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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Sep 22. 2023

AI 시대를 맞이하는 번역가의 자세



모두가 곧 본격적으로 도래할 AI 시대를 우려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작 위기를 실감하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이제는 그러한 변화를 먼저 체감하고 있는 입장에서 내가 겪은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번역의 세계로 뛰어들기로 마음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생성형 AI, 즉 Chat GPT가 발표되었다. 나는 이것이 머지않은 훗날에 큰 변화를 야기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러한 나의 예상은 반만 들어맞았다.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스며들었다.


처음엔 기계가 번역하고 사람이 윤문을 맞춰 주기를 원하는 MT 번역의 수요가 급증했다. 그러나 이 기계 번역은 문맥 파악이 전혀 고려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몇몇 문장에서 사람이 하느니만 못한 심각한 오역을 내기 일수이다 보니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번역 시장의 칼자루는 인간 번역가가 쥐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과거 단순했던 기계 번역 수준이 아닌 AI 번역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컴퓨터 스스로가 문맥까지 고려해서 번역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결과물에 어색함은 남아 있었지만 기계 번역에 점차 익숙해져 가는 클라이언트들에게 이 정도 어색함은 충분히 감내할 만한 수준까지 올라오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번역가의 번역 일감은 이제 거의 소수의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국한되었다.


새로운 인력의 시장 진출의 입구는 바늘구멍만큼이나 좁아진 데다가, 남아 있는 경력이 얼마 되지 않은 인력들은 그나마 간간이 유지되는 MT 번역을 맡기 위해 헐값에라도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낮출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게다가 이러한 업무마저도 자체 인력으로 해결하고 있어 시장으로 공급되는 일감은 더욱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시장에서의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소수의 경력자들은 아직도 넘치는 업무를 거절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반면, 경력이 짧은 다수의 중견 이하 번역가는 계속 이 일을 지속하기 어려울 만큼의 공급 부족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전문 경력자들의 입장 역시 편치는 않았다. 여전히 일이 바쁘고 왕성히 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미래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할 것이 자명하고 인간의 일을 기계가 대체할 수 있는 범위가 늘어갈수록 전문가로서의 자신의 입지도 언젠가는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이미 예견되던 것이다.

하지만 미리 알고 있었다 해서 괴로움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과거 산업 혁명과 기술 혁명이 나타나 양질의 일자리가 과거에 비해 몇 배나 늘었다는 긍정적인 역사의 결과가 있다고 한들, 그 과실은 모두 훗날에 있지 그 변화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진부한 말이 되어 버렸지만, 인간이 하는 대부분의 업무는 결국 AI에게 대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 아직 내 범위 안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체감이 되지 않을 뿐이지 변화는 지금도 실제로 진행 중이다.

얼마 전 있었던 미국의 헐리우드 작가, 배우 노동조합의 파업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AI가 시나리오를 쓰면 소수의 작가가 그걸 다듬고, 저렴한 무명배우의 연기 데이터를 수집해 AI를 학습시키며 그 저작권을 회사가 독점하려 하자 다수의 상업 예술계 노동자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단지 단체 시위를 시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직력의 유무가 저들과 번역가들의 차이일 뿐이지 두 집단이 처한 현실은 사실 그리 다르지 않다.




큰 비가 예상된다.

훗날 세상의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 단비가 되겠지만, 당장 비를 피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간에 큰 갈등과 혼란이 있을 것이다.

각자도생이 더 익숙한 시대에서 도래할 큰 혼란이 이 평화의 시대의 막을 내리게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새로운 신기술 아래에 새로운 질서로 자리 잡을지 앞으로의 변화에 관심이 집중되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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