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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히유영 Mar 17. 2020

뉴욕에서 즐긴 댄스파티를 떠올리며

제가 모두를 댄서로 만들어 드립니다 by 유자까

시기가 시기다 보니, 집안에 갇힌 느낌으로 지냅니다. 답답하기도 하고, 우울해질 때도 있지요. 스마트폰 사진첩이나 뒤지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반가운 사진을 찾았습니다. 뉴욕에서 지낼 때, 청명한 하늘 아래서 즐긴 댄스파티 사진을 발견한 것인데요. 답답한 마음도 달래고, 그날의 기억도 소환할겸 글을 남깁니다. 즐겁게 보시면 좋겠네요. 뉴욕도 코로나 바이러스를 잘 이겨나가기를 기원합니다.


청소를 마치고 쓰레기를 버리러 잠시 나갔습니다. 집에만 있을 때는 몰랐는데, 호흡하는 게 즐거울 정도로 날이 상쾌하네요.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그야말로 청명한 하늘. 반가운 마음에 아내를 불렀습니다. 이 날씨를 혼자 즐긴다면 범죄 아닌가요. 청소 중간 잠시 밖으로 나온 아내는, 두 손을 머리에 올리고 눈을 감으며 뉴욕에서 맞은 첫가을을 만끽했습니다.


마침 토요일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펜실베이니아 스테이션 행 Long Island Rail Road(LIRR)도 City Tour 요금을 받네요. 절반 가격이면 퀸즈에서 맨해튼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거기에 아내는 월정 기차표가 있어 공짜니 더 좋고요.

차량이 많았지만, 맨해튼 하늘은 늘 청명했습니다. 바닷가에 있는 섬이라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럴까요? 어쨌든 맑은 하늘을 볼 때마다 좋습니다.

청소도 힘들었던 차였습니다. 청소에 열심인 아내마저 흔들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습니다. 맨해튼 브라이언트 파크 근처에 있는 블루 보틀 커피를 마시며, 공원에 앉아 일광욕도 하고 책도 보자고 말이죠. 블루 보틀 커피와 공원에서 하는 독서, 생각만 해도 뉴요커스러운 일을 어떻게 거부할까요. 아내와 뉴욕에서 지낸 반년, 아직 이런 경험으로 맨해튼을 즐긴 적이 없었습니다.


기차로 30분을 달려 펜 스테이션에 도착했습니다. 스타벅스 텀블러를 입에 가져가 물을 홀짝홀짝 마시며 역을 빠져나와 목적지로 향합니다. 역을 나오면 7th ave. 우리 목적지는 그 유명한 타임스퀘어에서 한 블록만 가면 됩니다.


하지만 타임스퀘어로 가면 별로 볼 게 없어요. 그리고 브라이언트 파크는 뉴욕 공공도서관 바로 옆에 있습니다. 볼 것도 많고, 쇼핑하기도 좋은 5th ave로 가도 된다는 뜻이죠. 허세 부리기 좋은 길을 선택한다는 의미네요. 7th ave에서 6th ave로 가는 길에 있는 백화점도 볼만하니 어쩔 수 없습니다.


15분 정도 걸어 브라이언트 파크에 도착했습니다. 뉴욕의 오아시스라고 누가 표현한 걸 봤는데, 고층 빌딩 사이에 마련된 장소를 잘 설명한 좋은 표현입니다. 가운데 넓은 잔디밭에서는 일광욕하는 사람이 많아요. 공원 가장자리를 따라서는 사람들이 쉬면서 즐길 거리도 다양하고요. 골프 퍼팅 연습장, 회전목마, 분수대, 체스를 둘 의자와 탁자, 뉴욕의 대표 명소인 공공 도서관까지.(물론 이 공원도 명소 중 명소라고 한다.)

우리 부부가 자주 찾은 브라이언트 파크에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모였네요. 댄스축제 때문이었다. 무료로 밀짚모자를 나눠주고 있었습니다.(우)

우리 부부는 편히 앉아 책을 볼 수 있는 의자를 먼저 찾았습니다. 앉을 의자가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사람이 많네요. 시원한 날씨에 일광욕하러 나온 남녀노소로 잔디밭은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공원 분위기가 이전과 조금 다르네요. 공원 광장에 서부 영화에서 보던 짚더미가 쌓였습니다. 공원 입구에 마련된 부스에서는 무료로 밀짚모자를 나눠주고요. 부스 옆에서는 통기타, 바이올린, 콘서티나로 이뤄진 포크 밴드가 흥겹게 연주합니다. 뭔가 있나 보네요.


