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an Lee Sep 29. 2016

나를 외롭다 여기는 너에게

예쁜 사랑을 꿈꾸는 너에게



안녕. 편지를 쓰는 건 처음인 것 같아. 불과 며칠 전에도 우리 커피 마시면서 얘길 했었는데 말이지. 게다가 매일 메신저를 달고 살면서도 길게 쓰는 편지를 쓰자니 쑥스럽긴 하다. 읽고 있는 너도 조금은 부끄러울 것도 같아. 우린 마주앉아 커피를 마실 만큼은 가깝지만, 편지를 주고받을 만큼 애틋한 사이는 아니니까. 그래도 네가 나의 편지를 읽고 조금은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마음 가는 대로 한 번 써보려고 해. 나를 외롭다 여기는 너에게 말로 하기엔 너무나 긴 이야기를. 해볼까 해.


이따금씩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너는 외롭다 말하곤 해. 그리고 나 또한 너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 거야. 처음 너와 알게 되었을 때 너는 연인과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상실감이 극에 달하던 때라서 나는 너의 감정을 쉽게 눈치 챌 수 있었지. 좋은 사람 나타날 거라며 누구나 할 수 있는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위로를 해줬음에도 착한 너는 나를 굉장히 고마워했어. 그게 우리가 친해진 계기였던 거 같기도 해.


나와 만날 때마다 너는 그 전에 했던 소개팅과 호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들에 대해 나에게 말해줬어. 누군가는 자랑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너의 일상이라고 생각하고 너의 이야길 그저 듣곤 했어. 외롭기에 누군가를 항상 만나야 하고, 그러나 원하는 만큼 마음을 나눌 수 없어 안타깝기만 한. 그래서 너의 일상은 즐겁지만 무언가 텅 비어있는 것 같다고 네 스스로 말 한 적 있었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그만둘까도 나와 함께 고민했지만 너는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어. 새로운 인연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은 공허함을 잊어버리기에 충분하니까.


네 이야기를 할 때마다 너는 나에게도 외롭지 않느냐며, 연애가 하고 싶지 않느냐며 물었지. 나는 괜찮다고, 지금의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게 좋다고 해도 너는 별로 믿는 눈치가 아니었어. 연애와 만남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연애지상주의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그리 정상처럼 보이진 않을 거야. 그래도 외로울 텐데. 라고 말하는 너에게 언젠가부터 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 너와는 다른 삶을 살아온 나의 이야길 말야.


호감을 가지는 남자마다 상대 또한 호감을 느껴 사귈 수 있었다는 너와는 달리, 나는 그런 적이 거의 없었어. 유치하게 말하자면, 처음부터 꼬인 것 같아. 짝사랑을 심하게 했었거든. 열다섯 살 때였나, 같은 학원엘 다녔던 남자애를 좋아했어. 당시 인기 있던 아이돌 그룹의 멤버를 닮았던 그 아이는 작은 도시에서도 잘 생기기로 유명했어. 얼굴값 좀 한다고 그 때부터 공부보다 연애에 더 몰두하던 애였어. 나까지 보탤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지. 원래 뭔가를 좋아하면 티를 내다 못해 동네방네 소문내는 성격이었던 나는 함께 학원에 다니던 친구들에게 말하며 지지해달라고 말했던 거 같아. 같은 반이니까 내가 티를 내더라도 놀라지 말라고 말했던 거 같기도 하고. 그 아일 꽤 오래 좋아했어. 처음엔 그냥 좋아했던 것 같아. 순수하기 짝이 없었지. 지금 같았으면 같이 통화라도 하고 싶다는 최소한의 대가라도 원했을 테지만, 그때는 그냥 그 아일 좋아하는 거 자체로 만족했어.


그렇게 좋아하길 몇 달 후 결국 먼저 고백을 했어. 그 때 당시 유행했던 메신저에서 꽤 친해졌기 때문에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지. 순진한데 요령까지 없었던 나는 방법이 없어서 만나자고 말하지도 못하고 이메일로 고백을 했어. 결국 거절도 이메일로 받았지. 어쩔 수 없이 그냥 친구로 남기로 한 후 보름 쯤 있다가 갑자기 얘가 영화를 보자는 거야. 나에게도 희망이 있는 건가 싶었어. 솔직히 편하게 영화보고 싶어서 영화보자고 하는 그런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예쁜 옷을 입고 그 애를 만나 영화를 봤어. 사실 영화에만 너무 집중했었어. 아직도 그 영화가 뭔지 기억나는데 그 아이 얼굴이 어땠는지 기억이 잘 안나. 밥도 먹었는데 푸드 파이터처럼 먹기만 했어. 그렇게 데이트는 망한 채로 끝났어. 그게 나의 생에 첫 남자와의 데이트였는데 말야. 그리고 며칠 후에 알게 되었지. 원래 그 친구는 사귀던 애가 이미 있었고, 나는 그냥 미안해서 한번 만난 거라고. 그 소식을 전해준 친구의 품에 안겨 엉엉 울면서 짝사랑이 끝났어.


