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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스키 Sep 09. 2022

잠깐만 혼자 춤을 춰도 될까요

Modjo-Lady(Hear Me Tonight)

 어느새 추석이 되어버렸다.


추석은 유독 얼떨떨하게 맞이하는 명절이다. 나는 스무살 대학생때부터 쭉 유통업계에서 일을 해왔다. (아마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렇겠지만) 특히 명절이 대목인 유통업계 특성상 추석 전까지는 온갖 프로모션과 기획전을 준비하고, 때에 따라서는 제품 포장과 출고 현장에 투입되어 바쁘게 손을 놀려야 했다. 누군가의 풍요로운 명절을 준비하느라 내리 야근을 하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정작 나의 명절이 다가오는 것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와 가족이나 친척들과 복작복작 부대낄 때가 되어서야 새삼스레 명절이 다가왔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저희는 어쩌다 어색해졌죠


아버지는 4형제의 장남이요, 어머니는 4남매의 장녀인 관계로, 친척모임은 항상 우리 집에서 열려왔다. 추석 연휴의 첫째날 친가 친척들을 우리 집에서 맞이하고, 이튿날인 추석 당일에는 그들을 배웅한 뒤 외가로 떠나는게 명절의 루틴이다. 그리고 나는 딱히 하는 것도 없으면서, 친지들로 가득한 집안 분위기가 어색하고 소란스러워서 입을 비쭉 내미는 철없는 인간으로 자라버리고 말았다. 천진난만한 어린이 시절, 두 집안의 첫 손주로서 귀여움을 잔뜩 받았던 아득한 역사가 존재하는데, 다크서클이 내려오고 어깨가 떡 벌어진 어른이 되어버린 이후에도 아직도 그 시절 이야기를 꺼내는 어르신들의 레파토리는 정겨우면서도 쑥스럽고 어색해서 자리를 피해버리고 싶었다(!)


친척 동생들이 조금 크고 나서는 '애들을 돌보겠다'는 명목으로 동생들을 죄다 끌고 동네 카페로 피신을 가버렸다. 제각기 음료를 시켜놓고 잡담을 조금 나누다가, 주민들이 제각각 명절을 쇠러 떠나고 한적해진 거리를 거닐 때는 해방감마저 들어서 깨춤을 추고 싶을 지경이었다. 한 번 방목의 자유로움을 맛 본 집안의 3세들은 그 이후로도 말없이 눈빛을 주고받으며 카페로 튈 준비를 한다. 


어쩌다 친척들과의 조우는 이렇게 어색한 이벤트가 되어버리고 말았을까? 매년 두 번씩은 꼬박꼬박 한솥밥을 먹으면서 안부를 나누는데도, 다음 명절이 되면 쌓아두었던 관계가 다시 리셋 되어버리는 것 같다. 할 말은 없는데, 뭔가 말은 건네야겠고. 그럴때면 으레 '올해 네가 몇살이더라?'를 시작으로 유년시절의 레파토리를 다시 한 번 꺼내게 되고야 마는 것이다. 기십년 간 꾸준히 어른이 되어왔는데 (아직 철은 없지만) 언제적 어린시절의 흑역사 (제발요) 를 갑자기 마주하게 된 나는 당황스럽다. 연봉과 진로와 결혼계획을 물어올때면 정신이 혼미하다. 관계의 공백을 어떻게든 채워보기 위한 질문세례를 실컷 받은 후, 그들을 떠나보내고 나면 나는 혼자 남아 비로소 디스코를 춘다.



잠깐만 혼자 춤을 춰도 될까요

아직 철들지 못한 어른이의 어리광입니다. 


3년간의 긴 팬데믹 동안 만나지 못하게 되면서, 명절 모임에도 형식의 변화가 생겼다. 그 전까진 으레 집에서 모여 집밥을 먹고 하룻밤을 자고 가곤 했지만, 짧은 무박 나들이와 외식으로 대체하게 됐다. 올해에는 철원 한탄강의 주상절리길 주변에서 식사를 하고 산책을 했다. 이 글도 한탄강변의 카페에서 휘뚜루 마뚜루 썼다. 3세들과 함께 어르신들을 관찰하면서. 서로 인생샷을 찍어주겠다, 자리를 이동해야 한다, 의견이 자와자와 오가느라 소란스럽다. 유치한 장난을 치고 있는 작은 아버지들의 모습은 일견 천진난만하기까지 해서 신기할 지경이다. 


제 밥벌이를 하는 나이가 되자, 부모님께 이 명절이라는 것은 각자 먹고사느라 얼굴 볼 틈 없이 바쁜 형제 자매들을 만나 회포를 풀 수 있는 몇 안되는 이벤트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매 명절마다 형제자매들과 깨벗고 놀던 어린시절로 회귀하는 것만 같은 부모님들의 모습이 새삼스럽기도 하고, 부드러운 애정이 샘솟기도 한다. 매년 어색함을 이겨내고 똑같은 질문을 하는 것 또한 혈육의 자식들을 향한 어른들의 애정표현일 것이다. 올해에는 좀 더 살갑게 대해드려야지, 매년 짧은 추억을 만들어가다 보면 이 레파토리에도 조금쯤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비로소 장손의 역할을 다짐하고 있는데, 이번엔 새로운 산책로를 발굴해서 기어이 가보아야겠다며 3세들을 호출하는 부름이 들린다.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는데 나와 내 옆의 또다른 3세 (올해 스무 살이된) 를 번갈아 쳐다보시는 걸 보면, 왠지 '올해 네가 몇살이더라?'를 물어보실 것 같다. 


즐거운 명절입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하지만 잠깐만 혼자 춤을 춰도 될까요. 올해까지만 출게요. 





프랑스의 하우스 듀오 Modjo의 데뷔싱글이자 신나는 디스코, Lady(Hear Me Tonight)이 수록되어있는 앨범재킷이다. 힙하고 감각적인 재킷이미지와 달리, 터덜터덜 짐을 챙겨 푼돈 모아 친구들하고 놀러나가는 뮤직비디오는 영락없이 명절때 어떻게든 집을 나가려던 내 모습 그 잡채라 웃음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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