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쓴 초코바

in Seattle

by cudy



세 번째 기억

시애틀, Seattle




나와 다른 온도를 가진 사람을 만났다.


Seattle, 2018



내 가방에는 항상 두 개의 초코바와 한 개의 텀블러가 있다. 일종의 버릇 같은 것이다. 텀블러는 물을 많이 먹는 내 버릇 때문에, 초코바는 긴장할 때마다 단 걸 먹어야 하는 내 버릇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의 주변 사람들은 항상 나를 만날 때면 “물 더 먹을 거야?” “지금 초코 먹을 거야?”라는 말을 한다.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한 말이지만 나는 그 말을 좋아한다. 그래서 “응. 물 더 먹을 거야.” “초콜릿은 지금 안 먹을 거야.” 같은 어린아이 같은 대답을 하곤 한다.


시애틀에 가장 먼저 도착했을 때, 나를 마중 나온 그녀는 어서 와 라는 짧은 말을 하고 미리 준비해 온 초코바 두 개를 건넸다. 이거 엄청 단 거야. 이거 한 번 먹으면 이제 한국에 있는 거 못 먹어. 라고 장난스럽게 말하고 내 초라한 짐을 받아 들었다. 나는 그녀의 뒤를 쫓으며 초코바 하나를 깨물어 먹었다. 달다 못해 썼다. 쓴 맛이 온 입 안을 헤집었다. 켁켁. 것 봐 엄청나지? 앞질러 가던 그녀가 뒤를 돌아 말했다. 나는 못 먹겠어 하고 초코바를 건넸다. 몇 번 더 먹으면 차차 익숙해질 거야 라고 그녀가 말했다. 괜찮아지는 데는 몇 번의 시도와 참아낼 끈기와 다가갈 용기가 필요하다. 그녀가 괜찮아진다고 하면 괜찮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한편으로 아직 난 아메리카노도 잘 못 먹는데 하는 생각을 했다.


*


텀블러는 한국에서 두고 왔기 때문에 시애틀에 도착하자마자 기념으로 한 개 구입했다. 한국에서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보온보냉이 잘 되는 것으로 골랐다. 시애틀에 유명 커피전문점의 1호점이 있다는 이야기는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젊은 청년에게서 들었다. 그는 비행하는 내내 내게 짧게 말을 걸었다가, 가만히 창문 밖을 바라보다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며 핸드폰 속의 사진을 몇 장 보여주곤 했다. 그의 적극적임은 평소의 나와는 그다지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그의 특유의 살가움은 꽤 흥미로웠다. 그래서 나도 그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수줍게 몇 장 보여주거나 시애틀에 있는 벨뷰로 친구를 만나러 갈 거라는 말도 했고, 초콜릿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는 꽤나 수다쟁이였는데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고 어느 정도는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간간히 멍한 표정을 지으면 오오 알았어 천천히 말해줄게 같은 느낌으로 다시 한번 말해주고는 했는데 그런 다정스러움이 참 매력으로 느껴졌다. ㅡ물론 거기까지다ㅡ 그와 함께 한 비행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재미있어서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간 처리되지 않았던 나의 감정을 그가 잘 섞어서 예쁜 모양으로 대신 빚어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묘한 느낌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기 직전 그는 자신의 연락처가 담긴 명함을 내게 넘겨주었다. 벨뷰에 오래 있을 거라면 한 번 만나자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가 건넨 명함을 한참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Seattle, 2018


그녀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이건 운명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기다릴 필요가 뭐 있냐며 지금 당장 이번 주말에 만나자는 문자를 보내라고 했다. 나는 거절했고, 그녀는 계속해서 나를 설득했다. 나는 다시 한번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는 너는 진짜 재미가 없다 라고 말하고 거실로 가버렸다. 나는 초콜릿을 가지러 주방으로 향했다. 몇 가지의 초콜릿을 고르고 커피를 내렸다. 취이익하는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커피메이커가 작동을 했다. 똑똑 떨어지는 커피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 번쯤 만나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익숙한 문자메시지 도착 알림음이 들렸다.

어? 이번 주말 가능하대! 그녀가 말했다.

나는 텀블러에 담고 있던 커피를 쏟았다.







# 범람하는 기억을 기록합니다.

@cu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