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나를 좌파라고 불렀다

프롤로그. 생활 좌파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알리바이

by 유유히유영

교회 청년부 동기 다섯 명과 친하게 지낸다. 거의 매일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수다를 떤다. 지난 연애사는 빠지지 않는 주제다. 서로의 연애사를 잘 알고 있으니 말 다했다. 이 얘기는 하고 또 해도 재미있다. 유익한 유튜브 영상이나 90년대 음악 등을 공유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일찍 결혼한 친구의 큰아들이 연세대에 합격했다는 이야기로 한바탕 떠들었다.


물론, 대화 중 빠지지 않는 내용이 있다. 부동산과 재테크 이야기다. 만 48세(한국 나이로 50세) 한국 남성들이 부동산과 재테크 이야기를 안 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닌가. 그러다 한 친구가 내게 질문했다.


“이제 너만 집사게 하면 되는데, 하나 사.”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다. 못 사기도 하고, 안 사기도 한다. 주거를 자산으로 바꾸는 게임에 참여할 마음이 없다. 통장 잔고도 내 뜻을 거든다. 이 마음을 돌려 말했더니 친구가 웃으며 받았다.


"너 진짜 좌파냐? 아직 환상 속에 살아?”


이 말을 한 친구는 20대 시절 통합진보당 당원이었다. 공무원을 하며 많이 바뀌었지만, 원조 좌파가 나를 좌파라고 하다니 충격이 컸다.

Gemini_Generated_Image_9v5ma29v5ma29v5m.png 재테크와 좌파, 그리고 종교가 혼합한 혼란한 세계에서 산다. 그림 나노바바바

스스로 좌파라 생각하며 살지 않았다. 좌파라면 뭔가 더 체계적인 세계관을 갖추고, 실천해야 한다. 집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거나, 단체에 후원금을 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저 상식을 지닌 그리스도인이다.


이를테면 이렇다. 성소수자는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장애인 이동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인간다운 존엄이 보장되어야 한다. 부동산이 투기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결혼 후 아이를 낳지 않아도 괜찮다. 이런 생각들을 상식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친구들 사이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나뿐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런 생각을 '진지하게' 하는 사람이 지금은 없다. 다들 어느 정도 동의하면서도 "현실은 현실이지”라며 넘어간다. 나는 그 문장 앞에서 멈춘다. 그 고민이 나를 좌파로 만들었는지, 아니면 사회가 너무 오른쪽으로 기울었는지 잘 모르겠다..


매일 그 감각을 안고 산다


10년 전, 목수정 작가의 <파리의 생활 좌파들>을 읽었다. 프랑스에서는 유기농 먹거리를 고르고, 페미니즘을 지지하며, 이민자 인권에 연대하는 일이 문화적 토양 위에 뿌리내렸다. 그곳에서 '생활 좌파'는 하나의 삶으로 인정받는다. 혁명 구호 없이도, 일상의 선택이 정치적 방향을 지닌다.


한국에서 '생활 좌파'라는 말은 다른 무게를 진다. 절반은 자조다. "혁명가는 아닌 가끔 올바른 척하는 사람입니다"라는 고백에 갇혔다. 나머지 절반은 비난이다. "진보인데 강남 아파트에 살면서 입 닫는 사람”이라고 조롱을 받는다. ‘강남 좌파’라 불리는 86세대를 가리키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이 단어 밑바탕에는 결핍의 감각이 깔려 있다.


교회라고 생활 좌파의 자리가 존재하진 않을까. 내가 몸 담은, 교회 개혁을 말하는 기독교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성소수자 축복 예배를 보도한다. 교회 권력의 부패를 추적하고, 농촌 교회의 소멸을 기록한다. 이 일을 하면서 나는 한국교회 안에서 불편한 자리를 찾아다닌다. 하지만, 40대 기자들은 내 친구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부동산과 재테크에 관심을 보이며 산다. 최소한의 자본주의를 선택한 사람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런 내게 교회 밖 사람들은 묻는다. "지금도 교회를 다녀요?" 교회 안 사람들은 다르게 묻는다. "왜 교회를 공격해요?" 양쪽 다 진심이지만, 양쪽 다 틀렸다. 나는 교회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교회가 교회다워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교회를 떠나지 않았다. 이 말을 다르게 적을 수 있다. 떠나기엔 오래 있었고, 남기엔 너무 많이 봤다. 이쪽이 더 정직한 대답이다.


