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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히유영 Mar 27. 2022

조울증을 앓고 있는 형제를 만나다

#4 정신질환의 이해를 넘어서게 한 이들과의 조우 by 믹서

‘마음이 아프면 병원에 갈 수도 있지. 하지만 병원 가기 전에 상담 치료를 좀 하면 대부분 나을 수 있는 거 아닐까?’ 
‘병원에서 주는 약이 효과가 있긴 있을까? 웬만하면 약 안 먹고 버티는 게 좋을 수도 있을 텐데.’ 

정신질환에 대한 내 인식은 딱 여기까지였다. 남편이 공황장애에 우울증을 알았지만, 여기서 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의식 있는 기독교인이라 여겼다. 마음의 병이 낫도록 병원에 간다는 사실은 인정하니, 적어도 주변 사람들보단 나았다. 정신 질환을 마귀에 사로잡혔다거나, 영적인 문제니까 기도하면 좋아진다는 생각은 하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좀 부끄럽다. 

처음 조울증 가족 이야기를 담는 영상을 만들기로 하고 첫 미팅을 나갔을 때 내 마음이 생각난다.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나는 당신들을 다 이해한다. 내가 들어줄게’ 이런 오만함을 품었던 게다. 그러나 조울증 환자와 그 가족을 만나, 그들의 스토리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었다. 오늘부터 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고직한.’ 


교회 좀 다녀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이름일 거다. 청년 사역부터 사랑의교회갱신위원회 활동까지 30년 이상 한국교회에 헌신한 인물이다. 그러한 사람의 두 아들이 모두 조울증이었다니, 처음 들었을 때 좀 놀랐다. ‘내가 고 선교사였다면 하나님을 많이 원망했을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렇게 교회에 투신하는 삶을 살았는데, 정작 내 아이들의 마음에 병이 들었다면 얼마나 마음이 무너지겠는가.(정확히 말하자면 조울증 같은 정신질환은 뇌 질환이다.)


조울증에 걸린 두 아들을 만나기 전, 고직한 선교사를 먼저 만났다. 두세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어떻게 영상을 찍을지 의논했다. 약 30년 세월 동안 두 아들의 투병을 지켜본 아버지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두 아들의 조울증을 견디어야 했고, 주변 사람들의 눈초리도 견뎌야 했다. 그래도 아직 두 아들의 병이 최근 2~3년간 병세가 많이 호전되었다는 이야기는 반가웠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많았다. 긴 터널을 막 빠져나온 기분이 드는 고직한 선교사의 가족은, 이제 한숨을 돌리고 주위를 보는 중이었다. 그런데 주변을 보니,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은 고 선교사 가족만이 아니었다. 이들을 돌보는 일도 고 선교사 가족이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아들이 모두 조울증이 발현되었을 때의 심정을 이야기하는 고직한 선교사.

일단 고 선교사의 가족 이야기를 통해 조울증이 어떤 병인지 알리고, 한국교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시급했다. 우리가 제작할 영상의 목적이 바로 이것이었다. 누구에게도 속 시원히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를 카메라 앞에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었다.


조울증 환자인 두 아들은 모두 결혼했다. 정신질환이 있는 상태에서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궁금했다. 엄청난 사연이 있을 것만 같았다. 첫째 아들 조우는 28년째 조울증을 앓았다. 지금은 많이 좋아져서 아내와 함께 조울증을 주제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둘째 아들 그레이는 19년째 조울증 투병 중이고, 형인 조우만큼은 아니지만 병세가 호전되어 가는 중이었다. 


두 아들의 아내들은 자매지간이었다. 드라마에서 보던 겹사돈으로 불리는 존재였다. 그것도 형이 여동생과 남동생이 언니와 결혼했다고 한다. 이들의 만남 역시 뭔가 드라마틱한 느낌이 들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들은 기본 정보였다. 무척 재미있을 내용이다. 이 얘기만으로도 너무 흥미로워, 이 네 사람의 인생 스토리 자체에 관심이 쏠렸다.


조울증 아들들 부부와 첫 만남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은 아니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식사는 약간 힘들어하는 타입이다. 이날도 점심 약속을 했는데 걱정이 많이 됐다. 게다가 개인이 꺼내놓기 어려운 주제로 대화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어서 밥이나 제대로 먹을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막상 네 사람을 만나고 인사를 나누면서 편안해졌다. 모두 우리 나이 또래였고,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우리 남편 Y는 유머 감각이 있어서 처음 보는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는 능력이 있다. Y의 능청스러운 농담에 우리 모두 긴장을 풀었다. 


식사 중,  그레이 님이 목에 뭐가 걸려서 기침을 심하게 해서 화장실로 갔다. 다들 긴장했다. 진정이 되어 다시 돌아온 그레이는 괜찮다고 하며 다시 식사를 했다. 그리곤 Y에게 “기자라고 해서 딱딱할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게 않으시네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Y는 “이제 기자 안 하고, 회사를 하고 있다”며, 우리 일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두 형제 모두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조울증 얘기는 어느새 안드로메다로 가고, 우리네들 사는 이야기로만 몇 시간이 훌쩍 갔다. 아이가 셋인 조우 부부는 육아 이야기, 결혼한 지 8년이 됐지만 신혼 같은 그레이 부부의 일상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냥 친구들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구나’하고 생각했다.


누구나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일상을 산다. 이들 가정도 마찬가지다. 병세가 심각할 때는 병원에 입원도 하고, 약을 챙겨 먹는다. 물론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나고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조울증의 증상은 스펙트럼도 넓고, 경우에 따라 생사가 왔다 갔다 할 정도로 심각하다. 결혼 생활 내내 남편의 조울증을 함께 겪은 두 아내의 경험담 역시 어마어마했다. 그런 이야기를 털어놓는 아내들은 매우 담담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조울증을 겪은 당사자인 남편들도 마찬가지였다. 


네 사람 모두 ‘고통의 한가운데에서 참 많이 단단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적이지 않아서 마음이 더 아프기도 했지만, 분명한 건 내가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카메라에 담기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계속)


그렇게 제작한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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