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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히유영 Mar 10. 2020

고양이 집사 7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이제는 털까지 스.릉.흔.드?!" by 유자까

우리 부부는 두 고양이와 함께 산다. 햇수로는 8년 정도 함께했으니,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을 고양이 집사로 지냈다. 두 냥이와 지낸다는 사실에 큰 행복을 느낀다. 사랑하는 존재와 함께한다는 충만감이 가득한 삶은 언제나 좋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하고, 얼굴은 웃음으로 가득 찬다.


최근 친구 부부와 만나서 고양이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고양이 집사로 지내는 현실을 많이 돌아보았다. 한 달 전, 친구와 함께 살던 고양이가 갑자기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우리 부부와 친구 부부는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사랑했던 그 아이를 기렸다. 집사들보다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는 존재를 사랑하는 마음을 함께 격려했다.


사랑하는 존재를 먼저 떠나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실제 친구 부부는 고양이가 떠난 날, 혼미한 정신으로 하루를 지냈다. 그 아이는 3년 정도 살다 갔다. 지방에 사는 친구는 처가 뒷마당에 그 아이를 묻어 주러 잠시 올라왔다. 언제 떠날지 모를 지방에 두지 않고 자주 찾을 장소를 택한 것이다. 떠나 보내고도 그리운 마음은 달랠 수 없다. 친구 부부는 죽은 냥이 용품이 집 안에서 나오면 그대로 오열한다고 했다.


반려동물과 처음 사는 내게 이 소식은 충격, 그 자체였다. 나는 왜 고양이와 함께 살기를 그토록 열망했을까.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고양이를 사랑해 주기를 원할까. 우리 부부는 고양이와 살면서 무엇이 바뀌었을까. 여러 의미를 고민하며, 나를 인터뷰해 보았다. 인터뷰 진행은 아내님께서 친히 담당해 주셨다.

우리 집 사랑스러운 두 냥이, 리앙이(좌)와 랭이(우)

- 반려동물을 사랑하게 된 계기나 과정을 이야기해 달라.


처음부터 동물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무서워했다는 표현이 더 적확하다. 어린 시절, 집주인이 키우던 개에 물렸다. 아마, 내가 개를 놀리다 도리어 당했던 것 같다. 집주인이 와서 떼어놓기 전까지 꽤 오래 물렸다. 이후, 동물을 무서워했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 집에서 놀러 갔는데, 그 집에서 개를 키웠다. 그 녀석이 옆에 다가오기만 해도, 내 입술은 파랗게 질렸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 건 군 생활을 하면서다. 주인 잃은 개가 우리 부대에 정착했다. 알고 보니 임신 중이었다. 두 마리를 낳았는데, 그중 한 녀석의 다리가 유달리 짧았다. 많은 사람이 귀여워했는데, 한 선임만 유독 그 녀석을 괴롭혔다. 집어던지고, 발로 차고, 몽둥이로 때리기도 했다. 그 선임이 오는 소리에 개가 오줌을 지릴 정도였다. 선임은 웃으면서 그 개를 괴롭혔다. 정말 미친놈처럼 보였다.


반년 정도 지난 어느 날, 그 개가 보이지 않았다. 눈이 많이 오던 기간이었다. 강원도 두메산골에 있는 넓은 포병부대에서 개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한동안 부대원들은 지역에 있는 개장수를 의심했다. 며칠 지나서 한 포상(대구경 포를 넣어두는 장소로 왕릉 같은 큰 무덤을 닮았다) 옆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 쌓인 눈 속에 파묻힌 걸 누군가 발견한 것이다. 다들 그 선임이 죽였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아무도 그에게 개를 죽였느냐 묻지 않았지만 말이다.


