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침착한 레몬 May 30. 2022

차곡차곡_글2

*차곡차곡은 양혜리작가와 내가 함께 쓰는 글이다.

처음 베를린에 도착한 건 2011년 3월 4일이었다. 

머물 방을 구한다고 구했는데, 3월 7일부터 머무는 일정이었다. 쇠네펠트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밤 11시가 넘어서였다. 미리 적어 간 주소가 하나 있었는데, 공항에서 가까운 게스트하우스였다. 밤이고 초행길이니 택시를 타려는 심산으로 택시 옆에 서 있는 기사에게 다가가 이 주소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택시 기사는 아, 여기는 (저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 저 버스를 타면 갈 수 있다고 했다. 버스? 나는 좀 어리둥절하지만 고마워하며 그가 가리킨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비가 얼마인가 몰라 물어보니 버스 기사는 주먹을 쥐고 엄지만 펴서 버스 뒤쪽을 휘휘 가리키며 그냥 가서 앉으라 했다. 캐리어를 끌며 생전 처음 보는 노란 애벌레처럼 기다란 버스 빈자리에 앉았다. 그나저나 어디에서 내려야 하나, 정거장 이름이 안내 전광판에 나타날 때마다 멘트가 들릴 때마다 알파벳들을 맞추었다. 적어간 주소와 비슷한 정거장 이름이 보이면 내리려 했으나 창밖은 시커멓고 칠흑같이 깜깜해 뭐 보이는 게 없었다. 이런 곳에 내려도 주소 하나로 내가 뭘 찾을 수 있을까. 


한참을 달려 드디어 도시 같고 밝은 곳에 도착했는데 종착역이었던 것도 같다. 사람도 많았고 활기찬 것도 같았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와글와글 이리 가고 저리 갔다. 둘러보니 24시간 운영하는 맥도널드가 있었다. 그곳으로 들어가 2.99유로 하는 코코아 한 잔을 주문하고 비행기에서부터 읽던 책을 계속 읽었다. 수전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라는 책이었다. 단상 형태의 글로 에세이 모음집이었는데 고전처럼 받아들이며 읽게 되는 그런 책이었다. 거기 그렇게 멀뚱히 앉아 그런 책을 읽고 있으니 아무것도 모르는, 뭔가 이제 막 옹알이를 시작한 두 살짜리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냥 그렇게 앉아 어물쩍 코코아 한 잔 값으로 하룻밤 지내볼 심산이었다. 세 시쯤, 한 여자직원이 청소하게 좀 비켜달라고 하더니 캐리어를 보고 무슨 문제 있는지 물었다. 나는 그냥 좀 아침까지 있을란다고 우물거렸는데, 헤이~ 오늘은 주말이라고~ 밤새 지하철이 다닌다고~ 저기 봐 사람들이 지하철역에 들어가고 나오잖아. 나는 새로운 정보에 놀라 주말? 밤새? 물었는데, 그녀는 내게 ‘그래, 여긴 베를린이라고!’ 외쳤다. 외치듯 들렸던 것도 같다. 대화 분위기상 더 거기 있기는 좀 그래서 나는 마치 지하철을 타고 갈 곳이 있는 사람처럼 기쁘게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이렇게 된 거 그냥 첫날밤은 호텔에서 자자 생각하고 주변의 아무 호텔로 들어갔다. 로비 직원이 지금 방을 잡으면 하룻밤에 70유로이고, 내일 12시에 체크아웃해야 한다고 했다. 이건 좀 아까운데 싶었다. 표정이 읽혔는지 그가 이것저것 물었다. 뭔가 생각 난 듯 움직이더니 일단 물을 한 잔 마시라며 커다란 유리잔에 에비앙을 가득 따라주었다. 나는 감사히 마셨다. 그는 인도에서 온 모모인데, 사진을 전공한다고 했다. 나도 사진을 공부하러 왔다고 했다. 내 가방 속에 있는 카메라와 그의 카메라가 같은 기종이었다. 우리는 악수를 했다. 그는 차라리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르라며 구글로 들어가 이것저것 검색하더니 묵을만한 곳을 알아봐 주었다. 자신의 검색 결과를 프린트한 종이를 줬는데, 3일에 70유로도 넘지 않는 4인실 도미토리였다. 그는 내게 나이트 버스를 타면 된다고 말하며 ‘쪼’에서 내리면 된다고 했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보답하고 싶어 아까부터 주머니에 있던 유리구슬 두 알을 선물로 주었다. 이런 장난감은 자기도 안다며 웃었다. 모모는 버스 정류장까지 나와 함께 기다리다 내가 버스에 올라타니 손을 흔들었다.


