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언 사태가 드러낸 한국교회의 구조적 침묵

설교단과 회의실의 언어 낙차, 폭력에 짓눌린 부교역자들의 자리를 묻다

by 유유히유영
“저 시발년 도끼로 대가리 찍어 버릴까.”


조폭의 입에서 나온 욕설이 아니다. 부산 포도원교회 담임이자, 올해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총회장에 오를 예정인 목사 김문훈이 내뱉은 언어폭력이다. 교회에서 사역하던 여성 전도사가 이 언어폭력을 고스란히 들어야 했다. 구역장 선정 보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언이 마구 터져 나왔다.


뉴스앤조이가 입수한 교역자 회의 녹음 파일은 이보다 더한 폭력도 담겼다. 남녀를 가리지 않는 욕설, 살해 위협에 가까운 공포 조성, 인격을 짓밟는 언어가 1–2시간짜리 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쏟아졌다. 피해자들은 우울증을 앓았고, 사역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침묵해야 했다.


기사가 나오고, 이틀 만에 첫 번째 사과문이 등장했다. 25년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사과를 단 이틀 만에 해냈다. 피해 부교역자들은 한결같이 증언한다. 사과를 받은 적이 없으며, 그럴 사람도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이 지점에서 분명해진다. 사과문은 피해자가 아니라 들끓는 여론을 겨냥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두 번째 사과문에서 목사 김문훈은, 피해자들을 “정중히 초청해 공개적으로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언뜻 진정성 있어 보이지만, 이 표현은 가해자의 무감각을 드러낸다. 수십 년간 폭언에 시달리다 병까지 얻은 사람들을 다시 자기 앞으로 불러내겠다니, 여전히 관계의 주도권을 자신이 쥐고 있다고 전제한다.


부총회장직을 두고는 “총회 결정에 일임하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 스스로 직을 내려놓지 않고 판단을 남에게 넘긴다. 한국 교회에서 반복적으로 목격해 온 모습이다. 이 기술은 책임을 정교하게 회피한다. 총회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복귀의 근거로 삼고, 조치가 이루어지더라도 자진 사퇴의 도덕적 비용은 치르지 않는다.


'성장 지상주의'가 묵인한 구조적 폭력


이 사태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한 전직 부교역자의 증언에서 나온다. 목사 김문훈은 “형제에게 욕하지 말라”는 주제로 설교한 바로 그날, 교역자 회의에서 도끼로 대가리를 찍어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이 말은 단순한 위선의 범주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설교가 삶의 고백이 아니라 직업적 퍼포스로 전락했음을 똑똑히 보여 준다. 말과 존재가 완전히 분리된 목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5000명의 교인이 매주일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은혜로운 언어를 들었으리라. 하지만 같은 입에서 부교역자들을 향해 쏟아진 언어는 그 은혜를 정면으로 배반했다. 설교단과 회의실 사이는 십몇 미터였겠지만, 그 안에 담긴 언어의 낙차는 측량할 수 없다.


목사 김문훈의 폭언은 밀실에서 이루어졌지만, 비밀은 아니었다. 전·현직 부교역자 다수가 같은 경험을 증언한다. 사역을 그만둔 뒤에도 후유증에 시달렸다. 교단 관계자들이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교세 5000명, 대형 교회 담임목사’라는 타이틀이 어떤 의문도 차단하는 방패로 작동했다.


방패를 쥐여 준 손은 한국교회의 ‘성장 지상주의’다. 교단 내에서 교세 규모는 곧 발언권이고, 대형 교회 담임목사의 지지는 총회 선거의 판도를 바꾼다. 교회가 커지고 헌금이 늘어나면, 목회자의 제왕적 권력과 폭력적 조직 문화쯤은 쉽게 눈감아 준다.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구조 속에서 부교역자들은 철저히 종속된다. 고용과 해고는 담임목사의 재량이다. 인사 평가는 물론 다음 사역지 추천까지 그의 손에 달렸으니, 아무리 심한 폭언을 당해도 입을 열지 못한다. 많이 보았던 악덕 고용주의 같은 모습을, 담임목사라는 직함 뒤에 숨겼을 따름이다.

스크린샷 2026-02-25 오후 2.27.19.png 목사 김문훈을 소개한 포도원교회 홈페이지. 소개와는 정반대 되는 말을 부교역자에게 내뱉었다. 마치 사업체 악덕 고용주 같았다. 포도원교회 홈페이지 갈무리.

교회 밖에서는 교단 내 영향력과 방송 출연, 부흥회 강사라는 명성이 보호막으로 기능한다. 문제를 제기하는 쪽이 오히려 “교회를 흔드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니, 그의 평소 언행이 수면 위로 올라올 리 없다. 정말 한심하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교단 부총회장에까지 올라갔는가. 이제 우리가 교단에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 아닐까?


“기도로 지켜봐 달라.”


목사 김문훈이 쓴 첫 번째 사과문의 마지막 문장이다. 한국 교회가 위기에 대응할 때 가장 자주 동원하는 종결어이기도 하다. 문제를 영적 영역으로 이관하면서 구체적 책임과 제도적 논의를 원천 차단한다. 우리는 이 관용구를 너무 많이 들어왔다. 기도는 응답을 구하지만, 제도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예장고신 총회는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섰다. “기도로 지켜보며”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릴지, 아니면 목회자의 권력 남용을 막을 제도적 장치를 당장 마련할지 결정해야 한다. 부교역자들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신고 체계와 독립적 조사 기구, 피해자 지원 시스템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권력이 집중된 교단 총회가 스스로 메스를 들이댈 수 있을지 냉정하게 의심이 든다. 그간 목사 사회에서 보여준 행실이 그 정도밖에 안 되니, 어쩔 수 없다. 내부의 자정 능력이 한계에 달했다면, 기독교 인권 단체와 언론, 깨어 있는 평신도가 교회 밖에서 연대해야 한다. 외부에 손을 내밀어야 하냐고 예장고신 목사들은 생각할 수 있다. 지금 목회자를 보는 눈이 딱 그 정도다.


녹음 파일 속 목사 김문훈의 목소리는 마이크 없이도 충분히 크고 거칠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은 소리가 있다. 그 폭언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부교역자들의 침묵이다. 그 침묵은 개인이 나약해서가 아니다. 구조가 강제한 폭력이다. 구조가 강제한 침묵은 구조를 뜯어고쳐야만 비로소 깨진다. 설교단 위의 언어와 회의실의 언어가 이토록 달랐다는 사실은, 한국 교회가 지금껏 무엇을 외면해 왔는지 드러낸다.

작가의 이전글우리는 교회에서 어떤 ‘안녕’을 묻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