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요즘 나는 미술사를 얕게 접하고 있다. 굳이 '얕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일단 입문서로 유명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그저 일주일에 두 꼭지씩 정독하고 있는 정도라서. 아직 모르는 게 산더미인 병아리는 관심 가는 공부하는 초반, 좀 안다 싶은 사람이 되려면 성경에 나오는 주요 장면들을 알면 편하겠지 라는 느낌 정도만 가지고 있었는데, 이건 순진한 오해였다.
미술사가 전개될수록 역사가 발전할수록 미술이 표현하는 것들이 많아지더니, 새로운 모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서양사였다. 그래서 서점에 가서 쉬운 팩트를 근거로 한 서양사 서적들을 접해보려 했으나, 대부분은 들어본 적도 없는 민족들의 이름과 이동경로와 학술적인 용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럴 거면 서양사로 수능을 다시 보는 게 나은 걸까 싶을 정도였다. 정말 쉽다 싶어서 펼쳐보면 그마저도 청소년 서적 수준이었기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저 자주 나오는 가문 이름이나, 지역 이름 정도 감을 익혀서 진행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러고 보면 참 피곤한 성격인 거 인정한다.
그런 상황에서 읽게 된 책은 다른 서양사 책이랑 뭔가 다르다는 걸 펼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느낄 수 있었다. 잘난 척하지 않는 세련됨이랄까. 이 책은 시계열 구성이 아닌,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인물(이를테면 잔다르크, 콜럼버스 등), 와 관심이 없다면 쉽게 접할 수 없는 인물들(카를 5세, 루터 등)을 적절히 섞어 풀어내고 있다. 요즘 역사책들이 거의 차용하고 있는 방식이긴 하지만, 너무 많은 인물을 담으려 애쓰지 않았고 그렇다고 억지로 인물들을 끼워 넣은 느낌도 들지 않는다. 한 인물을 3 꼭지로 서술한 각 장은 큰 시간의 줄기를 따라 생애를 서술하지만, 적절히 가치를 쳐 관련 일화나 배경을 흥미롭게 서술한다. 이마저도 산만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고 알찬 이야기 전달을 해주는 역할을 한다.
사실 이 책이 쉽지 않은 내용임에도 쉽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은 각 장 첫 페이지에 담은 혼맥도와 내용 중간중간에 독자로 하여금 상상을 용이하게 하는 삽화들이 큰 역할을 한다. 특히 혼맥도는 읽는 도중 적응이 쉽지 않은 낯선 이름들과 복잡한 관계가 헷갈릴 때, 다시 한번 펼쳐 스스로 관계를 정리하여 독서의 흐름을 이어나가게 해주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었다면 정복과 항해를 설명하는 지도가 풍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역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시각에서 보면 체계 자체가 완전히 다른 유럽 역사의 신분이나 배경을 이해하는데 지도의 역할이 중요할 수도 있는데, 아무래도 지면 할애를 이유로 한정적으로나마 넣은 듯하다.
또한 이 책이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고 느낀 것은, 주로 우리가 알고 있었던 인물에 대한 선입견들과 알고 있는 사실들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저 호색한일 줄로만 알았던 헨리 8세가 사실 근대 영국을 출범시키는데 큰 공이 있음을 부정하면 안 된다는 사실과, 콜럼버스가 기존의 알려진 사실과는 달리 제노바 출신이라는 것 등등. 그 외에도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적인 사실들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최근의 연구자료와 사견을 곁들여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견해들에 새로운 인식을 부여해 줌으로써 서양사에 대한 더 많은 흥미와 지속적인 관심을 끌어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핵심 포인트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포털에서 연재한 글을 엮었다고는 하지만, 분명 연재된 글을 간헐적으로 읽는 것과는 한 권으로 단단히 묶인 책을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연재 글을 짜깁기한 것을 넘어선 가치가 있다. 한 권에 담긴 동일한 시대상이 한 호흡으로 이어지기에 독자에게도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더욱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역사를 두꺼운 책으로 접하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노크하듯 펼쳐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말로 추천을 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