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Seattle
두 번째 기억
시애틀, Seattle
그곳에 피아노가 있었다.
나는 피아노를 오래 쳤다. 비록 그만둔 지 15년이 넘었지만, 그에 비례할 만큼 피아노를 쳤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었어야 했다. 그래서 그 시절에 만난 사람을 오래간만에 만나면 피아노를 안쳐? 그럼 지금 뭐 해? 같은 반응이 대부분이다. ㅡ글을 쓴다고 대답하면 흐음 하면서 수긍하는 분위기인 것도 피아노를 쳤던 기간만큼 동안 해왔다고 설명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ㅡ 누군가가 피아노를 왜 그만뒀냐고 물었을 때 나는 항상 미리 준비해 놓은 대답을 했다. 레슨비가 너무 비싸서. 그 당시에 한 달 레슨비가 60만 원이었어. 그럼 또 대부분은 수긍을 한다. 돈이 관련된 문제라고 하면 누구든 그렇게 수긍한다.
우리 집에 있는 피아노는 건반이 무겁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파이프오르간을 쳤었기 때문에 일반 피아노를 치는 방법으로 연습을 하는 건 무리였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엄마는 연습을 열심히 해야 한다며 주문 피아노를 사주셨다. 하지만 생각만큼 집에서 피아노로 곡을 연주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어차피 파이프오르간은 지정된 장소에 가야만 연습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 집에 있는 피아노는 간간히 엄마가 좋아하는 곡을 치거나 친구에게 생일 축하 연주곡을 쳐줄 경우에만 종종 사용되곤 했다. 내가 피아노를 치면 엄마는 노래를 불렀다. 짧은 연주곡을 쳐도 엄마는 박수를 쳤다. 그러한 날들은 꽤 오랫동안 지속됐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러한 시간을 보내는 일도 줄어들게 되었다. 나는 독주회 공연보다 친구들과 함께 술집을 드나드는 일이 잦았고, 엄마 또한 나의 피아노 소리보다는 티브이 소리에 더 관심을 보였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서운하진 않았다. 시간이 그렇게 나를 다져줬다.
*
이번에 시애틀에 가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은 그녀의 집에 있는 피아노를 조율하는 일이었다. 그녀가 여기서 머무는 동안 얼마든 피아노를 쳐도 좋다고 말했기에 나는 그녀가 일을 하러 간 사이 조율사를 불렀다. 조율사는 이렇게 오랫동안 조율을 하지 않은 피아노는 처음 본다며 신기해했다. 순간 나의 집에 있는 피아노가 생각이 났다. 피아노를 그만두고 1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단 한 번도 조율을 하지 않았다. 피아노는 그저 나와 오빠의 졸업사진 받침대, 가족사진의 지지대가 되어주었을 뿐이다. 사실 그녀가 피아노를 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 피아노를 마주할 마음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조율을 마쳤을 때 나는 마치 어렸을 때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마구 신이 났다.
손에 익은 몇 곡을 제외하고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너무나 둔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 준비가 한창이었던 그녀는 어느새 내 옆에 앉아 조용히 내가 연주하는 곡을 듣고 있었다. 연주곡이 세 개가 지나갈 즈음 나는 그녀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실 그때 엄마한테는 우리 집이 힘들어서 피아노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피아노가 싫었어. 차마 내 탓으로 돌리기 싫어서 그냥 집 핑계를 댔어. 어렸어도 참 비겁했어. 그녀는 다 지난 얘기를 뭐 하러 꺼내냐며 대수롭지 않게 다음 곡을 신청했다. 나도 별 다른 대꾸 없이 그녀가 신청한 곡을 띄엄띄엄 연주했다. 어설픈 연주는 저녁까지 계속됐다.
그녀는 저녁을 마저 준비해야 한다면서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따금 내 연주에 맞춰 콧노래를 부르면서 두부조림을 만들었다. 나는 계속해서 틀렸던 부분을 반복해서 피아노를 쳤다.
그래도 피아노는 안 버리길 잘했지 뭐야.
그녀가 한참이 지난 후 말했다.
계속해서 틀렸던 부분을 더 이상 틀리지 않게 되었을 때였다.
# 범람하는 기억을 기록합니다.
@cu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