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자고 타로를 배웠는가? by 멸종각
" 저 타로카드 다룹니다... "
사실 별 거 아닌 것 같겠지만, 이 말은 보통 사람이 좀 모였다 싶은 자리에서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보입니다.
- 어서어서 꺼내놓아라, 아니면 너의 목을... 흠흠
- 나는 그런 것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꺼내놓아라... 흠흠
- 뭐래 뭐래? 이거 왜 거꾸로 놔? 그래서 내년엔 뭐라고?
네, 사실 별 거 아닌 것 같겠지만, 타로카드는 명성과 역사와 상관없이 상당한 모임 권력입니다.
처음 타로카드를 접하게 된 계기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뚜렷했습니다.
남성 상담사로서 치명적인 단점 중에 하나는 바로 내담자가 여성인 사람들의 상담이 애초에 불가능한 지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몇 가지 이슈는, 아예 앞에 남자가 앉아있다는 것만으로 아웃인 경우가 상당합니다.
바로 그 단점을 극복하고자 고안된 여러 가지 대안들 중에 (특히 기관이 아닌 곳에서) 가장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상담 방식이 타로 상담이었죠. 이는 여성주의 상담에서 자주 차용되는 방식이기도 했고 큰 부담이 가지 않는 수업일정이었습니다. 이를 알게 되자마자, 곧바로 초급과정을 1년 반가량 배우고 중급과정까지 입문을 하게 된 것이 제가 타로와 인연을 맺은 계기였습니다.
- 이거 아무나 배울 수 있어요???
물론 아무나 배울 수는 있지만 무료는 아닌 데다 강사 자격을 얻는 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립니다. 따라서 취미로 알고 싶다면, 시중에 관련 서적들이 잘 나와있으니 독학으로 하셔도 무방합니다.(단, 이것을 생업으로 하시겠다거나 본인의 업무 또는 다른 수익을 창출하고자 할 시에는 반드시 협회에 등록된 강사나 다른 정식 루트를 거치시는 게 안전합니다.)
- 이거 왜 해요?
사람들이 원하는 다양한 지혜들이 있습니다만, 역시 먼저 알아 대비하거나 먼저 알아 피해 가는 지혜들에 대한 욕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각양각색의 믿음과 추종을 가지고 그런 것을 빌어오려고 하죠.
하지만 전 정말 타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배웠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말문이 막히는 사람들의 말문을 열기 위한 매개체가 필요했던 것이죠.
이것이 똑똑한 선택이었는지는 처음에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내 자신이 똑똑해지는 것도 아니고 남을 똑똑하게 해주는 것도 분명 아닌데 왜 그렇게 뭔가 똑똑해지는 기분이 드는 건지도 똑 부러지게 설명하지 못했죠.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난 뒤에 확실히 알 수 있었던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타로카드 하나를 가지고도 우리는 정말 서로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데다 때로는 그동안의 어떤 이야기들보다도 큰 영향력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요.
이게 뭐라고, 고작 카드 몇 장이 그동안의 관계를 재정의하고 일어났던 일을 해석하며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보는 연습까지도 해보게 된다는 것이죠. 그것은 분명 어떤 사람들을 더 똑똑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만들어주니까요.
무엇보다 소중한 경험은, '투머치토커'인 이 멸종각이 3시간씩 이야기를 멈추지 않아도 사람들의 눈이 졸림과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죠.
제 말주변이 능수능란하다는 게 아니라 타로로 푸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바로 상대방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지는 게 좋으니까요.
타로는 아마 처음으로 '나'라는 프리즘으로 걸러지지 않는 '너'의 이야기 그 실타래를 만들어준 매개체였던 것 같습니다. 그건 그저 발에 치이는 주변 답정너들에게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소음들로부터 독립된 '내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는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이제 와서 생각해봅니다.
그들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었어도 아니, 바로 내 주변에 있는데도 한 번도 속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던 소중한 사람들이라도 타로를 통해 함께 들여다본 건 바로 당신이라는 우주 그 자체였습니다.
때로는 너무 반짝이고 때로는 너무 출렁거려도 바라보는 것만으로 신기하고 깊은 어떤 세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