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존재할 그곳을 생각하며
어린 시절, 초등학교 근처엔 서점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주인 아주머니 혹은 아저씨, 혹은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서점이었다. 햇볕이 드는 창가에서는 조용히 떠다니는 먼지의 반짝임이 보이고, 햇볕이 들지 않는 책장에서는 퀴퀴하지만 그리 싫지 않은 책 냄새가 났다.
그 서점엔 책장에 꽂혀있는 책만큼이나 바닥에도 책이 꽤 쌓여있었는데, 나는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골라서 그 쌓인 책들 위에 앉아 읽곤 했다. 서점 주인은 그런 나를 못 본 척 가만히 두었다. 물론 종종 책을 사기도 했겠지. 그러나 단 한 번도, 책 안 살 거면 그만 보고 얼른 집에 가라는 식으로 혼난 기억이 없다. 아니라면 내가 무지하게 뻔뻔한 아이였던 것이리라. 음, 무지하게 뻔뻔한 아이였던 나는 그 서점이 좋았다. 도서관도 아닌데 종종 그곳에 가서 그렇게 책을 읽었다.
그때 즐겨 읽었던 책 중에 하나는 주로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해 쉽게 편집된 세계 문학이었다. 특히 ‘청소년을 위한 톰 소여의 모험’이나 ‘15 소년 표류기’, ‘보물섬’, ‘서유기’처럼 인물이 위험하고 낯선 곳으로 모험을 떠나서 무언가 성취하거나 살아남는 내용의 책을 좋아했다.
보통 그런 거친 서사들은 관습적으로 남자가 주인공인 책이 대부분이었는데, 당시 어렸던 나는 '그런 서사'를 좋아하는 거였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 '남자'인 소설이나 만화가 재미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생각의 오류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남자 주인공들에게 많이 투영했었지. 개인적으로는 요즘 디즈니/픽사 영화도 그렇고, 이제 더 이상 그러지 않아도 되는 내용의 서사들이 전보다는 많이 보이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서점에는 물론 만화도 있었다. 그중에 그 당시 초등학생들의 마음을 강타한 만화가 있었으니, 바로 ‘그리스 로마 신화’였다. 신화의 내용은 신비롭고 자극적이었다. 온갖 괴물과 영웅과 전쟁과 다툼과 억울함과 끔찍한 죽음이 난무했다.
특히 그 만화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아름다운 그림체였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 만화책의 인물들은 아름다움을 넘어서 비현실적인 몸을 갖고 있었다. 여자라면 가슴이 극단적으로 풍만하고 허리는 너무 잘록해서 인체학적으로 걸어다닐 수는 있을까 걱정이 되는 신체 비율을 가지고 있었고, 남자라면 터질 듯한 근육질의 팔뚝에다 말벅지, 복근에는 식스... 아니 에잇팩 정도를 기본으로 갖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신화’이기 때문에 부모들은 그것을 읽는 자녀가 나름의 교-양을 쌓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따라서 사달라고 말하기에도 충분한 명분이 있는 책이었다.
반면에 교-양스러운 면이 부족해서 부모님께 차마 사달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그러니까 서점에서 읽으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에 '딱 좋은' 만화도 있었다. 어릴 때는 똥, 방귀처럼 더러운 이야기나 무서운 귀신 이야기가 어찌나 그렇게 '딱 좋던’지.
더럽거나 무서운 이야기 말고도 어린 마음을 사로잡는 주제가 하나 더 있었으니, 그것은 '2차 성징'이라던가 '사춘기와 성' 같은 이야기였다. 학습 만화에서 그런 주제가 보이면 나의 집중력은 평소의 몇 배로 높아지기 마련이었다. 특정 페이지를 볼 때면 몰래 숨어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사람처럼 주변을 한 번 스윽 둘러봐야 했다. 어리지만, 그게 무엇인지 모를 만큼 어리지는 않았으니까. 어디에도 없지만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다는 이야기만 전설처럼 내려오는, 그러나 정작 아무도 진짜 보여주는 사람은 없는, 신비한 세계를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아니, 보는 것뿐일까. 상상력은 단지 시각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책에는 오감으로 모두 느낄 수 있는 경험들이 무궁무진하게 있었다.
'노인과 바다'에서 소년이 노인에게 가져다준 그 음식의 맛은 어떨지, 바다 위에서 한 손으로 낚싯대를 부여잡고 한 손으로 해 먹었던 음식은 어떤 맛일지,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먹던 빵과 치즈는 어떤 맛이었을지, 나는 몇 번이고 상상 속의 혀를 굴려 맛을 보고 목구멍으로 넘겼다. 물론 무슨 맛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음식들은, 그냥 너무 맛있었다.
'플랜더스의 개'에서 네로가 그림을 그리는 데 썼다는 '목탄'은 어떤 질감일까. 파스텔과 비슷한 걸까? 목탄으로 그림을 그릴 때는 어떤 소리가 날까. '빨간 머리 앤'이 살던 다락방은 어떤 냄새가 날까, 창문을 열면 바람이 들어오겠지, 새소리가 들리겠지, 햇빛이 얼굴에 닿을까, 약간 어두울 것 같아, 걸을 때마다 나무 삐걱이는 소리가 나겠지, 너무 재밌을 것 같아! 그 작고 비좁은 다락방에 얼마나 가보고 싶었던가. 그 작은 공간의 느낌이 궁금해서 괜히 책상 밑에 들어가보기도 했다.
작은 동네 서점은 그야말로 무한한 모험과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우주였다. 쌓인 책들 위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는 그 시간, 나의 머릿속에서는 어마어마한 상상력의 빅뱅이 일어났다.
나는 책을 통해 어디로든 갈 수 있었고, 누구라도 될 수 있었고, 무엇이든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인물(또는 사물이나 동물)이 되어 보는 것, 그 인물이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것들을 같이 경험하려 하는 것, 모두 책을 재미있게 읽으면 읽을수록 자기도 모르게 연습이 되었고, 연습이 될수록 책은 더 재미있어지는 것이다.
상상력, 그것은 어린아이의 놀이이고, 자유다. 공감 능력의 바탕이고, 결국 인간이 자신의 삶과 이 세상이 가진 의미를 창조할 수 있도록 하는 위대한 능력이 될 수 있다.
언제부터 그 서점에 안 가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타인의 시선을 불필요할 정도로 무지하게 의식하게 되는 사춘기가 오고, 물리적으로도 쌓여있는 책 위에 오랜 시간 앉아있을 수 없는 나이가 되면서 점점 자연스럽게 멀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와 공간의 기억, 몸이 편안했고, 정서적 만족감을 느꼈던 기억은, 책을 읽을 수 있는 더 많은 공간들을 찾아가게 했고 그곳에서 또 다른 책으로 여행을 떠나게 했다.
이젠 아마 사라졌을, 그러나 동시에 어디에나 존재할 그 동네 서점. 상상력을 길러주었던 책들과, 그 책들을 허락해 준 어린 시절 동네 서점에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