우선 겨우 찾은 자리에 앉았습니다. 두 시가 넘어 배가 고파서 그런지 날아오는 바비큐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자세히 보니, 옆자리 20대 남녀들은 생맥주까지 손에 들었습니다. 경찰도 단속하지 않네요. 이게 어쩐 일일까요? 알아보니, 오늘은 허가받은 야외 음식점에서 파는 술과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집에서 싸온 냉동만두와 같이 먹을 음식을 서둘러 사 왔습니다. 맥주와 함께. 정말 뭔가 얻어걸렸다는 표현이 딱 맞는 날이네요.

먹거리를 판매하는 야외 음식점. 이곳에서 파는 맥주만 마실 수 있었다.
제가 댄서로 만들어 드려요


3시가 되자 사회자가 나와 인사합니다. 아쉽게도 영어가 짧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몇 경찰이 주 무대로 사용할 풀밭에서 조금 물러나 달라고 부탁하는 것으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무대가 마련되자 한 남성이 나와서 마이크를 잡습니다.


"춤을 추고 싶은 사람은 다 앞으로 나오세요. 누구든 상관없습니다. 나온 분들은 짝을 지어서 서주세요. 제가 모든 분을 댄서로 만들어 드립니다."
짚더미로 꾸며진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포크 밴드. 이들의 음악은 절로 춤추게 하는 흥겨움이 가득했다.  밴드 왼쪽에서 연주자가 연주하는 악기는 콘서티나다.

떼 춤을 추겠다는 건가요? 한국인 특유의 시니컬함이 있는지 속으로 '대낮에 춤판을 벌이는데 누가 나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흥이 많기는 하지만, 늘 감추고 살았던 터인데도 말이죠. 내 흥을 아는 아내는 내게 나가보라고 권합니다. 나는 "저분들의 음악이 날 춤추게 하면 바로 나갈게"라고 넘겼습니다.


사람들이 쭉 원으로 둘러서자 댄스 강습소가 열렸습니다. 미국 포크 댄스를 배우는 자리였습니다. 설명은 간단했고, 춤도 쉽네요. 댄스 강습소는 몇 분 만에 문을 닫혔고, 바로 춤판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엄마와 함께 나온 어린 딸은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옆에 있는 할머니와 정답게 손을 잡습니다. 둘러보니 모두 손잡는 일이 어색하지 않네요. 그렇게 모두 손을 잡고 함께 빙 돌고, 박자에 맞춰 짝꿍과는 팔을 끼고돌았습니다.

남녀노소, 인종 구분하지 않고 모두 댄서가 되는 시간

자세히 보니, 어린아이와 할머니만 손잡고 웃는 게 아닙니다. 장애가 있는 딸과 함께 나온 아버지는 신나게 웃으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흑인과 백인도 손을 맞잡고 웃으며 춤을 춥니다. 사이사이 아시아인과 스패니쉬 등 각양 전통춤이 있는 나 라에서 온 이들도 함께 어울리고요. 모두 같은 밀짚모자를 쓰고, 처음 접하는 춤을 즐겁게 춥니다. 거기에 신나는 음악은 결국 저도 춤추게 하더군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몇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왜 함께 행사 처음부터 어우러져 춤추는 걸 꺼렸을까'하고 말이죠. 어린 시절 유치원에서 추던 포크 댄스는 정말 재미있게 추었던 사람인데. 어쩌면 너무 흥을 감추고, 내려놓고 산 건 아닐까요.


음악과 춤은 모르는 사람들과 어우러질 기회를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음악과 춤, 사람과 가까이해야겠다 마음 먹게 되네요. 그리고 모르는 이들과 손잡고 웃으며 춤출 수 있었던 평화가 잠시 그 자리에 있음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 정도 아닐까요. 모르는 사람, 다른 인종과 문화에 상관없이 어우러질 수 있는 평화가 우리 안에 있는 것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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