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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Jan 08. 2023

돈 잘 버는 사람, 훌륭한 사람?

돈 안되는 번역을 굳이 하려는 이유?


이전 글에선 번역가와 AI에 대한 이야기로 시한부 직업이라 평가되는 번역에 대해 나름의 변론을 해봤다.

나에게 있어 언제나 이상은 멀고 현실은 가깝다. 아무리 드높은 이상을 가슴에 품어도 불금에 먹는 치맥 한 잔이 더 위로가 되는 날도 있는 법, 그래서 이번에는 일과 돈의 의미, 그리고 일로서의 번역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번역, 그거 하면 돈 잘 벌어?


뭐 자기 하기 나름 아니겠어?라며 호기롭게 말하고 싶지만, 사실 가성비(?)를 따지자면 번역은 그리 효율적이지 않은 듯하다. 모 기업 IT 직군에 근무하며 받았던 연봉과 비교할 때 순수 번역으로 버는 수익(아직 제대로 받아본 적은 없지만 귀동냥으로 많이 들은 바에 의하면)은 사실 그리 크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애 딸린 가장이 잘나가던(이라 말하고 싶지만 사실 그냥 나갔다)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프리랜서 번역가를 하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이 얼마나 짜게 식은 눈으로 나를 보았을지 아마 충분히 상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무슨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어린애 같은 소리란 말인가?' 나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눈빛은 분명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송구함에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끝내 고집을 꺽지는 않았다.






대체 일이란 무엇이고 왜 해야 하나?


흔히 '일 = 노동' 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는 피상적 의미만을 가지며 일 자체의 본질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 있고 그 안에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생활한다. 여기서 관계는 유용성의 측면을 이야기하는데, 이 말은 즉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이익(물질적 + 비 물질적)에 얼마만큼 서로가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이 만든 집에서 살며, 다른 사람이 기른 식량을 먹고 다른 사람이 만든 옷을 입는다. 이 사실은 물건에만 국한되지 않아 다른 사람이 만든 언어를 쓰고, 다른 사람이 만든 생각을 배우며 다른 사람이 만든 신념에 동화된다. 이것이 인간이 다른 사회적 동물과 달리 고도화된 문명을 형성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이며, 이런 식으로 인간은 사회 안에서 거미줄과 같은 유용성의 관계망을 형성하고 서로에게 이득을 주면서 동시에 이득을 취한다. 여기서 나타나는 이익의 교환 과정이 바로 일의 본질이다. 따라서 일의 진정한 의미는 [내가 주는 이익 + 내가 얻는 이익]을 모두 고려한 행위를 뜻하며, 이 두 합의 크기에 따라 일의 만족도가 결정된다. 어렵게 빙빙 말했지만, 짧게 말해 내가 하는 행동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거기서 어떠한 정신적, 물질적 보상이 뒤따르면 그것이 바로 일이고 그 크기에 따라 일의 만족감이 달라진다는 의미다.

또한 우리 모두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러한 일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규정하고 타인과 연결된다.




우리는 돈이 왜 좋을까?


만일 누군가가 당신에게 '돈이 왜 좋을까?'라는 질문을 한다고 치자.

아마 당신이 1차적으로 드는 생각은 '나한테 장난치는 건가? 이 무슨 멍청한 질문이지?' 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고는 곧바로 '당연히 돈이 많으면 살 수 있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서 좋겠지! 돈 좀 많았으면 소원이 없겠네!!' 라며 외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이렇듯 누구나 돈을 많이 벌기를 바라는데, 왜냐하면 바로 우리가 돈을 통해 사회 안에서 상호 교환 가능한 이익을 눈에 보이는 물질적 가치(이 가치는 절대적이지 않으며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로 환산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이 이익은 비 물질적 이익과 다르게 저장과 교환이 매우 용이하다는 특성을 갖기 때문에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내가 가진 돈으로 다른 사람이 줄 수 있는 이익과 쉽게 교환할 수 있어 인간 사회 내 일원으로 살아가기가 매우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돈의 기능적 특성 외에도 우리가 돈을 바라는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다.




돈 잘 버는 사람, 훌륭한 사람?


앞에서 언급했듯, 일을 한다는 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타인들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유용성의 측면에서 관계를 형성하는 행위라고 했다. 그리고 돈은 그 행위의 결과로 인한 이익의 가치를 나타낸다고도 말했다. 그렇다면 만일 내가 돈을 많이 번다는 건 즉,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이익을 준다는 뜻이고 이는 결과적으로 자신이 유용한 존재로서 기능한 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대답은 '예스'이다. 

만일 정상적인 노동을 통해 누군가 돈을 많이 벌었다면, 그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이익에 기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어도 사회의 기능적 측면에서는 그러하며, 이러한 경향성은 자본주가 발달할수록 더욱 심화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가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우러러보며, 심지어는 그 사람을 잘 모름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해서 실제로 많은 돈을 벌어 사회적 이익에 기여하는 사람이 높은 가치를 갖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낮은 가치를 갖는다는 말로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사회라는 공동체 집단 내에서 개인이 지닌 유용성의 가치는 그 사람이 가진 고유의 성품, 태도, 사유의 건전성 같은 특성들을 잘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증거는 일상에서도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좋은 대학을 나와 고 연봉을 받지만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어른 아이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이 있던가?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어떠한 가치가 의미를 주는지를 찾지 못하고 사회라는 큰 파도가 이끄는 대로 물질적 쾌락만을 행복이라 믿고 추구하며 이리저리 휩쓸려 간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거대한 파도를 굳이 힘들게 거스르며 헤엄을 치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 사람들은 일견 어리석어 보일지도 모른다. 하나 그들은 어쩔 수 없는 흐름에 몸을 맡기더라도 그것이 내가 바꿀 수 있는 흐름인지 아닌지를 선택하고자 하는 의지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번역은 그러한 의지의 몸부림이다.

나는 돈으로 척도 되는 강한 사회적 욕망을 품지만, 한편으론 못지않게 스스로 선택하는 의지의 삶을 살고자 하는 자기모순적인 몽상가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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