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 속초 여행기 by 믹서
속초로 여행을 다닌 건 4년 정도 됐다. 그 전까지 속초에 대해 아는 거라곤 ‘아바이마을 순대’뿐이었다. 촬영 차 한번 가봤는데 순대가 꽤 맛있었는지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 때문인지 여행으로서 처음 속초에 갔을 때도 아바이순대를 꼭 먹어야 한다고 남편에게 강력히 주장했다. 그때 우연히 방문한 아바이순대 식당은 우리의 단골이 됐다.
매년 두세 번은 꼭 속초에 갔다. 날씨 기막히게 좋던 4월 초, 일 하나를 마무리하고 1박 2일 여행지를 찾다 속초행을 택했다. 여주로 이사 오고 나서 속초까지 가는 길이 30분 늘어났다. 두 시간 반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다가 너무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검색을 하다가 그동안 가보지 않았던 낙산사에 가보기로 했다. 양양에 있는 낙산사는 속초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속초 가는 길에 들리면 되었다.
낙산 해수욕장은 그 이름이 매우 익숙한 걸로 보아 어렸을 때 부모님과 놀러갔던 것 같다. 근데 낙산사는 한번도 가볼 생각을 못했다. 이번에 처음 방문했는데 정말 너무 감탄했다. 한국에 이런 아름다운 곳이 있다니! 맑은 날씨도 한몫 했다. 꽃도 예쁘고, 따사로운 햇살과 푸르른 바다 모두 감동적이었다.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나이가 들면 핸드폰 사진첩이 꽃으로 가득하다더니 내가 점점 그렇게 되고 있다. 생전 벚꽃 놀이 제대로 못 가봤는데 이번에 벚꽃도 실컷 봤다.
낙산사는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절은 절이라, 시주하고 기도하러 온 사람들도 많았다. 노골적으로 기도와 금액을 명시한 문구들을 보니 어쩔 수 없이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기념품 가게에는 부와 재물 운을 가져다준다는 핸드폰 줄, 작은 악세서리들이 즐비했다.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종교의 한계를 이해하므로 그 씁쓸한 기분마저 미안해지기도 했다. 부자되게 해준다는 열쇠고리라도 하나 살 걸 하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낙산사에서 한 시간 이상을 걸었더니 열심히 운동한 기분이 들어 일단 숙소에 가서 쉬기로 했다. 숙소 예약은 늘 남편 몫인데 이번에는 숙소 정보 공유도 전혀 하지 않았다. 바다와 무지 가깝다는 것만 알고 묵묵히 남편의 드라이빙을 좇았다.
도착한 곳은 롯데 속초 리조트였다. 순간 양가 감정이 들었다. 너무 좋기도 하고, 너무 비싸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말이다. ‘하루쯤 편하게 잘 쉬면 좋지’ 쪽으로 마음을 정하고 나니 곧 편안해졌다.
게다가 호텔 로비에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문우당서림이 똭! 남편이 체크인 하는 동안 자석에 이끌리듯 문우당서림 책들에게 다가갔다. 팝업 스토어처럼 미니 서점을 연 것이 아닌가 했는데, 책 판매는 하지 않았다. 도서관처럼 전시되어 있는 책들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체크인, 체크아웃 시간 동안 그곳에서 책을 세, 네 권 스킵해서 읽었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롯데 호텔이 지역 서점인 문우당서림과 콜라보했다는 것 자체가 훌륭한 아이디어였다. 공간 디자인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정말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의자를 배치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비록 나처럼 책을 유심히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호텔에 방문한 사람들이 문우당서림을 궁금해 하고 한번쯤 방문하여 책을 볼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속초를 사랑하게 된 건 사실 문우당서림과 속초 동아서점 때문이다. 롯데 호텔에서의 시간이 행복했던 것도 반 이상은 문우당서림 때문이었다. (물론 아름다운 바다 뷰와 맛있는 조식과 힙한 펍도 매우 좋았지만 말이다.)
속초 여행 초반에는 이 두 서점에 가려고 속초까지 간 적도 있다. 큐레이션이 어찌나 훌륭한지 이 서점에 가기만 하면 지갑이 무지 털린다. 이번에도 7만원어치 책을 사서 칠성조선소를 찾았다.
책을 잔뜩 사들고 칠성조선소 카페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산 책을 쭉 펴놓고 한바탕 사진을 찍는 건 거의 루틴이 됐다. 여행 도중에 커피 전동 그라인더를 주문한 터라 커피에 대한 관심이 높이 올라와 있던 와중에, 하필 커피를 사랑하는 바리스타가 쓴 책을 골랐다.
오랜만에 간 칠성조선소는 비싼 로스팅 기계까지 들여놓고 원두까지 팔고 있었고, 드립커피를 메인에 두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메인 커피를 주문해 마셨는데 기대만큼의 맛은 아니었다. 남편과 “커피가 이러쿵저러쿵” 하면서 커피 전문가 놀이를 하며 책을 폈다 접었다 했다. 여행하면서 가장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속초에서의 시간은 사뿐사뿐 간다. 체력에 맞게 적절히 걷고 쉬고 달리고 하다 보면 어느새 집에 갈 시간이 된다. 이번 1박 2일 여행도 그랬다. 다른 때보다 굉장히 많은 걸었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피곤하지 않았다. 정말 잘 쉬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바닷가에서 차박캠핑을 했다면 또 다른 느낌이었을 거다. 속초에서 한번 밤바다를 보며 회를 먹고 차박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정말 좋았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말이다. 여행 방법에 따라 다양한 느낌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이번에는 여유롭게 다녀서 마음도 여유로웠는지 속초의 일상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유난히 아파트가 많이 보였다. 우리가 사랑하는 속초에 아예 살아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다. 벌써 또 가고 싶네. 속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