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비 Apr 17. 2021

내가 뭘 보고 배웠겠냐?


어느 퇴근길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집으로 걸어가는 내 귀에,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한 사람의 통화 소리가 들어왔다.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통화하는 사람은 매우 감정적인 상태였으므로 목소리가 큰 편이었고, 그 옆을 걸어서 지나가던 내 귀에도 그 내용이 살짝 들린 것이다.


야, 됐어. 내가 왜?
엄마는 나한테 단 한 번도
미안하다고 한 적 없어.
내가 뭘 보고 배웠겠냐?


앞뒤 맥락 다 자르고 내게 들린 그 짧은 말이, 그 속에 담긴 분노와 원망감과 자조 섞인 감정이, 순간 망치처럼 내 뒤통수를 쿵- 치고 지나갔다.




  먼저, ‘엄마는 나에게 단 한 번도 미안하다고 한 적 없어,’라는 말에 대해서-

  선생님이 되고, 점차 ‘어른이라는 역할을 받아들이기 시작해야 하는 무렵부터, ‘좋은 어른이란 어떤 사람일까-하는 고민을 하게 됐다. 아직도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너보다 어른이니까, 이렇게 해도 .’라는 생각부터 하는 사람은 좋은 어른이 아니지 않을까.

  모든 고민과 상처가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말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미안하다고 말할 줄 아는 어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뭘 보고 배웠겠냐?’라는 말.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고 배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사실을 쉽게 잊어버린다. 말로 하는 어떤 조언들보다, 그저 행동으로 곁에서 보여주는 것이 더 큰 교육이 될 때가 많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에겐, 나는 안 할 거지만 너는 하라는 식의 이중적인 가르침은 먹히지 않는다. 물론 최종적인 배움은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달려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내가 그렇게 직접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큰 가르침이 될 때가 있다.



  

"에고, 너희들도 겨울나느라 고생했다."


  어느 봄날, 나뭇가지에 여린 새싹이 작게 돋아난 것을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어머니가 말씀하셨던 적이 있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는지 어느 날 일기에 적어두었기에 지금까지도 기억한다. 그런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자신의 주위에서 자주 보는 것이, ‘자연을 존중해라’ 혹은 ‘생명을 소중히 여겨라’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교육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뭐,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때의 전화 통화가 왜 그렇게 뇌리에 박혔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나한테 단 한 번도 미안하다고 한 적 없어. 내가 뭘 보고 배웠겠냐?



# 조금 긴 사족 : 교육학 이론


'보고 배운다'는 것과 관련한 이론을, 교육학에서는 ‘관찰학습(모델링 modeling)’이라고 한다. 이는 한창 행동주의가 유행하던 1960년대에 심리학자 반두라(Bandura, 1925~)가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이와 관련된 유명한 실험이 있다.


반두라는 한 모델이 인형을 발로 차고 때리는 폭력적인 영화를 제작한 후에, 세 그룹의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첫 번째 그룹의 아이들에겐 폭력적인 행동을 한 모델이 을 받는 영화를,

-두 번째 그룹의 아이들에겐 그 모델이 을 받는 영화를,

-세 번째 그룹의 아이들에겐 상도 벌도 받지 않는 영화를 보여줬다.


영화가 끝난 후 세 그룹의 아이들에게 각기 다른 방에 가게 한 후 영화에서 보여 준 인형을 주고 행동을 관찰했다. 그 결과, 첫 번째 그룹의 아이들의 공격성이 가장 높았고, 두 번째 그룹의 아이들의 공격성이 가장 낮았다.


하지만 재밌게도, 아이들에게 영화 속 모델이 보여준 행동을 따라 하면 상을 주겠다고 말하자, 세 그룹의 아이들 모두 영화 속 모델처럼 인형을 발로 차고 때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강화(상이나 벌)가 없어도 아이들은 모델이 보여준 행동을 학습하고 있었던 것이고, 발현해야 하는 상황이 오자 그것을 실행한 것이다.


반두라의 실험은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먼저, 단순히 모델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학습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앞서 말한 ‘관찰학습(모델링)’이다.


그리고 학습은 겉으로 표현되는 행동의 변화를 즉각적으로 동반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는 않지만 학습되어 있다가 어떤 상황과 조건이 되었을 때 발현될 수 있다는 점이다. 흥미롭게도 반두라의 실험을 볼 때,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학습되지 않았다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 사족의 사족


그래서 현대 사회에서는 부모나 교사, 친구 등 주변인의 역할만큼이나 미디어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아이들이 접하게 되는 미디어(영상 외에 도 포함)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리고 그러한 삶의 모습에 어떤 결과가 따라오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앞으로의 자기 가치관과 태도, 행동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