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미팅을 회장님과 하다니

#1 예상하지도 못한 만남으로 작업 결정 by 유자까

by 유유히유영

(앞에 글을 읽고 오시면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나에겐 많은 병이 있다. 미국에 다녀오고 나서 내게 공황장애가 생겼다. 병의 직접적 원인 중 하나가 미국이다 보니, 나를 미국으로 보낸 박희만 선배는 미안한 마음에 가끔 연락해 안부를 물었다.


“유 기자, 잘 지내나요? 요새 건강은 어때요?”
“네, 건강도 잘 회복하는 중이고요. 선배는 어떻게 지내세요?”
“아, 요즘 ‘새마을운동중앙회’에 직원으로 들어갔어요.”
“네? 새마을운동중앙회에 선배가요?”


선배는 오해하지 말라고 재차 강조했다.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으로 부임한 정성헌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을 돕기 위해 입사했다는 것이다. 새마을운동이 변하고 있다고 했다. 뭐, ‘생명살림운동’이라고 기후위기에 맞서는 운동을 한다나. 그런 단체가 우리와 만나길 바라고 있었다.


“우리 회장님이 한번 보고 싶어 하시는데.”
“네, 저희를요?”
“영상 제작자를 찾는데, 유 기자가 적당하게 보여서 말이지. 내가 교회 개혁을 위해 열심히 했던 후배라고 말했더니 한 번 보자고 하시네.”
“우리가 뭐라고, 그분이 보자고 하시나요?(ㅜ.ㅜ)”


그렇게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아내에게 “선배가 새마을운동에서 일한다는데, 하여튼 특이한 사람이야”라고 살짝 웃었다. 아내도 “원래 자기가 세운 단체 대표로 일하지 않았어? 그분이 왜 그런 단체에?”라며 놀랐다. 정말 우리에게 파란을 일으키는 선배였다.


당시 정성헌 회장은 ‘생명살림운동’을 알리기 위해 영상 제작자를 찾았다. 우리 말고도 얼마나 많은 제작자가 있었겠나. 하지만 함께 운동에 동참할 사람을 물색하니 잘 찾아지지 않았다. 그러다 선배에게 사람을 추천하라고 했는데, 우리를 추천한 것이다. 그렇게 정 회장과의 첫 만남이 이뤄졌다.


변화 중인 새마을운동


정 회장과의 첫 만남은 무척 흥미로웠다. 날카로워 보였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흰머리가 많은 노인 같아 보였다. 그리고 편안하고 꽤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와는 약간의 지연(?)이랄까 그런 종류의 인연이 있었다. ‘한국DMZ평화생명동산’이 있는 장소가, 내가 20년 전 근무했던 군부대 근처였다. 내가 전역한 후에 평화동산이 지어졌지만, 나는 흥분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교회 개혁을 위해 운동하는 일에 동참한 시간을 높게 평가해 주었다.


“교회가 문제가 많아. 내가 농민운동과 민중화운동 할 때도, 자기 이름을 앞에 넣으려고 하는 목사가 많았어. 그런 교회 문화를 바꾸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니 좋구먼. 앞으로 생명살림을 위해 함께 일해 보면 좋겠네.”


스크린샷 2022-02-16 오후 7.11.16(2).png 무려 회장님인데도 불구하고 소탈하고 검소한 인물이었다.


우리는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새마을운동이라니. 내가 아는 그 새마을운동은 70년대 만들어져, 지금까지 정부 관변단체로 활동하는 곳 아닌가. 우리와 색도 잘 안 맞는 느낌이 들었다. 일이 잘될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곧 의심은 사라졌다.


정성헌 회장은 생명살림운동을 위해 새마을운동 자체를 바꾸는 중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의전에 관심이 1도 없었다. 관사에서 검소하게 살았고, 주변에 남는 땅을 텃밭으로 가꾸어 거기서 나는 식물을 먹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차가 없었다. 관용차라던가, 그런 종류도 없었다. 그는 평생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았다. 우리처럼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그리고 필요하면 직원의 차를 얻어 탔다. 정말 새마을운동을 이용해 기후위기와 맞설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봤을 때, 새마을운동도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우선, 건물 복도와 사무실에서도 전기를 사용하지 않도록 했다. 그래서 복도에 나가면 어두운 장소가 있었다. 심지어 식당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씩 불 없이 음식을 조리했다. 쓰레기도 잘 배출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9년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해 이 부분을 높게 평가했다.


