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교회 박영선 목사의 설교를 처음 들었을 때가 기억난다. 1999년, 내가 대학 3학년 시절이었다. 그의 설교집 <하나님의 열심>을 보고, 내용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흔히 말하는, 은혜받았다고 해야 하나? 정말 훌륭한 설교를 전하는 목사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27년이 지난 오늘, 그의 소식에 뒷목을 부여잡았다.
그의 이름이 언급된 뉴스를 보고 숫자를 되짚어 봐야 했다. 원로목사 사례비가 현직 담임목사보다 800만 원 많았다. 담임목사 연봉이 1억 3700만 원이었는데, 원로목사가 1억 4500만 원을 받았다. 은퇴한 사람이 일하는 사람보다 더 받는 직장을 떠올려 봤는데,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국회의원도 퇴직하면 받는 돈이 는다고 생각해 보라. 하지만, 목사는 은퇴하면 늘어나는 구조가 이상하지 않은가?.
교인들 생각이 없지는 않은가 보다. 올해 초 공동의회에서 이 예산안을 부결시켰다. 그러자 교회가 수정안을 냈다. 사례비를 6600만 원으로 줄이는 대신, 10년 치를 한꺼번에 선지급하겠다고 했다. 합계가 10억 원에 달했다. 10억 원의 산출 근거를 들으면 더 어이가 없다. 사례비 6600만 원에 10년을 곱하면 6억 6000만 원인데, 나머지 3억 4000만 원은 ‘사모의 생존 예상 기간’을 더한 금액이라고 했다. 교인들 사이에서는 다른 해석이 돌았다.
매달 주면 부담스러운 돈이 한꺼번에 나가면 왜 덜 부담스러워 보이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카드값도 일시불이 더 아프지 않나. 이걸 당회가 결정할 문제인가도 의심하는데, 공동의회에서도 통과했다니 정말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몇 교인은 3억 4000만 원이 아들 박병석 목사 몫이라고 주장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교인들이 이해가 안 가나 보다. 뭐, 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떠난다는 사모에게 왜 돈을 지급하는가. 아무리 돈이 많다 하더라도, 어느 회사가 회장이 떠난다고 아내 몫까지 생각해서 퇴직금을 지급하나. 부자가 함께 떠나니 퇴직금도 함께 묶어 지급하나. 사실 아들은 이번 기회에 교회를 떠나는 부교역자였다. 그래도 아들은 성범죄 소문이 돌아 떠나는 문제인데, 어느 회사에서도 안 할 행동이다. 가족 할인이 아니라 가족 할증을 적용했다.
애초에 박 목사는 400억 원을 불렀다. 아들과 개척교회를 세우겠다면서 그만큼을 요구했다. 400억을 부르고 10억에 합의하면, 교인은 390억을 아꼈다고 느낀다. 목사는 10억 원이라도 받아 낸다. 아무도 "왜 이 사람에게 이런 돈을 주는가"를 묻지 않는다. 물론, 400억 원에서 40억 원으로 줄었다가 다시 10억 원으로 내려온 금액이긴 하다. 그래도 390억 원은 엄청난 격차가 있다. 이 글을 쓰는 나조차 390억 원이면 엄청 아꼈네라는 생각을 한다.
명목도 바뀌었다. 원래 사례비였는데, 한 교인이 은급비로 이름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당회도 이를 수용했다. 이름을 바꾸면 본질도 바뀐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 남포교회가 그런지 몰랐다. 그 논리대로라면 뇌물도 감사헌금이라 부르면 무죄가 되는가. 정말 욕만 나온다.
지금까지 받는 돈만 이야기했는데, 이미 교회에서 받은 자산도 있었다. 박 목사가 거주 중인 아파트는 교회 사택이 아니라 개인 명의로 등기돼 있다. 재건축을 앞둔 이 아파트는 시세가 40억 원에 달한다. 공동의회에서 이 문제가 거론되자 당회는 "빠른 시일 내에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이 말을 번역하면 "안 하겠다"로 읽어도 무방하다.
돈 이야기에 정신이 없다. 그래서 정산을 해 봤다. 현금 10억 원에 40억 원 상당의 아파트, 거기에 세금 문제까지 남아 있다. 목회자에게 지급하는 이런 성격의 돈은 기타 소득이나 증여세 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 세금만 수억 원에 이른다고 예상한다. 교회가 납부하면 대납한 금액에도 증여세가 붙는다.
정말 하나님이 열심을 낸다. <하나님의 열심>에서 그는 ‘믿음의 거장들조차 끊임없이 실패하고 넘어지는 연약한 존재’라고 이야기했다. 오직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집요한 은혜만이 그들을 빚어 가신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 신학적 진리가 현실의 교회 정치와 만나면, 지도자의 윤리적 실패나 불투명한 재정 처리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 ”인간은 본래 다 연약하고 죄인이다"라는 명목으로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럼 박영선 목사는 사과를 했을까. 박 목사는 영상에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없는 이야기를 하는데 어떻게 증명하느냐, 더 이상 교회를 핑계 대며 싸움이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해 떠나겠다. 기도해 달라.”
