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숙.. 아버지가 죽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영업 처에 중요한 미팅을 앞두고 부산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부산으로 가는 길이기도 했고 요 며칠 일에만 매달려 있었기 때문에 일정을 마친 후 며칠간 그곳에서 묵을 생각으로 최고급 호텔도 예약해 두었다. 아버지와 함께 사는 사람이라고 밝힌 그 여자는 ‘금숙’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야 할 것 같았다며 흐느껴 울었다. 전화를 받았을 때, 아버지의 죽음보다 한국말이 어눌하기만 한 그녀가 답답했고, 아직도 나를 금숙이라고 부르는 것도 짜증이 났다.
“금숙 아니에요. 은희예요.”
“아... 은희. 아버지가 죽었어요.”
“언제요?”
“삼 일 전... 아침.. 사고..”
“옆에 누구 있으면 바꿔줘요.”
그녀와 통화를 하다가는 부산에 도착할 때까지 아버지가 왜 돌아가셨는지 이유를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다시 전화를 받은 사람은 아버지의 누나였다. 연락을 할지 말지 고민을 하다가 내게 연락을 했다고 했다. 아버지의 누나는 아버지가 아침에 공사판으로 일을 나갔다가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철근 위로 떨어져 즉사를 했다는 이야기, 그간 아버지가 나와 연락을 하지 않는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금숙이 너를 간간히 보고 싶어 했다는 이야기까지 상세히도 알려주었다. 중간중간 내가 대답이 없자 듣고 있니? 같은 말도 했다. 나는 알았으니 장례식장 주소를 문자로 남겨달라고 했다. 아버지의 누나는 당황했지만 차가운 나의 대답을 예상이라도 한 듯 금세 전화를 끊었다. 창밖을 보니 해가 쨍쨍했다. KTX 내 전광판에는 오늘 최고기온이 36도이니 바깥출입에 주의하라는 경고 안내 문자가 지나가고 있었다.
*
나의 엄마는 내가 막 어린이집을 들어갔을 무렵 집을 나갔다. 엄마는 배우가 꿈이었는데 한 순간의 실수로 나를 가졌다며 자신은 늘 불행하다고 이야기를 했고 ㅡ어린 내가 기억을 할 정도였다ㅡ 결국은 아버지와의 잦은 다툼을 핑계로 집을 나갔다. 이후 아버지는 엄마를 쏙 빼닮은 나를 보고 있으면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며 손에 잡히는 대로 내게 물건을 던졌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아버지의 화를 견디기만 하면 엄마가 돌아올 거라 믿었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버텼다. 아버지의 화는 발작처럼 심해졌다. 밥을 먹다가도, 티브이를 보다가도, 심지어 내가 감기가 걸려도 화를 냈다. 해가 지나갈수록 아버지의 화는 점점 더 심해졌고 그때마다 술이 함께였다. 그러다 어느 날, 맥주병을 무자별적으로 휘두르다 실수로 내 머리를 내리쳤고, 나는 이마 사이로 흐르는 피를 보고서야 더 이상 견딜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내 발로 고아원을 찾아간 것은 열 살 때 일이었다. 나름 변명도 준비했다. 엄마 아빠가 며칠 밤만 자고 온다고 했는데 안 와요. 두 분이서 멀리 여행 가셨는데 절 안 데리고 가셨어요. 아빠가 병에 걸리셨어요. 최대한 나를 불쌍해 보일 변명을 생각했다. 그래야 이 불쌍한 나를 받아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변명은 당연히 통할 리 없었다.ㅡ정문 앞에서 연습도 했었는데ㅡ 나는 다시 그 지옥 같은 소굴로 들어갈 바에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게 낫다며 마룻바닥에 대자로 누워 오열했다. 당황한 원장님은 나를 우선 진정시켜한다는 이유로 그럼 두 밤만 자고 가자는 제안을 했다. 나는 금세 울음을 그치고 배가 고프다며 밥을 달라고 했다.