예수는 가난한 자의 편에 섰다. 눌린 자, 병든 자, 이방인의 곁에 앉았다.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했고, 세리와 밥을 먹었다. 예수가 한 일을 오늘 한국어로 번역하면, '좌파'라고 불리지 않을까. 그런데 한국교회의 주류는 그런 예수를 성공과 축복의 언어로 포장했다. ‘번영 신학’의 예수는 가난한 자의 편이 아니라, 부자가 되고 싶은 희망으로 변했다.


이 간극 안에서 '생활 좌파 그리스도인'은 존재한다. 교리가 아니라 삶의 태도로, 신학 체계가 아니라 선택으로, 자기가 믿는 바와 자기가 사는 방식 사이의 거리를 줄여보려는 사람들, 그 어딘가에 그들은 서 있다. 그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잘 안다.


한국이 망하진 않겠지?


나는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다. 정기후원하는 시민단체가 있지만, 금액은 신념의 크기에 비하면 적다. 집회에 나가는 일도 1년에 한두 번이다.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한다 말하면서, 주변에 커밍아웃한 친구는 없다. 부동산을 자산으로 만들면 안 된다 말하면서, 전월세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불안해한다.


이 간극을 들여다보면, 나는 진성 좌파라기보다 '관념 좌파'에 가깝다. 생각은 왼쪽인데 발은 묶여 있다. 마음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실천이라 우기기엔 양심이 찔린다. 그래도 불편함을 입 밖으로 꺼내는 일에 의미를 둔다.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보다는, 불편해하며 고백하는 쪽이 낫지 않은가. 이 마음이 모여 무엇이 될지 모르지만, 무언가 이룰 날이 오리라 믿는다.


앞으로 사람들을 만나려 한다. 교회에 다니며 '좌파'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름표를 단 적은 없어도,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다 보니 한국 사회에서 왼쪽에 선 사람들이다.

Gemini_Generated_Image_c4nq1tc4nq1tc4nq.png 12명을 만나면, 내 안에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정체성이 바로 서지 않을까? 그림 나노바나나

2000년 전, 예수가 모은 열두 제자는 세상을 뒤집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로마 제국은 그들 사후 변했다. 유럽 사회는 기독교의 틀로 재편되었다. 그래서 나도 예수의 제자로 사는 사람 12명을 만나려 한다. 아마, 대한민국에 사는 이 12명이 사회를 뒤엎지는 못할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불편해하며 살아갈 뿐이겠지.


그 불편함의 지도를 그리려 한다. 강남에서 교회 다니는 페미니스트, 시골 교회에서 이주민과 예배드리는 목사, 성소수자로 커밍아웃하고 신앙을 지키는 청년, 교회를 떠났지만 신앙을 떠나지 않은 사회운동가를 만나 보려 한다. 이들이 어떤 선택 앞에서 멈추는지, 무엇을 포기하고 붙잡는지, 모순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는지 묻고 싶다. 그래서 제목을 ‘열두 제자의 알리바이’로 정했다. 알리바이라 이름 붙였지만, 질문에 가깝다. 이 시대, 이 나라, 이 교회 안에서, 신념과 삶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12명은 아직 찾지 못했다. 하지만 고민을 나눌 12명이 이 땅에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들에게 답을 들으면, 세상에 혼자 던져진 느낌은 덜어질 듯하다. 의인 12명도 못 찾을까. 설마, 아브라함이 찾던 의인 10명조차 되지 않으려나. 그럼 나라가 망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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