새마을중앙회는 이미 ‘유기농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하는 한편, 에너지 절약을 생활화해서 전기·가스·수도 사용량을 20% 가까이 절감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20% 절감에 국민 모두가 동참한다면 석탄화력발전소 열다섯 개를 줄일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새마을운동’의 시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태양광 패널이 밭 위에 펼쳐 있다. 이런 식으로 지으면 농작물에 주는 피해가 거의 없다.

실제 정 회장은 재생에너지를 무척 좋아했다. 태양광 패널을 옥상마다 설치해 발전했고, 운동장에서도 태양광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농지 위에 설치할 태양광 패널도 어떻게 설치하면 좋을지 보일 수 있도록 마련했다. 원래는 주차장이었던 장소를 없애고, 밭을 마련하고 그 위에 태양광을 설치했다.


“나는 나이가 들었고 살 날이 길지 않지만, 이걸 하는 이유는 우리 후손들을 위해 하는 거야. 생명살림운동이라는 말로 표현해야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으니, 운동이라고 부르지. 그냥 우리 삶이 이런 활동에 다 녹아 있잖아. 그리고 사람이 자신에게 이익이 안 되면, 잘 움직이지를 않아. 사람들에게도 이익이 돌아가야 움직이지.”


이 고민은 ‘케나프’ 심기로 이어졌다. 케나프, 정말 살면서 새마을운동에서 처음 들어본 식물이다. 1년생인 케나프는 나무보다 탄소를 더 많이 빨아들인다. 나무와 함께 심으면, 나무가 자라는 동안 탄소를 포집할 좋은 장치가 된다.


이걸 어떻게 심으려 할까. 정 회장은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케나프 타령을 했다고 한다. 특히, 만나는 지자체장에게 케나프 심기를 권했다. 녹지를 꾸미거나, 공원에 심으면 좋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냥 무조건 심으라는 게 아니라 그게 경제적으로도 더 이익이라고 꼼꼼히 설명했다. 축산업자들에게 심기를 권할 때 그렇게 했다. 보통 축산업자는 소여물을 수입해 사용한다. 그런데 수입하는 것보다 더 싸고, 질도 좋다고 소개했다. 거기에 펄프 대신 케냐프로 종이를 만들 계획도 하고 있었다.

실제 케나프를 심은 뒤, 다 자란 케나프로 소여물을 만들고 있는 새마을운동 회원들.

우리는 그의 운동에 감탄했다. 회장으로 온 지 1년만에 새마을운동을 이만큼 바꿔내다니! 경외심을 느꼈다. 자신이 소중한 가치라고 여기는 일을,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찾아 실천했다. 무엇보다 존경스러운 점이었다.


우리가 방문한 새마을운동중앙회는 무진장 넓은 곳이었다. 한 바퀴 도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정 회장은 우리와 함께 걸으며 이곳을 직접 소개해 주었다. 새마을운동중앙회 구석구석을 돌며, 어떻게 생명살림운동을 실천하고 있는지 일일이 설명을 했다.


정 회장의 열정에 감동한 우리는 망설임 없이 바로 영상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우리도 새마을운동이 이렇게 변화하고 있다는 걸 몰랐으니, 이참에 영상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많은 대화를 나눴다. 특히 새마을운동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어, 새마을운동 깃발이다!” 하고 외쳤다. 평소엔 모르고 지나쳤을 새마을운동 초록색 깃발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에 새마을운동 깃발이 이렇게 많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정 회장을 만나고 나서 거리가 다르게 보였다. 빈 땅을 보면 이런 말이 나왔다.


“여기에 케나프 심으면 좋겠는데.”(계속)
매거진의 이전글퇴사 시기마다 걸려온 선배의 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