그 이후에 두 밤만 자고 간다는 약속은 일주일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고 삼 년이 지나도 계속됐다.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지만, 들리는 소문에는 원장님이 아버지에게 연락을 했지만 내가 필요 없다고 했단다. 오히려 밥값이 줄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했다고 했단다. 정확한 이유를 듣고 싶었지만 선생님에게 물어봤자 어차피 정확한 이유를 들을 수도 없었을 테고, 들었다고 한 들 나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고아원 생활이 훨씬 더 적성에 맞았다. 고아원은 열여덟 살이 되는 해에 나왔다. 그때 처음으로 주민등록증을 만들었고, ‘박금숙’이라는 이름 대신 ‘박은희’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했다.
아버지가 일본에 건너가서 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내 나이 스무 살쯤 일이었다. 그때 나는 남자 친구와 동거를 하고 있었는데, 너한테 편지가 왔어 라며 우편함에 있던 편지를 하나 건넸다. 누구? 나한테 편지 보낼 사람 없는데 하며 편지를 받아 든 종이에는 박상배라는 이름이 또렷하게 적혀있었다. 남자 친구는 박상배가 누구야? 하며 물었고 나는 응. 죽은 아빠라고 대답했다.
편지 속 내용은 예상과 다르게 너무도 다정했다. 나는 이 죽일 년. 나를 버리고 간 천하의 호로자식. 같은 내용이 쓰여 있을 줄 알았는데 아빠는 일본으로 왔단다. 이 곳에서 새엄마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 있어. 너의 동생도 태어났어. 난 너를 항상 사랑한단다. 같은 이질적인 내용만 가득했다. 도저히 아버지가 쓴 편지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글씨체가 아버지와 똑같아 꼼짝없이 당하듯 믿을 수밖에 없었다. 화가 났다. 아버지가 내 얼굴만 보면 엄마가 생각나 나에게 물건을 집어던졌을 때 기분이 이랬을까. 십 년 만에 편지를 써서 한다는 소리가 뭐? 사랑? 웃기고 앉았네. 나는 그 자리에서 편지를 박박 찢었다. 속은 후련했지만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앞에 아버지가 있었으면 물건이라도 집어던졌을 텐데.. 맥주병이라도 휘둘렀을 텐데.. 아무것도 없어 나는 마냥 서러웠다. 남자 친구는 그런 나를 의아해했지만 더 이상 이유를 묻지 않았다.
*
부산으로 가는 KTX 안에서 미팅을 포함한 호텔 예약까지 이후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대신 가장 빠르게 후쿠오카로 갈 수 있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멀리 출장을 갈 때마다 여권을 챙기는 버릇이 이런데 쓰일 줄은 몰랐다. 후쿠오카로 가는 비행시간은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시간보다 짧았다. ㅡ사실 그런 걸 느낄 수 없을 만큼 정신이 없었기도 했지만ㅡ 후쿠오카 공항에 내렸을 때는 이미 해가 진 저녁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누나가 알려준 주소를 들고 택시를 잡았다. 공항과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목적지가 있었다. 장례식장인 줄 알았던 주소는 가정집이었다. 잘못 알려준 건가 싶어 전화를 하니 황급히 문을 열고 아버지의 그녀가 나왔다.
아버지가 지냈던 후쿠오카는 한국에서도 두 시간 안이면 충분히 올 수 있는 곳이었다. 후쿠오카에서도 아주 작은 동네에 살림을 차린 두 사람은 재작년 교통사고로 딸을 잃고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ㅡ딸의 이름은 박민지였고, 겨울에 태어나 후유ふゆ라고 불렸다고 했다ㅡ 아버지와는 십오 년 전에 처음 한국에서 만났고, 그녀를 만난 이후로는 술도 끊고 열심히 일을 하고 살았다고 했다. 하지만 가끔 술을 마실 때면 우리 금숙이 하면서 틈만 나면 금숙이를 찾았고, 처음에는 금숙이가 딸이 아니라 전 부인이 아니었나 생각을 했다고 했다. 내가 받았던 편지는 자신이 불러준 대로 쓴 거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편지 같은 건 써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 무척이나 낯간지러워했지만 처음 글을 배우는 아이처럼 즐거워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간간히 우편함을 들여다보기도 했고, 한국에서 편지가 왔냐 묻기도 했고, 그러한 날들은 일 년 정도 이어졌다고 했다. 자신과 한국에 살았을 때도 내가 살았던 고아원을 자주 다녀갔었다고 말했다. 왜 갔다 왔는지 묻지는 않았지만, 짐작하자면 나를 몰래 보러 갔던 게 아니었나 생각했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꼬박 두 시간 동안이나 앉아 들었다. 워낙 두서없는 이야기이기도 했고, 그녀의 서툰 말 때문에 시간이 좀 더 길어진 것도 있었다. 나는 울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그건 아버지의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울 건 다 울었어요. 라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그간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왔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장례에 찾아올 가족도, 슬퍼해줄 사람도 없기 때문에 바로 화장을 할 거라 말했다. 어차피 화장한 유골은 집 안 불단에 모실 것이기 때문에 별다른 절차를 밟지 않을 거라 했지만, 사실 그만한 돈이 없어서였던 건 집안 살림살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앉아 바닥을 바라보며 몇 번 코를 닦았다. 이어 장례사와 이야기를 해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나는 그녀가 방을 나간 후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슬픔은 아닌데 견딜 수 없는 감정이 내 몸속에 가득 차 팽창하는 기분이었다. 마치 내 몸은 여기에 있는데 내 영혼은 이 방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그간 아버지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구경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건 싫었다. 나는 발작처럼 숨을 들이켰고, 밭은기침을 몇 번 하고서야 조금 안정이 됐다.
