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진짜 원하는 게 무언지 먼저 물어야 하는 이유

먹고사니즘과 자아실현 사이를 떠돌다 by 멸종각

by 유유히유영
먹고사니즘

대놓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 언제가부터 우리 삶 전체를 쥐고 흔드는 신념이다. 어떤 정의도 그 앞에서는 고갤 숙이고, 어떤 믿음도 어깨를 늘어뜨리는 강력한 이유이고 목적이고 전부인 그런.


물론, 옛말에 사람은 모두 자기 밥숟가락은 가지고 태어난다고들 했다. 그래, 맞다. 요즘엔 그런 말을 하면 곧 등골이 따갑다. 10억 원이 생긴다면 나는 주저 없이 감옥이라도 가겠다는 대답이 반수가 넘어버리는 젊은 세대에게 먹고사니즘은, 그저 그것만으로 압도되는 명분이고 신념이다.


자아실현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이루지 못하는 개인이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 아주 스펙타클하게 설명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먹고사니즘과 자아실현의 충돌이 어떤 모습을 낳고 있는지 말이다. 무엇으로 설명해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만, 실상 그 실체를 파악해서 모두에게 설명하긴 낯부끄러운 이야기다.


"자아, 뭐? 풋"
"그런 것쯤."


그런데, 점점 ‘그런 것쯤’ 하고 지나갈 수 없는 세상이 온다. 아니 왔다. 누군가는 반대급부라고 생각할 수 있고 누군가는 이마저도 그저 한때의 트렌드라고 치부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 아마 한동안은 어떤 매체로 대체되더라도, 다음 세대들 꿈이, 목표가, 미래의 표상이 ‘유튜버’인 시대다. 연예인이나 국민 영웅보다 1인 방송 크리에이터가 훨씬 매력적인 시대라는 얘기다.


그게 뭐 대수냐고? 애들 꿈이 다 그런 거 아니냐고? 글쎄 이덕화도 유튜버를 꿈꾸는 시대에도 그저 당신은 공무원이 대세라고 이야기할 텐가? 훗, 좀 비웃어도 용서하시라. 자아실현이 곧장 먹고사니즘을 위협할만한 시대에는 이딴 광대짓은 멸시 당했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이 콘텐츠 범람 시대엔 자기를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부를 창출하고 넉넉히 누리는 체계가 생겼다.


그런 생태계가 생기자마자 곧장 목표가 수정될 수 있다는 건 자아실현이 그렇게 값싸게 취급될 일은 아니었구나. 그렇구나. 하며 옷깃을 여미게 된다. 우리는, 꿈이 멸종되는 시기를 지나왔다. 장기불황과 유동성의 위기따윌 몰라도 한끼를 제대로 챙기는 게 얼마나 엄혹한 일인지는 바로 알 수 있다.


고작 그런 이유로도 그랬다.


정체성의 위기는 누구에게나 오는데 정체성을 확립하는 건 극소수인 시대를 관통하며 생긴 굳은살을 떠안고 푸념과 한탄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던 시간들을 지나왔다. 그런 시대를 지나오자마자 나 자신이 곧 상품이 될 수 있다면, 모든 걸 내던지기도 하는 흐름이 생겼다.


왜일까? 세상이 변해서? 기술이 발전해서?

우리가 진짜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물어볼 때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