이후에 나는 몇 개월 더 미련이 남아 그 친구를 궁금해 했지만, 그럴수록 더 외로워졌어. 그때 외로움을 처음 경험했던 것 같아. 완벽한 소외감을 그때서야 처음 느꼈어. 주변에 친구도 많았고, 가족도 화목했는데, 나만 세상에서 고립되어 있어서 어떻게든 발버둥 쳐 탈출하고 싶은 그런 기분. 보고 싶은데 만나는 건 꿈도 못 꾸고, 메신저에 분명 로그인이 되어있는데 말도 걸 수 없었어. 여자친구가 얼굴만 바뀌고 계속 있었거든. 그때의 나는 차인 남자에게 다시 도전 할 만큼 용기도 없었어. 그도 그럴 것이 걔랑 사귄 애들이 다 예뻤거든. 그때 나는 지금 남아있는 사진이 없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어. 그랬기에 더더군다나 다른 연애라던가 하는 건 생각해볼 수도 없었지. 다행히도 고등학교를 다른 도시로 전학가게 되면서 그 누구도 나의 흑역사를 운운하는 사람은 만나지 않게 되었어. 사실 너한테 처음 이야기 하는 거야.


근데 그 말 알지. 짝사랑은 하는 사람만 계속 한다고. 중독성이 있어서 한번 데여도 어느 순간 다른 짝사랑을 하고 있다고. 그런 사람이 나더라고. 어처구니없게도 다음 사랑도 짝사랑이야. 연애는 언제 시작했냐고? 내가 말한 적 있었던 거 같아. 남들 보다 좀 늦게 시작했다고. 그게 두 번째 짝사랑 때문이었어. 대학교 2학년 때, 한 살 어린 후배를 좋아했어. 후배긴 한데, 후배가 아닌 느낌을 처음 만나자 마자 받았어. 뭔가 의젓해서 오히려 몇 살 많은 느낌을 받았어. 그때는 다행히 같은 동아리라 매일 붙어 있을 수 있었는데, 여우 탈을 쓰기엔 사이즈가 맞지 않아 곰인 채로 그 친구에게 다가갔던 거 같아. 사실 사귈 땐 곰이 좋더라도 사귀기 전 까지는 여우가 훨씬 나은 것 같아. 상대방이 흥미를 갖기에 나는 숨긴 패가 없었어. 이미 친구였던 거지. 내가 슬슬 감을 잡을 동안(그래도 그땐 미리 눈치는 챘다.) 그 친구는 나랑 제일 친한 친구랑 눈이 맞았어. 둘이 사귀기 시작했을 때 나는 충동적으로 다른 연애를 시작했어. 남들도 다 반대하는 상대였는데, 악연이었던 거지.


그때 난 대학에 들어와 처음 좋아하게 된 상대를 속절없이 놓친 충격과 더불어 첫 남자친구의 자유방임적 연애스타일로 인하여 10대 때와는 또 다른 외로움을 배우게 되었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날 좋아하는 기적 따위 일어나지 않았고, 날 좋아한다 했던 사람은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서 연애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아 환상으로 가득 찬 소녀를  ‘나는 네가 1번이 아니다’ 라는 말로 충격에 빠트렸으니, 내가 어땠겠어. 연애에 기대가 없어졌지. 사실 그때 그 사람이 했던 말들은 지금의 내가 듣기엔 무엇 하나 틀린 것이 없었어. 직장인에게 연애는 1이 될 수 없는 건 맞으니까. 그때 내가 원했던 건 핑크빛 꽃길을 걷는 연애였지만 그가 원하는 건 보글보글 끓는 뚝배기 같은 사랑이었을지도 몰라. 그치만 그때 나는 그 말에 너무 외롭고 초라해졌어. 내가 누군가의 일상을 방해한다는 생각마저 들었거든. 당연히 자존감도 많이 낮아졌어. 그때 그 사람이 기회가 닿는 대로 나에게 최선을 다했더라면, 그래서 내가 외로워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관계가 견고해져서 내가 스스로 그를 보러가기 위해 움직였다면 어땠을까. 그 이후에 연애에 대해 좀 더 긍정적인 시각을 갖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 연애가 언제나 옳을까에 대한 의심을 버리지 못하는 습관도 생기지 않았을 거야.


