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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Jan 10. 2023

책, 안 읽으면 바보 된다?

독서와 번역, 그리고 세상


우리나라의 연간 평균 독서율은 해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새삼스러운 소식도 아니다. 벌써 20년도 전부터 꾸준하게 들어왔던 이야기이다.

그나마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2,30대 청년층의 독서율이 올랐다는 고무적인 기사를 보긴 했지만, 주변에서 무언가 유의미한 변화가 느껴지는 모습은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 독서 역시 빈익빈 부익부라, 많이 읽는 사람은 많이 읽고 안 읽는 사람은 정말 가뭄에 콩 나듯 읽는다. 그렇기에 평균 수치가 내려간다는 의미는 결국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의 절대적인 비율이 과거보다 높아져 간다는 말이 된다.

평균 독서율의 하락은 출판업계의 불황으로 이어지고, 이 말은 즉 번역가의 처우가 앞으로도 나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냉정하고 암울한 현실 앞에서 조금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책, 왜 안 읽나?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평균 독서율의 하락에 나 역시 한몫을 거들었었다. 어려서부터 책을 멀리했고, 교과서와 만화책, 무협 또는 판타지 소설을 제외한 일반 서적은 1년에 1권도 채 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기에 아쉬우면서도 참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아쉬운 것은 더 일찍부터 책을 읽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요, 다행인 마음은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읽기 시작한 것에 대한 다행스러운 마음이다. 과거의 나는 왜 그렇게 책 읽기를 싫어했을까?




● 독서, 대체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어른들로부터 책 많이 읽으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독서가 어디에 어떻게 그리고 대체 왜 좋은지 명쾌하게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당신들도 몰랐기 때문에 설명해 줄 수 없었던 건 아니었을까? 왜 해야 되는지 모를 일을 억지로 하는 건 공부만으로도 족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겐 굳이 동기도 찾을 수 없는 어려운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던 듯하다. 그런데 멋모르고 철없던 시절, 누군가 이유를 말해줬다 해서 과연 내가 곧이곧대로 책을 읽기는 했을지는 의문이다.




● 글을 읽는 행위는 재미가 없다.


책에 있는 대부분의 글은 문체로 글의 호흡이 길다. 문장 구조도 복잡한 편이고 어려운 단어나 표현들도 많은 편이다. 그러한 어려운 글을 참을성 있게 읽어내는 일은 사실 쉽지 않다. 마음먹고 책을 펴더라도 몇 줄 읽다 보면 금세 머릿속에 잡생각이 끼어들어 방금까지 읽던 내용을 까먹기 일쑤였고, 읽은 내용을 또 읽고 또 읽다 보니 정말 지루하고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지금도 책 읽는 것이 어렵다. 힘들게 독서를 마치고 나면 뿌듯함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만족감이 들기는 하지만, 어린 시절 독서 습관이 올바르게 들지 않아서인지 여전히 책을 손에 쥐기까지 많은 집중과 의지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 요즈음에는 굳이 집중하지 않아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개인적인 동기가 없거나 독서의 좋은 점을 모르는 사람이 손쉬운 즐길 거리를 놔두고 굳이 책을 펴려는 특이 취향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독서, 왜 해야 하나?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어느 정도 독서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일 것이라 생각된다. 남들 다 알고 있는 사실을 굳이 쓸 필요 있나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중요함과 다른 사람의 생각은 또 다를 수 있으니 한번 언급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언젠가 이런 질문을 봤다.

'독서하면 뭐에 좋나요? 독해력과 문해력이 좋아지는 거 말곤 없을 것 같은데, 그럴 거면 그냥 교과서를 읽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정확한 질문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댓글은 아래와 같았다.

'독서하는 사람은 이런 질문 안 하죠' 

사실 질문이 살짝 퉁명스럽기도 하고 세련된 질문은 아니었지만 혹여나 이 질문을 한 사람이 학생이었다면, 그리고 그에 대한 답변이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면 어쩌면 질문자의 인생의 방향 설정에 도움이 될지 모를 작은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서 여기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나름의 답변을 달아보고자 한다.




● 지식이 함양된다.


