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교회에서 어떤 ‘안녕’을 묻는가?

어느 겨울 날 뉴스를 보며 느낀 점

by 유유히유영

봄이 서둘러 오는 시기다. 그런 날을 질투하듯 늦겨울 매서운 바람이 창문을 때렸다. 따뜻한 차 한 잔을 쥐고 모니터 앞에 앉아 두 편의 기사를 연달아 읽었다. 창밖의 추위보다 더 시린 한기가 가슴 한구석을 파고들었다. '지금 한국교회 안에서 숨 쉬는 이들의 영혼은 과연 안녕할까.' 무거운 질문이 덜컥 들어왔기 때문이다.

KakaoTalk_Photo_2026-02-23-15-26-09.png 포도원교회 김문훈 목사 기사. 뉴스앤조이 기사 갈무리.

수천 명이 모인다는 부산 포도원교회 회의실에서 담임목사 김문훈 씨가 부교역자들을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저 시XX 도끼로 대가리 찍어 버릴까"라는 폭언은, 단순히 활자로 읽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는 폭력이었다. 교인을 헌금 액수와 사회적 지위에 따라 'VIP'로 등급 매기고, 교역자들을 실적을 내기 위한 소모품으로 닦달하는 풍경도 다르지 않다. 그것은 단지 한 개인의 빗나간 인성이 아니라, 성과주의와 수직적 위계라는 병든 토양에서 자라난 한국교회의 서글픈 민낯이다.


오랜 시간 교계 안팎을 오가며 참 많은 붕괴를 보아왔다. 맹렬하게 조직의 크기를 불리는 데 혈안이 되어, 정작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현실 말이다. 지시와 복종만이 남은 제왕적 구조 속에서 어떤 이들은 우울증과 공황의 늪에 빠졌고, 어떤 이들은 도망치듯 사역을 내려놓아야 했다. 교인 숫자는 성장했을지 몰라도, 그 화려함의 이면에는 철저히 착취당하고 소진된 교역자들의 부서진 삶이 나뒹굴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서글픈 일이다. 가장 안전하고 평안해야 할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우리는 새삼스레 서로의 '안녕'을 물어야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세상의 속도와 실적주의에 밀려 교회마저 누군가를 갈아 넣어야만 유지되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되어버렸음을 느끼면서 말이다.


절망의 끄트머리에 희망은 언제나 다른 얼굴로 찾아온다. 참담한 소식 바로 다음에, 전혀 다른 풍경 하나가 나란히 놓였다. 서울 방배동의 낡은 상가 2층, 아치형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겨울 햇빛이 스며드는 모습을 한 '안녕교회' 이야기에서는 따뜻함을 느꼈다.

KakaoTalk_Photo_2026-02-23-15-26-16.jpeg 안녕교회 이미지. 안타깝게도 김문훈 목사 바로 다음 기사로 자리 잡았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우리의 몸을 존중하며…" 몸을 움직이고, 감각하며 예배하는 교인들이 인상적이었다. 성인지감수성 교육을 함께 듣고 서로의 삶을 돌보는 일상에서 이들은 "우리는 어떻게 더 커질 것인가"를 묻지 않고, "우리는 어떻게 서로의 샬롬(평안)을 지킬 것인가"를 묻고 있다고 느꼈다. 거대한 사역에 사람을 갈아 넣는 대신, 기쁨과 쉼을 누리며 주체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문화를 묵묵히 일구어 가는 단단한 발걸음으로 걷는 감각이었다.


이 작은 교회의 이름이 역설적으로 우리의 안녕을 묻고 있는 셈이다.


이제 우리는 비판과 분노에만 머무를 수 없다. 저 거대한 성전의 폭력성에 돌을 던지는 것을 넘어, 어떻게 하면 저 작고 단단한 공동체와 같은 생명력 있는 문화를 우리 일상에 이식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교회는 숫자를 목표로 질주하는 기업이 아니라, 상처받고 실패한 이들이 언제든 기대어 쉴 수 있는 든든한 '안전망'이 되어야 한다. 목회자 또한 그 위에서 군림하는 제왕이 아니라, 찢어진 안전망을 교인들과 함께 직조해 나가는 동역자여야 한다.


"시XX"라는 살벌한 욕설이 지배하는 강압적인 공간과, "안녕들 하십니까"라며 서로의 곁을 내어주는 따뜻한 공간 중에서 우리는 어느 곳에 있기를 바라는가. 그리고 현재 우리 교회는 어느 편에 서 있는가. 아무리 좋은 교회라고 여겨도 한 번 돌아봐야 할 일이다. 실제로 교역자에게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교회는 많다.


아무리 외형이 화려하고 거대해도, 그 안에서 누군가의 영혼이 굶주리고 착취당한다면 그곳은 싸늘하게 비워진 텅 빈 쌀독과 다름없다. 반대로 작고 소박할지라도 서로의 고단함을 덜어주고 삶을 지지해 준다면, 그곳이야말로 생명의 온기가 피어오르는 풍성한 밥상일 것이다. 상처 입은 한국교회가 누군가를 갉아먹는 거대한 기계가 아니라, 서로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기꺼이 내어주는 회복과 성장의 공동체로 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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