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후, 다시 혼자 바다
7월: 양양
감당이 안 되는 몸 때문에 마음까지 지치는 날들이 이어진다. 걷지도 먹지도 못하는 날들. 병원을 순회하며 의사 선생님들의 길어지는 설명을 듣고 있자니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발 부상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소화기 피부 골반 뭐 여기저기 성한 곳이 없다. 어제는 또 난데없이 예전에 치료했던 이가 댕강 빠져서 이건 무슨 상황인지 웃음이 났다. 한 곳이 망가지면 예상이 닿지 못하던 영역마저 영향을 받는구나. 그 범위의 확장이 무섭도록 끝이 없구나... 욕심낼 것들보다 덜어낼 것들로 고민이 옮겨진다. 단순하고 건강한 생활. 이리도 어려울 일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잔인하게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이라면 단연 아픈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일등일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어쩌면 스스로 가장 힘들게 하는 방법 또한 그것일지 모른다. 모두를 위해 아프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을 하기 위해 아프지 말아야 한다. 건강에 대해 오래 생각할 기회를 자꾸 얻게 된다.
한동안은 요가를 할 수 없었다. 엄마랑 함께 다니던 요가원으로 향하는 길목은, 그 길목에 남겨진 엄마와의 장면들은 나를 빙빙 둘러 걷게 했다. 발이 다쳐 맘껏 헤매기 어려워진 시간을 보내며 내 몸은 해소되지 못한 마음들이 차곡차곡 쌓이듯 아픈 데가 늘어났고, 그렇게 다시 찾게 된 것은 또다시 요가였다. 무사하지 못한 발이 수용할 수 있는 한정된 동작만을 아슬아슬 이어가면서. 나눠 쓰던 매트 위에서 나는 다시 조금씩 회복해 갔다. 매트 위에서는 모두 다 잊을 수 있고, 동시에 모두 다 기억할 수 있었다. 이곳에 머물던 마음이 이리 저리로 떠다니다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끝이 났다. 그렇게 과정을 겪어야 반드시 끝이 나는 장면을 목격했다. 헤매도 괜찮다.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 이제는 그런 방법들을 알고 있다.
다시 혼자 바다를 찾았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기분과 더 필요한 게 없는 기분을 오갔다. 많은 것이 여전했지만 돌아보니 나는 또 많이 달라져 있다. 영원히 단단하게 존재할 것만 같던 것들이 저쪽에 힘 없이 늘어져있다. 허물렸거나 조각이 되었거나 색을 잃었거나 더 이상 존재를 증명할 수 없게 된 것들도 있다. 그 앞에 서서 그냥 '그렇구나' 하고 바라본다. 그렇구나. 시간이 약이라기보다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중요했던 게 아닐까. 알거나 모르던 다양한 마음을 무차별적으로 거치는 과정을 넘어서야 만나는 날이 있다. 바라고 기대하지 않아도 무심하게 어느 날 문득 툭, 하고 찾아오는 순간들. 욕심을 놓는 순간 비로소 가능해지는 어떤 마음의 발견.
길에서 엄마와 딸을 보면 여전히 미세한 질투심 같은 게 지나간다.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 그런 것은 살면서 있어본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닫는다. 마침내 나는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차마 똑바로 볼 수가 없다가, 또 넋을 잃고 보다가 한다. 부러우면 부러운 대로.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다 괜찮지 뭐. 이제는 이런저런 예쁘고 못생긴 마음을 인정한다. 피하지도 미워하지도 않고 그저 바라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