버스를 타고 또 한참을 달려 ‘쪼’에 도착했다. 모모가 알려준 곳으로 가 방을 잡고 값을 치렀다. 올라가기 전에 매점에서 물을 한 병 샀다. 거스름돈이 좀 적은 것 같았지만, 내가 모르는 뭔가 있는 것 같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값을 치른 영수증에는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적혀 있었는데 ‘hund’였다. 방은 노란색이었고, 침대는 파란색 프레임에 흰색 시트와 흰색 이불로 깨끗했다. 짐을 풀고 전자사전을 꺼내 ‘hund’가 무슨 뜻인지 찾아보았다. 내 첫 독일어를 기념해야지. ‘hund’는 ‘훈트’로 읽으며 그 뜻은 개였다. 강아지. 멍멍. 


프랑스에서 유학했던 교수님께서는 식비를 아끼느라 매일 햄버거를 먹었다고 했다. 햄버거가 가장 싼 음식이구나, 나도 햄버거를 많이 먹으려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창밖으로 또 맥도널드가 보였다. 여기에도 맥도널드가 있다 가보자. 세트 메뉴가 7유로 정도 했다. 한국에서는 햄버거를 거의 먹지 않고 지냈기 때문에 가격을 비교하기 어려웠다. 베를린은 물가가 비싼가? 이게 제일 싼 걸까? 오랜만에 햄버거를 먹었더니 재미있었다. 맥도날드에서 다시 도미토리로 오는 길에 ‘케밥’이라는 것이 보였다. 햄버거보다 크고 헐렁한 빵 사이에 싱싱한 채소들과 거대한 고깃덩어리를 대패 기계 같은 것으로 얇게 밀어낸 고기 조각이 들어 있는데, 3.5유로였다. 감자튀김은 2유로였다. 다음 식사는 그곳에서 했다. 케밥은 햄버거보다 맛있었다. 케밥집에서는 맥주도 곁들일 수 있었다. 그 뒤로 햄버거는 다시 몇 년간 먹지 않았지만, 케밥은 자주 먹었다. 가장 맛있는 케밥집은 역시 ‘무스타파’다.


‘쪼’는 동물원이었다. 쓰기는 zoo라고 쓰는데 읽을 때는 ‘쪼’였다. 하루는 동물원을 구경했다. 동물원에 가면 늘 코끼리부터 보곤 했다. 코끼리 옆에는 코뿔소가 있었다. 북극에서 온 흰색 커다란 곰이 물에도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 남아프리카 특집으로 하이에나와 펭귄도 있었다. 개미핥기도 있었다. 


지하철 티켓 사는 방법을 실습하기 위해 기계를 향해 걸어가는데 한 아저씨가 내게 2유로를 달라고 했다. 2유로를 달라고 하는데 마침 2유로짜리 동전이 있어서 아저씨에게 건넸다. 그는 자기 두 손바닥을 겹쳐 내게 고맙다 인사하고 뒤돌아 갔다. 


2박 3일이 지나 약속한 날짜에 맞추어 기숙사로 들어갔다. 물 값이 비싸게 느껴진 이유는 패트병의 판트(Pfand, 보증금) 값을 몰라서였고, 처음 공항에서 탔던 버스에서 내려 코코아를 마신 맥도널드에서 보였던 지하철역의 이름은 노이쾰른(Neukölln) 이었다. 


- 양혜리





작가의 이전글 차곡차곡_글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