모든 글은 일정 정도의 지식을 담고 있다. 특히 교과서는 아주 압축적이고 객관에 가까운 지식들을 담고 있다. 그래서 재미가 없다. 하지만 책을 통해 얻는 지식은 스토리가 있다. 그래서 다양한 책을 이것저것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만의 지식을 엮는 스토리 라인이 생기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스토리 라인에 엮여 있는 지식은(아마도 처음엔 구멍이 듬성듬성 나있고, 형체도 희미한 지식들이겠지만) 마치 연상기억법처럼, 굳이 외우려 하지 않아도 몇 번 반복되면 머리에 박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 효과가 가랑비에 옷 젖듯 미미하게 쌓인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를 한다 해서 공부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지식의 스토리 라인(일종의 Back Bone)이 형성되면 공부로 새로 얻는 지식들은 기존의 지식들과 맞물려 제자리를 찾아가기 때문에 매우 효과적이게 된다.




● 문해력, 독해력이 상승한다.


문해력, 독해력에 대한 말들이 최근 많아졌다. 그만큼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문해력과 독해력이 약하면 뭐가 문제일까? 그냥 글이 잘 이해가 안 되고, 공부하는데 조금 불리한 정도? 그것도 맞지만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사람들 간에 대화가 안 통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문해력과 독해력이 약하면 말이나 글의 맥락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해 의미 전달이 왜곡되고,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 그러면 사고가 고착되고 시야가 좁아지게 된다. 말이나 글의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고, '말꼬리 잡기'처럼 특정 단어에만 집착하며 옳고 그름만 따지다 보면 건전한 토론이나 생산적인 논의가 불가능해진다. 그렇게 되면 당연하겠지만, 사람들 간에 갈등이 끊이질 않게 된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사람들 간에 갈등이 없어지지는 않지만(심리적 이유 혹은, 개인 또는 집단의 이익관계 등의 이유로), 적어도 독서가 깊어지면 이 갈등이 타당한지 아닌지, 도움이 되는 갈등인지 그렇지 않은지 정도는 구분할 줄 아는 식견이 생긴다.




● 논리적 사고능력이 생긴다.


앞에 언급한 문해력, 독해력과도 연관이 있는데, 맥락을 파악하는 능력에서 더 나아가 상대의 주장의 논리적 근거와 연관성이 타당한지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다. 아마 지금까지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 같지는 않은데, 먼가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미묘하게 말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 적이 몇 번 있었을 것이다. 소위 말해 '물타기' 혹은 '논점 흐리기'라고 한다. 앞에서 말한 '말꼬리 잡기'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수법들을 특히 정치인과 언론이 자주 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정치인은 여론 몰이를 하고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알면서도 일부러 그렇게 한다는 것이고, 언론은 화제를 끌고 이목을 집중시켜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진짜 메시지를 교묘하게 감추기 위해 그러한 방식을 쓴다는 점이 다르다. 둘 다 악질적이지만 매우 효과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수법은 점차 교묘해지는 반면, 책과 점점 멀어지는 다수의 사람들은 그러한 선동에  휘둘리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국민이 한 나라의 다수를 차지하게 되면 우민정치가 나타나고, 그 나라의 민주주의는 무너져 버린다.






번역과 세상


번역가는 세상과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이어주는 언론과는 또 다른 전달자이다. 우리가 배우는 지식과 지혜의 많은 부분은 전 세계의 역사적인 지식인들이 오랜 기간 쌓아 올린 것들이다. 만일 번역이 없었다면 이러한 유산은 소수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만 다뤄지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었을 것이고, 이들과 일반인들 간의 지식 장벽이 클수록 그들의 목소리는 사람들에게 지금보다 더욱 닿기 어려웠을 것이다. 만일 그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예상컨대, 지적 소통이 끊겨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를 대다수의 국민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지식과 권력을 독점하려는 세력의 움직임을 알아채지 못한 채 점점 데워지는 물속에서 서서히 익어 갈지도 모른다.


그런데 실컷 금칠을 해 놓고 나서 말을 번복하는 것 같아 살짝 민망하지만, 사실 세상에 그만큼 중요하지 않은 일들이 어디 있겠는가? 번역도 물론 중요하지만 세상에 있는 모든 가치가 다 잘 사는데 필요한 것들이다. 다만 유행에 따라 조금은 덜 중요한 것들이 각광받고, 정작 중요한 것들은 소외되는 분위기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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