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 경주 - 부산

시간을 펑펑 탕진하기

by 수빈노

잘게 잘게 쪼개 쓰던 시간을 마음껏 탕진하는 날들을 보낸다. 그냥 궁금하던 것들을 해보고, 발길이 흐르는 곳들로 훌쩍 떠난다. 내키면 하루 더, 또 이틀 더 머무는 것은 이제 일도 아니다. 머물 집까지 알아본 적이 있을 정도로 참 좋아하던 부산. 최근에 갈 일이 참 없었는데 오랜만에 가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마침 매년 기회만 엿보던 국제영화제 시즌에 맞출 수 있겠다.

그리고 부산에 가기 전 경주에 들러보기로 했다. 십 년은 된 것 같은데! 대개 여행은 떠나기 전에 가장 흥미롭다.


유튜브에서 보았던 모르는 음식을 먹었다. 서울에서도 본 적 없던 서빙로봇이 한우육회물회를 갖다 주었다. 귀엽지만 그냥 사람이 하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걷기 참 좋은 계절, 많이 걷고 걷고 걷고 많이 예뻐라 했다. 경주는 오늘도 아기자기 사랑스럽다. 그리고 빵의 고장. 10초에 한 번씩 경주빵을 파는 가게를 만나게 된다. 빵을 안 먹어도 이미 많이 먹은 기분. 정말 다들 장사가 되는 거야? 공들여 찾아낸 한옥에서 밤을 보냈다. 여전히 나는 꿈을 꾸고, 대개 힘든 아침을 맞이한다. 괜히 모든 것이 서글픈 하루가 시작된다. 아직 나는 아픈 밤을 훌훌 털어버리는 방법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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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키를 잃어버려 한 시간 동안 찾으면서 부산을 떨었다.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장면들을 무척 많이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부산으로 간다. 그새 좀 바뀐 해운대에 앉아 잠깐 바다를 본다. 역시 바다 최고야. 그리고 드디어 영화제. 첫 영화는 별로였지만 슬금슬금 축제 분위기에 괜히 기분이 들뜬다. 오늘 머물기로 한 요트에 친구의 친구를 불러들여 함께의 저녁을 보내기로 했다. 자주 보던 야경 뷰인데 요트 위에서 보니 또 다른 느낌이 되었다. 웅장하고 고요하고 쓸쓸하다. 오늘 처음 모인 우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부지런히 오갔다. 그들의 대학시절 친구들과 학교 앞 음식점도, 요즘 화제라는 스우파도, 설리도, 길고 짧은 주제가 되어 다녀갔다.


우리 삶은 어떻게 될까.

도란도란 자꾸 술을 추가하느라 편의점을 오락가락하면서 희미한 밤이 흘러갔다. ‘이런 요트 하나 가지면 좋겠구먼.’ 멍하니 생각하는 와중에 친구가 물에 아이폰을 빠뜨렸다. 퐁당. 소리가 너무 경쾌해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래.. 요트를 가진다면 새 휴대폰을 자주 사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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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국제 영화 선택은 대체로 실패. 조금 실패거나 많이 실패거나 했다. 옆 사람이 시작부터 곤히 자는데도 딱히 깨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역시 결국 가장 좋았던 영도. 사진을 보고 찜해두었던 해녀촌을 찾아 헤매고 헤매다 돌바다를 끼고 시간 여행을 했다. 배가 아팠다. 그래도 모르던 파도를 많이 만나게 되었으니 추억이 된 셈 치자. 애증의 네이버 지도 리뷰는 결정적인 순간에 신뢰하기 어려운 적이 많다.


바다 냄새를 아직 짙게 품은 우니를 숟갈로 퍼먹으면서 하루 더 머물 곳을 찾아 예약했다. 내가 바다를 맛있게 먹는 동안 영도 모기들은 나를 더 맛있게 먹었다. 대충 멋대로 흘러가는 즐겁고 귀여운 여행이었다. “수빈아. 나는 그냥 네가 자유롭게 행복했으면 좋겠어.” 이렇게 시간도 마음도 멍하니 흘려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