다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렇게 저널리즘을 위해 시작하여 저널리즘으로 끝난 영화는 완벽했다. 


하지만 70년대의 저널리즘은 위대함으로 칭송받지만 21세기는 다르다. 신문과 뉴스가 살아있고, 라디오도 방송을 진행한다. 언론이 지닌 각자의 역할은 충분히 지속할 수 있다. 오히려 과거보다 더 좋은 방식으로 언론의 역할을 수호할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언론을 신뢰하지 않거나 언론의 문제를 발언한다. 그래서 21세기의 언론은 많은 사람들이 신뢰하지 않는 매체로 전락되었다. 당시에 저널리즘의 영광은 끝나고 몰락의 시대가 찾아왔다.  


21세기는 더 이상 참언론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만큼 언론이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워졌다. 자신들이 정보가 곧 언론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저널리즘이 무너진 이유 중에 하나라고 본다. 전통적인 언론은 대부분 신문, TV 뉴스를 통해 정보를 보여었다. 특히나 기자들이 파트마다 정보를 취합하고 편집한다. 완성된 뉴스는 다시 재합되어 하나의 편집본이 된다. 그래서 기자들이 중심이 되어 여론을 형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인터넷 뉴스, 소셜미디어 그리고 유튜브까지 각자만의 정보가 쏟아진다. 자유롭게 오가는 통로가 연결되면서 언론이 보지 않던 지점을 주목했다. 


공유된 정보는 나름의 뉴스로 편집된다. 이제는 1인 미디어가 생겨났을 정도로 언론은 다각화가 되었다. 그래서 언론이 주목하지 않은 지점까지 미디어는 관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 반해 너무 많은 정보는 다시 또 영향을 받는 수많은 시민들에게 부작용을 안겼다. 자신들의 정보가 비슷해서 선택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일 시민들에게 자극적인 요소를 첨가하여 끌어들인다. 자신들의 정보가 더 매력적일 수 있게 말이다. 그리고 언론마저도 그런 시민들의 주목을 받고자 자극적인 제목과 취재에 열중했다. 저널리즘의 기초적인 목표보다 내가 작성한 기사의 조회수가 중요했다.  


대다수가 그런 것은 아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저널리즘의 역할을 위해 노력하는 기자도 있다. 특히나 70년대 베트남 전쟁의 비밀을 담은 펜타곤 페이퍼와 같은 숨겨진 사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한다. 대중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언론의 역할을 기능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에 반대하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 현재의 언론들 상황을 보면 대부분은 저널리즘의 기초적인 양심조차 없다고 생각한다. 21세기의 언론 상황이 너무 급변했다. 이미 매체가 다양화되어서 매체의 특성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말도 나온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말 그대로 변명일 뿐이다. 


매체의 특성에 따른다고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언론의 입으로 말해서도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다각화된 매체와 언론의 다양한 정보전달이 있더라도 언론은 언론이기 때문이다. 70년대의 더 포스트와 지금을 비교하기에는 시대의 차이가 나기에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그 시대는 대부분이 언론에 몸을 의탁했던 시대였으니까. 하지만 지금도 언론의 영향력은 변하지 않았다. 아무리 1인 미디어들의 외침이 강해도 언론의 단호한 한마디가 이들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언론은 의미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영화 더 포스트처럼 영웅이 되라는 의미는 아니다. 자신이 감옥에 가거나 신문이 폐간될 위기에 놓여도 진실을 쫓는다는 건 참으로 버겁다. 그만큼 영웅이 되지만 추락할 수 있는 위험도 한가득이기에 선뜻 나설 수 없다. 인간은 참으로 나약한 동물이라서 그런 선택에 민감하다. 자신의 안위에 위협받거나 가족에 대한 생각이 먼저 들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언론은 자신이 저널리즘의 대표주자라는 사실만큼은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다만 순수한 언론은 믿지 않는다. 각자만의 이익과 정보를 통해 얻게 되는 보상이 있기에 움직이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양심을 품고 정보의 정확도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기자라는 타이틀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말이다. 지금은 그것마저도 힘들기에 언론의 평가가 하락받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21세기에 언론을 듣기도 하고, 읽기도 하고, 보기도 한다. 여전히 언론의 다양한 정보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전과는 다르게 모든 것을 수용하지 않고 의심하는 방식을 쓰기는 해도 언론은 언론이다. 


많은 사람들은 언론이 탈바꿈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한다. 나도 언론의 행태를 보면 회의감이 들기는 마찬가지이다. 드레퓌스 사건처럼 여론을 만드는 언론의 행태에 분노도 느꼈다. 하지만 언론은 다시 제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외적인 방법으로도 언론이 바뀔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내부에서의 개혁이다. 결국 저널리즘의 선봉에 서있다는 자신감을 품고 언론은 자기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도 나는 바뀌지 않는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결국 언론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형태로 작용해 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만큼 힘들 길이겠지만 혹은 옹호한다는 비판도 듣겠지만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뉴스는 역사의 초고이다" 더 포스트의 대사를 통해 이유를 밝히며 글을 마친다. 


점수 : 4.0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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