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인간실격 by. 다자이 오사무

by 소야


인간실격.jpg 다자이 오사무 - 인간실격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실격에서 인용한 문장이다. 짧게 쓰인 한 줄에는 소설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특히나 문장의 표면에 드러난 작가의 태도와 삶이 녹아 있다. 그래서 소설 인간실격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나 부끄럼 많은 생애라는 고백을 독자에게 서슴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독자인 우리는 그의 문장마다 느껴지는 음울한 슬픔을 느껴가며 엄중히 그의 작품을 읽어간다.


그만큼 다자이 오사무의 생애는 부끄럼이 많았다. 그의 선택과 좌절이 빚어낸 결과였다. 그것마저도 작가의 운명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의 생애를 뒷받침하듯이 소설은 더욱 침울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인생에 대한 허무한 좌절과 죽음에 대한 예찬을 이야기할 수 있다. 소설 인간실격은 그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이야기하자면 나의 이야기는 진부해질 것이다. 오히려 내가 왜 이 소설을 접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내가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끝나고 대학을 준비하는 고3 시절을 막 앞둔 시기였다. 그때는 모든 것이 침울했다. 나의 삶이 대학이라는 영역에 발을 딛기 위해 내 모든 것을 쏟아야 한다. 선생님들은 항상 그렇게 말하고는 했다. 그런 말에 목구멍 너머로 자꾸 구토가 쏟아질 것 같았다. 부담감보다는 짧은 학교 생활을 대학이라는 곳을 향해 달렸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에서 생각한다면 그저 부끄러운 생각이었다. 지금이야 대학을 들어갔고, 졸업해서 취업을 했고,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무언가 반항과 저항이 필요하지만 학교에서 주어진 대로 현실을 마주하는 학생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방학 동안에 틈틈이 도서관에 갔다. 책을 찾아 읽었다. 공부를 피하려는 꼼수였겠지만 책이 꽤나 재미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때우던 중에 읽었던 소설도 인간실격이었다. 내 인생과 마주한 기분이었다. 지금 인간실격을 읽으면 참 부끄러움이 몸서리치지만 그때는 그랬다.


요조라는 인생을 동경하고, 동감하며, 동요했다. 하지만 인간실격은 점차 내 기억에서 멀어져 갔다. 그저 요조라는 부끄러운 인생을 기억했을 뿐이다.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의 다른 소설을 읽었다. 단편집을 찾아 읽었고, 다른 작가의 고전을 읽게 되었다. 인생이라는 것에 다양한 점을 배웠다. 요조라는 부끄러운 생애뿐만 아니라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의 모든 것을 엿봤다. 그것이 나에게는 또 다른 생애였다.


그래서 인간 실격은 나에게 추억이었다. 그리고 독서를 배우게 하여 새로운 방식을 얻게 만든 방향이었다. 그래서 나는 부끄럼 많은 생애였던 요조와는 다르게 살았다. 그의 퇴폐적이면서도 씁쓸한 삶은 내 기억만으로 간직했다. 그리고 도서관에 남겨진 수많은 문학 속에 타인을 엿봤다. 안나 카레니나처럼 불륜으로 점철된 삶도 봤다. 개츠비처럼 위대한 뒷모습도 경험했다. 물론 처음에는 그의 부끄러운 수기로 만족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읽어간 수많은 생애로 인해 요조는 기억 속으로 떠나갔다.


하지만 인간실격을 내 기억 속으로 떠났다고 하지만 나쁜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그 시대상에 무력한 자신을 비유한 지식인의 고백이었다.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해가는 일본을 막을 수 없었다. 광기가 사회를 뒤덮었으니까 말이다. 모든 것이 무너진 세계에서 무력한 나는 도피를 추구한다. 그런 시대라고 핑계를 대며 다자이 오사무도 그렇게 행동했다. 부끄러운 그의 생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을 빗대어 말했다.


퇴폐적인 삶을 영위하여 나를 버린다. 그렇게 책임질 것이 없는 나는 사회로부터 벗어난다. 영화 감각의 제국의 나오는 인물들처럼 광기 어린 사회에 환멸을 느끼며 도주하는 인생이었다. 그래서 요조라는 삶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그가 옳은 시대를 살았다고 할 수는 없다. 시대를 도피한 결과물이 다자이 오사무가 되었을 뿐이다.


그래도 소설 속에서 요조라는 인물을 엿보면서 느낀 것이 있었다. 삶이라는 것은 고달픈 것이 연속이다. 하지만 도피한다고 해도 벗어나지 못한다. 나의 삶은 언제나 계속되기 때문이다. 인간 찬양 같은 유치한 것이 아니다. 무언가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뚜렷하게 지속되는 것이 연장선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만큼은 영원히 놓칠 수 없었다. 부끄럼 많은 삶을 거부한다고 고백했다. 그래도 그의 생애를 놓지 못하는 기억 속에 남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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