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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Jan 15. 2023

언어, 생각의 그릇

객체형 언어 vs 관계형 언어


언어는 단순한 의미 전달 수단을 넘어 그 언어에 뿌리를 둔 지역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 등을 담고 있다. 따라서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익히는 수준을 넘어선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아주아주 오랜 기간 동안 영어를 공부해 왔다. 미국이나 영국 등의 문화도 영화나 미드 등을 통해서 제법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내 영어 실력은 왜 이렇게 늘지를 않을까?







'나' 중심의 영어, '우리' 중심의 한글



영어는 흔히 인물과 사물을 중심으로 놓고 말하는 객체 중심적 언어라 하고, 한글은 익히 알고 있듯 '우리'로 대변되는 관계 중심적 언어로 구분된다. 영어에서는 인물, 사물, 또는 상황 등을 말의 중심으로 하여 명사형 표현이 주로 쓰이고, 한글에서는 상태와 움직임 등을 중심으로 두어 동사형 표현이 많이 사용된다. 아래와 같이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 안내 말씀 드립니다. → Your attention please. (당신의 주의를 요구함)

. 다시 말씀해 주시겠어요? → I beg your pardon. (당신의 양해를 구함)

. 정중히 대답해야 한다. → You should give a polite answer (당신은 정중한 대답을 줘야 한다)


모든 표현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경향성의 차이가 있다는 정도는 이해해야 한다. Listening, Reading에는 이러한 차이를 몰라도 인지하는데 어려움이 없지만, Speaking과 Writing의 경우 자연스럽게 표현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번역가는 번역할 때 이러한 차이를 잘 알고 최대한 번역투 느낌이 나지 않게 번역해야 한다.





명사형 표현 vs 동사형 표현



그래서 명사형 표현과 동사형 표현이 서로 달라서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일까?

어느 쪽이 더 좋고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서로가 갖고 있는 장단점이 분명한데, 가령 영어의 장점을 보면 우리말로 바꿀 때 주어+목적어+동사 구조를 갖는 긴 문장을 간단히 한 단어로 압축해 버릴 수 있다.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였다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의 예와 같이 조사 (이)가, 을(를)과, '~다' 표현이 붙은 우리말 표현을 오른쪽의 영어식 명사형 표현으로 바꿔 쓸 수가 있다.

우리는 왼쪽 보다 오른쪽의 표현이 오히려 더 익숙한데, 그 이유는 주로 신문이나 교과서 등에서 이러한 표현들을 자주 접해왔기 때문이다. 명사형 표현은 적절히 사용하면 경제적이고 간단명료한 느낌을 주지만 과하게 사용하면 한자어 때문에 자칫 글이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다. 반대로 우리말 표현은 읽고 이해하기가 매우 쉽다.


. 책임자는 사실에 대한 언급을 회피했다. → 책임자는 사실을 말하려 하지 않았다.


글자 수도 같은데 굳이 줄일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불필요한 한자어를 빼니 이해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경제성이 없다면 되도록 간단히 쓰는 게 좋다.




언어의 차이? 생각의 차이?



한 지역의 문화는 그 지역의 언어로 표현되고, 그 지역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그 사람의 사고를 규정한다. 한마디로 문화와 언어와 생각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흔히 말하길 욕하지 말고, 줄임말 쓰지 말고, 되도록 긍정적인 말을 사용하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말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하는 대로 생각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글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가 글을 쓰면 이 행위가 다시 나의 생각을 정돈시킨다.


개인적인 느낌일지 모르겠지만, 영어로 대화할 때가 한국어로 대화할 때 보다 좀 더 자유로운 느낌이 든다. 높임말이 없어서 그런가 싶기도 한데, 생각해 보면 높임말도 다 관계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언어 형태이기 때문에 우리말을 쓸 때 고려해야 될 특징 중 하나이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우리말에서 조금 더 조심스러워지고 신중 해지는듯하다. 반대로 영어로 대화할 때는 약간은 더 격식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거니와, 선 결론. 후 근거의 순서로 말을 하게 되니 대화 자체에 좀 더 집중이 되는 듯한다.







요즈음 많은 회사들이 창의적 업무 조직을 만들겠다며 너도 나도 수평적 구조로의 혁신을 부르짖는다. 그러면서 호칭을 통일하고 직급을 철폐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수평적 구조라는 게 단순하지가 않은 것이, 호칭부터 사용하는 말, 사회의 문화, 시대적 분위기같이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단순히 호칭만 영어식 호칭으로 바꾼다던가 이름을 부르도록 한다던가 하는 방식은 반쪽짜리 혁신이다. 사회 구조와 정서가 수평적이지 않고, 조직문화가 창의적이지 않은데 어떻게 호칭 하나 바꾼다고 창의적인 인재가 나오겠는가?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그리고 그 그릇은 내가 소속된 사회에 의해 모양이 결정된다.

만일 정말로 수평적인 조직과 창의적인 인재를 바란다면 방법은 하나이다. 그릇을 만드는 사회를 바꾸지는 못하니, 그릇을 다른 걸로 바꾸면 된다.

적어도 회사 내에서 사용하는 언어적 형태를 바꾼다면, 아마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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