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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히유영 Jul 27. 2019

남보다 느린 속도로 산다는 절망감, 즐거움으로 바뀌다

뒤쳐지면 안 된다는, 기대감이라는 폭력 by 유자까

"어휴, 지금은 별로 기대 안 해. 그냥 내가 어디 지나갈 때, 사람들이 나한테 ‘저 여자가 누구 어미’라고 흉보지 않게 살면 만족하려고."


어머니가 나를 두고 아내에게 한 말씀이다. 말 그대로다. 어머니는 내게 큰 기대를 안 한다. 사회가 그 시대 어머니들에게 부여한 잘 자란 자녀에 대한 기대가 없다는 의미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어머니는 없다.


" 녀석을   기대가 컸어. 그런데     자라고, 진학을 할수록 기대를 반으로 접고, 접고, 접었어. 그렇게 40년을 지내고 보니 자기 인생을 재미있게 살고 있는  같더라고. 지금은 그냥  사고만  치면 되겠구나 생각해."


즉, 나는 어머니 기대에 제대로 부응한 적 없는 아들이었다. 자연스럽게 어머니 기대를 꺾으며 자랐다고 해야 할까. 많은 에피소드 중 몇 개만 적어 보겠다. 부모님은 갓 태어난 나를 ‘똘똘이’라고 불렀다. 똘똘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친지, 부모님 친구 등 부모님과 얽힌 분이라면 내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드믈 정도다. 지금도 그들에게 나는 똘똘이로 불린다.


똘똘이는 똘똘하지 못했다. 수를 조금씩 헤아리기 시작했던 무렵 일이다. 당시 집에는 작은 양탄자가 걸려 있었다. 양탄자에는 귀여운 판다 다섯 마리가 수놓아져 있었는데, 부모님은 판다를 이용해 내게 수를 가르치려 했다. 어머니는 나를 안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들, 벽에 곰이 몇 마리 있을까.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다섯 마리가 있네. 많기도 하지. 그래, 곰이 모두 몇 마리 있다고?”
“세 마리.”
“아니, 다섯 마리가 있다니까. 몇 마리가 있다고?”
“세 마리.”


어머니는 내게 수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막막한 심정이 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더디게 수를 익혔다. 수만 느린 게 아니었다. 문도 느렸다. 한글을 못 익히고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유치원을 다녔는데도 말이다. 받아쓰기 시험은 늘 0점이었다. 구구단은 손바닥을 맞아가며 외웠다. 말을 더듬어 엄한 소리를 자주 들어야 했다. 부모님은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또래에 비해 성장이 느렸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캄보디아 출장에서 만난 아이들. 메콩강에서 즐겁게 뛰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또래에 비해 생일이 느렸다. 친구들보다 어리다. 늦은 2월생이라 학교에 빠르게 입학했다.(지금도 빠른 몇 년생이라고 자기소개를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이 시기 1달, 1년이 얼마나 차이 나는지 말이다. 나와 가장 잘 놀았던 친구는 나보다 12개월 빠른 3월생이었다. 사실, 형이었다.


당시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생일 느리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나는 다른 친구들과 같은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1학년 중 가장 뒤처진 나는, 그저 너무 둔하고 느려 걱정을 사는 존재였을 뿐이다. 키도 작았고, 공부도 못했다. 운동 신경도 느린 탓에 학급에서 늘 놀림받았다.


부모님만 내 느린 성장에 실망한 게 아니었다. 나도 실망했다. 스스로 ‘저능아’, ‘모지리’라고 규정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포기하듯 지냈다. 내 자존감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중학생 시절까지 이런 정체성은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반전은 고등학생이 될 무렵 일어났다. 우선, 갑자기 키가 자랐다. 중학생 시절, 키 번호가 있었다. 가장 작았을 때는 3번, 가장 컸을 때 6번이었다. 그런데 중학교 졸업식 날, 선생님은 내 위치를 반에서 중간 정도 되는 위치에 서게 했다. 알지 못하는 사이, 키가 갑자기 자란 것이다. 교복을 매 학기 새로 맞춰야 할 정도로 쑥쑥 컸다. 아기도 아닌데, 밤마다 성장통에 아파했다.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에는 187cm까지 성장했다.