그 이후에 별다른 큰 의미 없이 연애를 했어. 친구들이 평가하는 연애다운 연애도 하긴 했지만, 이별 후 미련이 남아 찾아온 상대방을 가차 없이 쳐냈어. 사실 연애 할 때에도 곧잘 외로워했어. 처음엔 상대방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실은 나의 문제더라고. 상대방에 대한 기대심리가 너무 커서 나만큼 잘해주겠거니 하는 부질없는 기대심리 때문에 나는 내 스스로를 외롭게 하고 있었어. 게다가 이별과 함께 오는 그 엄청난 상실감과 외로움은 나만 견뎌야 했으니까. 그 쯤 되니 외로움이 태생이라는 걸 느꼈어. 친구들은 연애를 하면 외롭지 않다는데 솔직히 잘 이해가 안 되더라고.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나만 외로워지는 끝이 없는 트랙을 지친 상태에서 도는 것 같았어.


하지만 우습게도 나는 널 만나기 불과 몇 달 전에도 짝사랑을 했어. 여럿이서 함께 있을 때의 즐거움이 단둘이 있을 때도 즐거울 것이라는 미숙한 오해에서 비롯된 그 관계는 최초의 짝사랑이 연애로 이어진 사례가 되었지만 그리 오래가진 못했어. 하지만 그때는 그리 외롭지 않았어. 다른 연애와는 달리 이별이 갑작스럽지도 않았고, 마음은 내가 먼저 떠났음에도 나쁜 짓 하기 싫어 상대방이 이별을 말 할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거든. 그 이후 친구들이 외로움을 강요하며 소개팅을 주선했지만 잘 되지 못했어. 그 이후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외롭지 않은, 평온한 삶을 살고 있어. 역시 평범하진 않은 것 같아. 외롭지 않아야 할 시기엔 외롭다 울고, 가장 외로워야 할 시기에 오히려 외롭지 않다니.


그래서 사실 나는 네가 누군가를 만나고 와도 외롭다는 말을 할 때마다 어릴 적의 내가 떠올라. 어릴 적 짝사랑이 끝나고 외로웠던 건 사실 그 친구 때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거든. 내가 내 스스로 너무 많은 욕심을 부렸다는 걸, 어린 마음에 어떻게든 좋아하는 사람이랑 마주보고 싶어 요령도 없이 무리만 했다는 걸 십 수 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어. 첫 단추를 잘못끼운건 상대방이 아니라 나였던 거야. 사실 그 친구는 잘못한 게 없었어. 그저 못된 관계를 만들지 않기 위해 나를 거절해야 했고, 그래도 꽤 말이 통했던 자신을 좋아했던 친구와 밥 한 끼 사주는 걸로 최소한의 성의는 표시했던 건데. 내가 했던 모든 짝사랑도, 연애도 다 나의 욕심이 나를 외롭게 만든 것이더라고. 조금만 덜 기대했어야 하는데. 사실 그게 쉽진 않아. 그치?


네가 이 편지를 읽고서 다음에 날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 다만 나는 네가 내 편지를 읽고 외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와 만나는 사람들은 적어도 너를 가치 있게 여기는 사람들일 테니까. 그리고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건 나쁜 게 아니라는 것도 꼭 말해주고 싶어. 그 어느 감정보다도 벅차오르고 설레는 감정이니까. 내가 그랬듯 욕심만 아니라면 말야. 너에게 연애와 사랑이라는 게 나처럼 외로움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이미 아닐 테지만, 앞으로도 그러지 않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


별 이야기 없는 흑역사만 늘어놓는 편지가 된 것 같아 민망하다. 하지만 다음에 만날 때, 그저 너의 말을 듣기만 하는 내가 이상하게 보이진 않을 거라는 확신은 들어. 좀 더 진심으로 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예쁜 사랑을 꿈꾸는 너를 응원하면서. 다음엔 천장에 꽃이 피어있는 카페에 가자. 그곳에서 지난 주 너의 데이트 이야길 듣고 싶어. 연락할게. 다음에 보자.



- 경험과 경청을 바탕으로 연애와 외로움에 대해 써보았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