나는 그 녀석을 묻어주며 무척 울었다. 권력자에게 한 마디도 못 하는 비겁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 인지하며 괴로워했다. 아니, 그에게 한 마디도 못 할 정도로 비겁했던 자신을 혐오했다. 이토록 자신을 혐오한 날은 없었다. 그 이후로도 그를 대하는 내 태도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히 나보다 계급만 높은 게 아니었다. 부대원들이 건드리지 못할 직책을 맡고 있었다. 휴가나 외박, 진급 등을 관리하는 인사계였다. 자유를 빼앗긴 군인에게 가장 소중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유의 시간을 다루는 직책을 담당했다. 그보다 계급 높은 선임들도 건들지 못했다. 나도 괜한 사안으로 내가 피해 보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 그를 피하기만 했다.


물론 내 생각이 맞았다. 그 선임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비겁하게 웃는 모습으로 그를 대했다. 하지만 개를 무서워하던 모습은 사라졌다. 개만 아니라 길에서 유리하는 모든 동물을 불쌍하게 여기게 되었다. 내게는 무척 큰 사건이었고, 나를 돌아보는 중요한 경험이었다.


- 고양이와는 어떻게 친해졌는지 궁금하다.


전역 후, 바로 복학했다. 복학하면서 자취를 시작했는데, 자취방 근처에 길고양이가 많았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는 했는데, 고양이는 처음이라 그냥 지나치는 일이 많았다. 심지어 밤에 들리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아기 울음소리 같아 기분 나빠하기도 했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났을까. 우연히 길가에 놓인 죽은 고양이를 보았다. 그 모습에 군에서 떠나보낸 그 개 생각이 났다. 이후로 고양이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겨울에 물과 먹을 것이 없어 잘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길냥이를 위해 물과 사료를 주기 시작했다.

https://youtu.be/IaY-UwunCyI

이번 이야기는 영상으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길냥이를 돌보면서 키우면 어떨까 생각했을 법도 한데.


키울 상황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털 뭉치를 싫어해서 키우지 못했다. 자취방 동지들도 동물을 싫어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키운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 그럼 고양이와 어떻게 같이 살 게 되었나?


고양이 입양은 결혼하면서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결혼하고 바로, 아내에게 고양이와 함께 살아 보자고 권유했다. 아내는 동물이 익숙하지 않아 싫어했다. 동물과 지낸 경험이 없었고, 같이 지낸다는 걸 생각해 본 적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모르는 존재에 관한 막연한 두려움도 컸다고 한다.


그러다 아내 직장 동료가 자취방에서 나와 본가로 들어가면서, 고양이를 키울 수 없게 됐다. 다른 직장 동료들에게 고양이를 1년간 맡아줄 수 없는지 묻고 다녔다고 한다. 아내는 그 소식을 듣고 나를 떠올렸다. 내가 졸랐던 일이 아내 마음에 남았던 것이다. 내게 상황을 알리고 1년만 같이 지내보자고 먼저 권유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 첫 고양이가 우리 집에 왔다.


1년 정도 지나, 둘째 냥이도 함께 살게 됐다. 2014년 여름, 전 직장 동료가 내게 다급히 연락해 왔다. 새장에 갇힌 상태로 구조된 새끼 냥이를 임시 보호 중인데, 혹시 입양할 수 없는지 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고민을 많이 했다. 첫째 냥이와 지내는 일상이 이제 막 익숙해졌던 터였다. 아내가 싫어할 텐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다.


결국 아내에게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며, 둘째 고양이를 입양하자고 말했다. 아내는 한 냥이로도 버겁다며 난감해했다. 포기하지 않고, 카톡으로 직장 동료가 보내준 사진을 모두 전송했다. 귀엽고 예쁜 모습을 보여주며 “모셔오자” 이야기하니, 아내도 결국 “알겠다”고 했다. 답을 듣자마자 바로 분당으로 향했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둘째가 우리 집에 오게 됐다.


다행히 두 냥이는 함께 지내는 걸 좋아한다. 둘이 잘 놀고, 서로 그루밍도 잘한다.