사과는 했지만, 문장의 주어는 끝까지 타인을 가리켰다. 잘못은 "없는 이야기를 만든 누군가"에게 있고, 싸움은 "교회를 핑계 대는 누군가" 때문에 벌어졌다. 본인은 그 난장판을 수습하려고 나선 조정자가 됐다. 가해자가 가장 고결한 자리를 차지하도록 문장을 설계했다. 위치 선정이 거의 예술에 가깝다.
교인 한 분이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옛날에 돈 문제가 한번 드러났을 때 말고는 목사님이 사과하신 것을 본 적이 없다.”
수십 년 목회하면서 사과가 딱 한 번 있었다. 그 한 번도 돈 문제가 "드러났을 때" 나왔다. 양심이 아니라 발각이 사과를 끌어냈다. 이 문제를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정말 하나님이 열심을 내는 걸까? 70세가 넘은 목회자도 10억 원을 받으라고 열심을 내실까. 그도 사과했으니, 이것도 하나님의 열심으로 해석하면 되겠는가?
같은 주에 부산 포도원교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터졌다. 부교역자들에게 상습 폭언을 퍼부어 사임한 김문훈 목사를, 교회가 원로목사로 추대하기로 했다. 27년 사역 성과를 감안했다고 밝혔다. 추대 다음 날에는 피해자인 전 교역자들을 호텔로 불러 '사과와 회복의 시간'을 갖겠다고 공지했다. 위로금을 준비했으니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고도 했다. 전 교역자들은 참석을 거부했다. 퍼포먼스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이 소식을 접하니, 허탈한 웃음만 나온다. 어제는 가해자를 높은 자리에 모시고, 오늘은 피해자에게 돈을 건네며 용서를 구한다. 순서도 기가 막히게 정직하다. 정말 부끄러움도 없다. 누구를 위한 화해인지 숨기지도 않는다. 정말 웃긴 일이다. 이 두 뉴스가 같은 날 나온 일인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이들 양심을 누가 인두로 지졌는가. 눈물이 돌 정도로 웃음만 나온다.
두 교회에서 같은 주에 벌어진 일을 나란히 놓으면, 교회가 잘못한 일을 감추는 문법이 드러난다. 잘못한 목사가 떠난다. 교회는 돈을 준다. 돈에 좋은 이름을 붙인다. 빨리 잊자고 한다. 잊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시끄럽게 굴지 말라고 한다. 모든 절차가 끝나면 강단에 서서 선포한다. “이제, 치유와 회복의 시간입니다.” 이 상태를 ‘폭력적 화해’라고 불러야 하나?(회복적 정의를 반대로 놓고 생각해 낸 말이 ‘폭력적 화해’라니.)
남포교회의 한 권사는 공동의회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왜 내가 모르는 우리 교회 이야기를 친구들을 통해 들어야 하느냐고.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좀 해 줬으면 좋겠다고. 이 말이 뇌리에 오래도록 남는다. 진실이 소음 취급당하는 교회에서는, 뻔뻔한 목사가 불의한 일을 벌여도 된다. 이걸 막거나 치리할 매뉴얼 따위는 없다. 무엇이 잘못인지 아예 구분을 못하는데, 어쩌겠나? 한국교회 전체가 이런 처지일 것 같아 두렵다.
진짜 두려운 이야기는, 한국교회가 망해 가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의인 10명을 찾다가 못 찾아서 망한 소돔과 고모라가 떠오른다. 한국교회는 툭하면 ‘동성애 때문에 망한다’고 울부짖지만, 성경이 말하는 그 도시의 진짜 멸망 이유는 따로 있다. 에스겔서에 따르면 그들의 죄는 '교만하고 배부르면서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돕지 않은 것'이었다. 창세기에 나오는 성폭행 사건도 본질은 같다. 보호막 없는 낯선 약자를 가장 굴욕적인 방식으로 유린하려 했던 거다. 타인을 너무 쉽게 착취하는 일, 그것이 소돔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분위기'이자 일상이었다.
지금 두 교회가 보여주는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수십억 원을 챙기는 원로목사와, 부교역자들에게 상습 폭언을 퍼붓고 위로금으로 입을 막으려는 목사. 이들에게 타인의 헌신을 착취하는 일은 소돔의 일상만큼이나 쉽고 달콤해 보인다. 진실을 묻는 목소리는 "시끄러우니 조용히 좀 해 달라"며 소음 취급을 받는다. 1000만 신자를 강조하는 개신교에, 이 뻔뻔한 착취의 구조를 치리할 의인 10명이 남아 있을 느낌이 들지 않는다.
소돔과 고모라도 좋을 때는 몰랐다. 자신들이 남을 착취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고, 쉬웠으니까. 그렇게 착취하다 망했다. 모든 불의를 돈과 이름표로 덮어버린 채, 가해자가 강단에 서서 "이제, 치유와 회복의 시간입니다"라고 선포하는 꼴을 보면 확신이 든다. 한국교회는 동성애 때문이 아니라, 이 지긋지긋한 '폭력적 화해'를 멈춰 세울 의인 10명이 없어서 딱 그렇게 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