*
아버지의 화장은 삼일 뒤였으나 나는 아버지의 그녀에게 그때까지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작은 방에서 자고 가라는 말도 들었으나 그럴 수도 없다고 말했다. 어차피 남인 나에게 왜 이렇게 호의를 베푸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불편함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나는 근처 호텔에서 잠을 자고 내일 한국으로 돌아갈 테니 그렇게 알라고 말을 했다. 그녀는 유독 그 말에는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움푹 팬 주름이 그녀의 마음의 강인 것 같았다. 강이 마르고 말라 더 이상 마를 수도 없어 바스러질 거만 같았다. 그런 그녀를 보면 아버지가 더 생각이 났다.
“아버지한테.. 말 전해줄게요.”
“무슨 말을요?”
“금숙... 할 말..”
그런 거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괜찮아요.”
“전해줄게요. 지금 생각나는 말..”
그녀는 정말로 나의 말을 전해주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이 곳까지 온 걸 보면 나도 할 말이 있어서 온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갈 길 잃은 손을 바라보다 당장 생각나는 말을 전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죽은 게 어울려요.”
마당 앞 봉선화가 진다.
*
후쿠오카의 7월은 생각보다 많이 더웠다. 택시를 잡으려 서있던 순간에도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저 멀리 새카만 어둠 속에서 위태로워 보이는 불빛을 안은 택시가 내게 오고 있었다. 딱히 손을 흔들지도 않았는데 택시는 내 앞을 가로막아 섰다. 나는 누가 볼 새라 몸을 숨기듯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고 시내를 이동하는 내내 나는 그녀의 손이 마음에 걸렸다. 수없이 찢기고 아물길 반복했을 손. 그녀는 왜 내게 아버지에게 건넬 마지막 말을 듣고 싶어 했을까. 어차피 생판 남인데 왜 나를 이곳까지 오게 했을까. 아무 생각이 머리를 잠식했다. 그러는 사이 택시는 시내에서도 가장 호화스럽고 비싸다는 호텔 앞에 섰고 나는 부조금을 내듯 택시기사에게 돈을 건넨 후 택시에서 내렸다. 사실 그 이후부터 지금 침대에 누워있는 이 순간까지의 기억이 없다. 방에 들어와 씻는 동안 여러 번의 전화가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이 아니어도 받을 수 있는 연락들이었다. 침대에 맨 몸을 뉘었다. 내 몸의 온도가 침대의 아래 깊숙한 곳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이대로 눈을 감았다 뜨면 아침이었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다. 어쩌다 내가 여기까지 왔지. 그녀가 듣고 싶어 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전해야 할 말은 또 무엇이었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딩동- 딩동- 딩동-
연달아 세 개의 문자가 도착했다. 회사에 급한 일이 생긴 건가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아버지에게 금숙도’
‘많이 보고 싶 었다고 말했어.’
‘자고나 면 아침 밥을 먹고 가 요.’
한참을 그녀가 보낸 문자를 보며 서 있었다.
조금 있으면 창 밖에 해가 뜰 것이다. 나의 숨기고 싶은 표정이 절실하게 드러날 것이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