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an Lee Jun 13. 2017

당신의 첫사랑은 안녕하신가요

서평 <아낌없이 뺏는 사랑>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가슴이 설레거나 아련하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점이 어느 때에 맞춰져 있건 간에 대부분 그런 편이다. 심장을 간질여 오른 손끝으로 가슴께를 매만지게 하거나 괜히 손가락 끝을 손톱으로 긁어내리게  하는 그런 오글거리고 오밀조밀한 맛이 있다. 소비하는 누구나 하나쯤은 존재하기에, 혹은 자신이 아니라도 주변의 누군가를 통해 그 존재를 접했기에 접근성이 아주 좋은 소재다. 동서를 막론하고 항상 아련하고, 아프고, 간혹은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도 하는 첫사랑이야기는 그래서 아쉽게도 철저히 고정관념에 휩싸인 소재이기도 하다. 파스텔톤이 어울리거나, 행여 그렇지 않다면 보랏빛이라도 물들어 있어야 첫사랑인 법.


그런데 가제본으로 받은 아낌없이 뺏는 사랑의 표지 색은 놀랍게도 강렬한 핑크빛을 띠고 있었다. 책을 받고서 한참을 쳐다봤다. 영제는 <THE GIRL WITH A CLOCK FOR A HEART>인데 한글 제목이 <아낌없이 뺏는 사랑>이라고 하니 뭔가 첫사랑이 어지럽게 개입한 흔한 유부남 유부녀의 치정 멜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뭐든 줘도 모자랄 사랑인데 이것저것 뺏는 이야기는 뭘까. 통속적인 느낌에 이끌려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런 여자는 지금껏 만나본 적이 없었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아니면 자기 의견을 고집할 줄 밖에 모르는 조지네 식구들과 달리
그녀는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냈고,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듯했다.
술통 옆에서 마주쳤을 때는 도발적이면서도 지극히 순진무구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막 태어난 아기 같아서 어딘가 오싹하게 느껴질 정도였다....(중략)


이야기는 두 남녀의 스무 살과 20년 후가 교차되며 전개되어 간다. 조지에게 리아나는 난생처음 '강렬한 자극' 혹은 그로 말미암은 '사랑'을 느끼게 해 준 존재다. 그러나 믿기 힘든 일로 인하여 리아나는 자취를 감추고, 20년 만에 놀랍게도 그 앞에 다시 나타나게 된다. 곤란한 상황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와주는 조지는 결국 그녀와 관련된 사건들에 깊이 개입하게 된다. 그로 인하여 조지는 곤란해지고 흔한 말로 일생일대의 위기를 겪는다. 그러면서, 그는 그녀가 자신에게, 그가 그녀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짐작하고,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내는 지난 20년간 그저 그렇게 살아온 그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헤어졌다 만나기를 반복하다 친구가 되어버린 옛 연인, 같은 것들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일상들에 다시 나타난 그녀는 커다란 파문이 된다.


조지는 스스로 그 사건에 깊숙이 개입하여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하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건 리아나다. 그녀는 짚고 넘어가야 할 매 순간 그에게 선택지를 주지만, 그것은 어차피 답이 정해진 선택지다. '너는 나의 강렬했던 존재'라는 명제는 리아나에겐 조지를 휘두를 수 있는 무기로 작용한다. 이야기 또한 이를 내내 염두에 두고 진행된다. 그래서 스릴러라고는 하지만, 이야기 구성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사건이 벌어지고 잠잠해지고 다시금 파생되는 사건이 벌어지는 구조가 반복된다. 그 사이에 그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과거의 시간들이 보충설명을 해주는 역할이 되는데, 조지의 캐릭터를 현재 시점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면 과거의 이야기는 리아나의 편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풀어내는 역할을 해준다.


그래서 이 소설을 하나의 스릴러로만 본다면 한번 쓱 훑고는 꺼림칙한 느낌으로 책을 덮게 될 수도 있다. 등장인물들의 행동들이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놈의 '첫사랑이니까.'라는 생각이 자리 잡으면 조지의 행동이 이해가 되고, 괴롭지만 불행하게 느껴지지 않는 완벽한 호구남 '조지'에게 공감과 연민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우리네 정서로는 리아나의 팜므파탈적인 면모가 '첫사랑'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르기는 하다.) 첫사랑이 안녕하지 않다는데. 눈 하나 꿈쩍 안 할 사람이 대부분이라면 그 많은 첫사랑과 관련된 아련한 멜로는 어디서 올 수 있었을까 싶은 마음에 이 이야기를 읽을만한 소설, 독특한 이야기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본능이 앞서고 감정이 온몸을 뒤흔드는 첫사랑의 시절은 누구에게나 온다. 오기도 하지만 하릴없이 지나가기도 한다. 이 소설은 지나가버리는 그 시간을 붙잡은 판타지 소설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그냥 평범한 스릴러로 볼 것인지, 독특하고 때로는 답답하기까지 한 첫사랑 이야기로 볼 것인지는 읽는 사람의 몫이지만, 둘 다 염두에 두고 읽어 본다면 아마도 조금 더 흥미로운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며드는 먼 나라 사람들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