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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책을 쓰는 아내

언제 출판할 지 알 수 없지만

by 유유히유영


힘들게 하루를 마치고 퇴근했다. 웬일로 나보다 먼저 퇴근한 아내가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아내는 주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관찰하는 게 일인 아내가 이번엔 어떤 이야기에 집중하는지 궁금해서 다가갔다. 아내는 한 친구가 올린 ‘아들이 받아쓰기 100점 맞았어’라는 카톡과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답해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아내의 얼굴을 살폈다. 무언가 기쁘면서도 생각이 많은 표정이었다. 혼란했다. 먼저, 칭찬이 나오려고 했다. 친한 친구의 아이이니 당연하다고 해야 하나? 받아쓰기 100점에 기뻤던 어린 시절이 기억난다고도 했다. 그리고 한 발짝 떨어져 관찰하는 프로듀서의 시선도 있었다. 자신과는 달리 ‘엄마’가 된 친구들의 빼곡한 대화 속에서 혼자 선 느낌도 들었던 것이다.


그럼 내가 나서야 한다. 어깨를 토닥이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다른 사람들 이야기 그만 보고, 우리 원고 다음 장이나 써볼까?”


그러자 아내가 깔깔거렸다. 다행스럽게도 농담 한마디에 아내 표정이 살아났다. 사실, 내가 저런 농담을 할 수 있었던 건, 아내가 글을 굉장히 열심히 쓰는 작가였기 때문이다. 더불어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철학자이자 자신만의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아내는 관찰한 이야기를 열심히 만들어가는 사람이었다. 결혼 전부터, 단편 다큐멘터리들을 몇 편인가 제작했다. 물론, 책을 낼 생각으로 에세이도 습작하곤 했다. 작품들을 보고는, 다음 이야기를 가장 먼저 보고 싶어졌다. 다행히도 아내는 나에게 작가로 살아가는 건 어떤지 물어봐 주었다. 나도 아내처럼 기록자로 살 수 있나 싶었지만, 결국 구성 작가로 살고 있다.


우리가 결혼하고 나서, 아내 주변에서도 결혼하는 일이 늘었다. 그러면서 하나둘 ‘출산’이라는 베스트셀러 시리즈를 출간했다. 그 모습을 보니, 아내도 고민하게 되었다. 출산만큼 확실한 흥행 공식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때 아내에게 말했다.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고 싶어 하지 않았어? 당신 인생이라는 가장 중요한 작품을, 남들도 쓰는 기획안에 맞출 필요는 없어.”


우리 삶에 ‘편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확인하자는 제안이었다. 생각해 보면 편집권이라는 개념도 우리 선배들이 피 흘려 얻어냈다. 이름 모를 사람들이 지켜낸 편집권을,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내줄 수는 없지 않겠나. 물론 그렇게 생각했어도, 지켜내는 과정이 순탄할 리 없다.


우선, 원가족들은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고 물어왔다. 친척에게서도 같은 질문을 들었다. 그 말을 들을 때면 우리가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마치 보고서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반려하는 직장 상사의 잔소리처럼 느껴졌다.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우리 부부의 이야기는 쓰레기처럼 여겨졌다. (다행히도 14년을 살다 보니, 이제서야 이해받는 느낌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우리 이야기는 장르가 다른 작품’일 뿐이라고 말해 왔다. 시청률이 높은 아침 드라마나 일일 드라마가 아니라고 말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탐구하며 써 내려간 예측하기 어려운 에세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예를 들어, 매년 떠나는 여행은 다음 장을 쓰기 위한 심층 ‘취재’ 아니면, 무언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나오는 이야깃주머니다. 주말에 함께 걷는 산책길은 작품을 구성하는 회의 시간이나 다름없다. 아내가, 삶이라는 저작물을 얼마나 사랑하고 정성껏 만들어 왔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우리는 아이를 기르는 대신, 각자 자기의 삶을 계속 성장시켰다. 우리 관계를 단단한 서사로 길러냈다. 이것이야말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지식재산권’이다. 이 지식재산권은 누가 파괴하려 해도, 없어지지 않을 우리 이야기다. 만약 세상 모든 도서관이 베스트셀러로만 채워져 있으면 얼마나 단조로울까. 도서관에는 소설도 필요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시인의 시집도, 난해한 철학책도 함께 있을 때 비로소 풍요로워진다.


우리는 다녀온 여행지들을 표시해 둔다. 언젠가 우리가 쓸 책의 서문 역할을 할 녀석이다. 이 책의 저작권은 ‘우리’에게 있다. 그 책이 많이 팔리든, 팔리지 않든 상관없다. 하지만, 아내는 이렇게 반론을 내곤 한다.


“내가 이번에 만든 다큐멘터리 시청률은 높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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