키는 내게 생각하지 못한 기회를 주었다. 고등학생 시절, 만화 ‘슬램덩크’ 덕분에 농구 붐이 일었다. 나는 농구를 즐겼다. 키도 자라고, 농구 실력도 늘어갔다. 그야말로 어떤 분야에서 성장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했다. 농구에 빠졌다고 해야 할까. 매일 공을 튕겼다. 가까운 곳을 나갈 때도 어김없이 공을 꺼냈다. 걸어가는 도중 드리블을 연습하기 위함이다. 시험 기간에도 나가서 한두 시간씩 농구 연습을 하고 귀가했다. 농구는 내게 무언가 할 수 있다는 마음을 심어 주었다.


내가 땀 흘리며 진심으로 즐겁게 연습하고 도전하는 분야가 세상에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야 재미있을지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머리가 좋은 건 아니어서, 성적에 큰 반전이 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호기심이 생기니, 세상사는 맛이 달라졌다. 배우는 것이 즐거워졌다. 글쓰기도 재미있었다. 무언가를 알아가는 행복감을 처음 느꼈던 것 같다. 아이 같은 마음으로 여러 책을 읽고, 나를 표현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레전설 농구 만화 슬램덩크. 능남(료난)고 7번 윤대협을 가장 좋아했다. 그래서 등번호도 7번을 선호했다.

느리게 시작한 공부로는 당연히 같은 학년 친구들 성적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쁜 성적 때문에 불행감을 느끼지 않았다. 나만의 세계가 생기니, 성적에서 벗어난 기분이 들었다. 당시 내 즐거움은 성적으로 평가할 수 없었다.


선생님과 부모님의 걱정에도, 학교에서 내가 행복하고 즐거운 일을 찾기 시작했다. 노래가 좋아 합창부에서 열심히 활동했다. 역사에 흥미가 생기니 일반적 역사 서적은 물론, 고고학과 관련한 책까지 구입해 읽었다. 시 쓰기에도 열을 올렸다. 시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연습장을 가득 채우며 시를 썼다.(아쉽게 이런 감성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른들은 내 변화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 부모님께는 걱정만 하나 더 얹어 드린 꼴이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다른 것에만 몰두한다고 여겼다. 대학 진학에 굉장한 어려움을 겪었으니,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익히고 싶었고, 공부하고 싶었다. 아버지 강요에 못 이겨, 공대로 진학한 게 내 인생 최대 실수로 여겨질 만큼.


하여튼 책 한 권 읽지 않는다고 어머니 걱정을 샀던 내 방은, 읽은 책으로 가득한 공간이 되었다.(학위와 관련 없는 분야 서적으로 가득해 부모님은 다른 걱정을 했지만.) 관심이 생기면 관련 분야 책을 사서 탐독했다. 호기심은 다른 호기심을 낳았고, 다른 호기심은 관련 분야에 대한 또 다른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지내다 결국, 영상과 글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나는 세상이 정한 속도에 맞추지 못했다. 아마도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겠지만, ‘왜 내가 원하지 않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 늘 의심하며 살았다. 나는 내 속도로 살았고, 신기하게도 내 느린 속도가 마음에 들었다. 주변 어른들 걱정과 다르게, 좋아하는 분야를 잘 찾았고 그 일로 밥 벌어먹고 살기도 했다.

나는 한 집에서 살아가는 이 아이들과 속도를 맞추고 있다.

물론 지금도 부모님은 이 세상에서 내가 낙오할까 끝없이 걱정한다. 가끔 다른 친구들보다 여전히 더딘 발걸음을 보일 때가 있다. 아파트도 없고, 결혼 7년 차인데 아직 아이도 없다. 어느 회사에서 표적으로 삼아 헤드헌팅 하려고 할 스펙도, 경력도 쌓지 않았다. 그저 좋아하는 일을 계속 이어가려고 할 뿐이다.


나는 내 인생이 즐겁다. 여전히 나는 내 인생을, 내 속도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호기심이 나를 부르며, 새로운 세계로 초대한다. 그리고 이런 삶의 속도를 함께 즐기며, 울고 웃는 인생 동반자를 만났다. 물론 인생 동반자인 아내는 최고속의 삶을 살았던 터라, 내 속도가 무척 괴로운 듯하다. 하지만 나는 아내와 함께 대화하며 속도를 맞춰가는 재미가 늘었다. 아내와 인생 속도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이렇게 나를 위해 변명하곤 한다.


나는 인생이라는 자동차를 타고 간다. 목적지를 향해 최고속으로 달리는 일에 몰두하는 재미도 있지만, 난 주변 풍경을 볼 수 있는 속력이 더 좋다. 옆에 있는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이 더 좋다. 무엇이 남느냐고? 내 만족과 행복, 살아가는 즐거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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