- 냥이와 살면서 좋은 점은?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 그냥 바라만 봐도 스트레스가 풀리고 마음이 편해진다. 어떤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큰 행복감을 주지 않나. 그게 고양이와 함께 사는 최고 장점 아닌가 생각한다.(다른 반려동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내가 고양이에게 마음을 연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첫째 냥이가 우리와 함께 산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우리 부부는 첫 아이를 유산했다. 안정기에 들어서기 바로 직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내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했다. 내가 느끼는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었으니, 아내는 오죽했겠는가. 우리는 몇 날 며칠을 붙잡고 울었다.


그런데 첫째 냥이가, 아내가 울 때마다 옆에서 낑낑거리면서 안아주려 했다. 옆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물러주었다. 아내는 첫째가 같이해 주는 것 같아 큰 위로를 받았다. 첫째 냥이와 함께 누워 며칠을 보내며 마음을 추슬렀다. 이후, 아내는 고양이에게 마음을 많이 열었다. 아내는 지금도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한다.


힘들었던 것들이 고양이를 보고 함께하면서 많이 완화되고 많이 풀려. 우리 두 냥이를 보고만 있어도 몸에 좋은 호르몬이 분비되는 것 같아.
리앙이는 아내와 함께 지내는 걸 정말 좋아한다.

-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일상에 느끼는 어려움도 있을 텐데?


잠자는 게 힘들었던 기간이 있었다. 고양이들이 밤에 유달리 활달하게 움직이는 애들이 있는데, 우리 첫째가 그런 아이였다. 집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지, 소리로 소통을 많이 하려고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너무 울어서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출근해야 하는 아내는 이 상황을 힘들어했다. 옆집 사람들에게 피해 줄까 걱정도 많았다. 한동안 덜 울게 하려고 밤마다 잠 못 자고 놀아주며, 몇 개월 동안 잠을 설친 기억이 있다.


적응된 후부터는 털이 가장 큰 문제로 떠올랐다. 아내가 제일 힘들어했고, 지금도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온 집 안에 털 날리고, 침대나 옷에 막 묻는 상황이 버겁다. 첫째가 털이 엄청나게 빠지는데, 우리 집에 온 첫날부터 침대에서 같이 자려고 했다. 아내는 너무 놀라서 안 된다고 소리치고 난리가 났던 날이 생각한다.


우리 둘째 같은 경우는 길 들지 않는 아이다. 발톱 세우고, 하앍질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내 팔다리에 상처가 없는 날이 없었다. 이런 일상의 변화를 감내하는 데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들었다.


돈이 생각보다 많이 드는 것도 무시하지 못한다. 우리 부부는 2016년, 미국에서 1년 정도 살았다. 그 시기, 냥이들과 함께 나가려고 하니, 검사받고 서류받는데 생각보다 돈이 더 들었다. 중성화 수술도, 아이들 접종이나 아팠을 때 드는 진료비도 비싸다.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는 삶은, 많은 걸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도 분명 뒤따른다. 아이들과 지내면서 우리도 많이 배우고 변하는 것 같다.

랭이는 다양한 표정 짓기를 좋아한다?! 나는 그런 랭이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 고양이와 살면서 삶이 변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는지 궁금하다.


나와 다른 존재의 생명이 얼마나 고귀하고 가치 있는가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고민하게 됐다.  

한 번도 그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인간 이외의 생명도 정말 소중하구나’, ‘그 존재가 나에게 주는 영향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수 있겠구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 냥이들을 볼 때마다 ‘저 존재가 지워지거나, 사라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을 많이 한다. 예전에 안타까운 마음에 길고양이 돌볼 때와는 또 다른 마음이다. 동물을 무서워하고 옆에 두는 것도 싫어했던 아내도,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비건이 되었다. ‘함께 살아가는 고양이, 그들이 고통받는 게 싫다. 그러니 다른 생명체가 고통받는 것도 싫다’는 마음에서다. 공장식 축산의 가해자가 되는 것을 거부하다 보니, 비건으로 발전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와 함께하지 않는다면, 깨닫지 못했을 사실이다. 이런 변화를 생각해 본다면 다양한 생명과 함께 존재한다는 의미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존재 아닌가. 7년간 나의 두 고양이는, 생명을 존중하며 공존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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