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상인가! 인생인가?

프로불편러라 불편한 그의 시선 by 멸종각

by 유유히유영

이거야말로 진정 웃긴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이 더 가진 자들, 더 높은 자들, 더 힘 있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그들이 좀 더 명석하고 너그러우며 모범적인 사람들로 서서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약자들에게 베풀 수 있도록, 무엇보다 가진 것으로 횡포를 부리지는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이는 매우 역사도 깊고 때로 의무 지워진 기도 제목이어서 정말 많이, 그리고 오래들 해왔다.


허! 아마 그보다 좀 더 많은 사람이 함께 본 영화가 극한직업일 듯싶다. 모든 장면을 그저 웃기겠다는 욕심 하나만으로 찍은 것 같다는 이 영화는, 한국영화 사상 길이 남을 진기록을 관람객 수를 찍었다. 나는 그렇게까지 웃을 수 없었던 사람인데, 이유인즉슨 바로 그 '극한직업'이라고 명명되는 누군가의 일상들이 엿보여서였나 보다. 그래, 오열 장면마저 웃기게 찍은 그 영화를 보면서 말이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목숨을 거는 건데, 이젠 경찰도 아니라매"라고 소리치는 범죄자 앞에서, 별안간 "대한민국 소상공인은 매일 목숨 건다 이 삐리리야!"라는 뻘소리를 하는 구간에서는 미간도 찌그러졌다. '힘없는 자들은 매일 목숨을 걸고 일상을 살아내며, 권력자들을 위한 기도까지 드리며 사는데.' 으득으득 부글부글하며, 그런 생각이나 하고 앉은 내가 쉽게 웃을 수 있는 감성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저마다 극한을 끌어올리고 사는 요즘, 우리는 심심하면 터져 나오는 갑질 소식에 파묻혀 산다. 으레 '가진 놈들이 다 그렇지'라고 하기도 한다지만, 그 충격은 늘 신선하고 적나라하다. 사람(뭐 시체라는 설정이지만 변화무쌍하니까)이 사람을 씹어먹는 이야기가 가장 인기를 끄는 '좀비시대'라지만,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그렇게까지 하는가 싶은 이야기도 만만찮은 인기인 날들이다.


갑질!

분노의 싸다구!!

인격모독!!!

철 지난 시나리오의 구닥다리 연결 구조같이 변화도 없고 재미도 없는 이 이야기는 출연자만 바뀌어도 매번 폐부를 찔러온다. 그것이 우리네 모두의 일상에서도 반복되는 현실이라서 그럴 것이다. 집주인에게, 직장 상사에게, 집안 어른에게, 하다하다 지나가던 고딩(?)에게.(아니, 요즘은 초딩까지 내려왔다지?) 아무튼 우리는 자기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주눅부터 들기 쉽다.


감정노동자들의 이슈가 불거져 나올 때마다, '아, 우리가 경험하고 생각하는 수준의 갑질이 저렇게도 우리 삶을 비집고 들어오는구나' 싶겠지만, 그런 것을 뛰어넘는 땅콩 회항의 시대는 일상을 오히려 그럴싸한 해프닝으로 만들어주니 재밌어들 하는가 보다.


나는 아주 많이 분노한다.

직장 상사에게 번듯하게 개기지도, 집주인에게 되바라지게 요구사항을 전달하지도, 집안 어른들에게도 딱 부러진 의사 표현을 못하지만, 아주, 아주 많이 분노한다.(아, 물론 지나가는 초딩이든 고딩이든 지나가게는 두지만.) 일상에서 마주치는 아주 사소한 갑질조차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그 순간들이 모여 결국 내 인생을 명명하고 좌지우지하며, 결국 나라는 인간의 자긍심과 자존감 모두를 더럽히기 때문이다. 법으로 따끔하게 혼내주고 사회가 합의하여 좀 머쓱하게나마 적당히 고쳐주면 좋겠는데 이 빌어먹을 세상은 안 그러니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 갑질의 욕망을 모두가 실은 조금씩 나눠 가졌기 때문이다. 당한 게 억울한 만큼 모두가 다시 자기가 휘두를 수 있는 약자를 찾아 헤맨다. 좀비들처럼 뜯어먹을 살점을 찾아 기어서든 부리나케 뛰어서든 두리번거리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이라도 서로 아귀다툼을 하며 극한의 오늘을 버틴다.


나는, 다시 말하지만, 정말 많이 화가 난다. 가장 인간답지 못한 욕망이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모두를 유린한다는 기분이 들면 참을 수 없다. 우리가 그렇게 헐뜯고 나무라는 가진 자들의 횡포와 우리네 작은 욕망의 찌꺼기들이 무엇이 얼마나 다를까 싶을 때, 나도 똑같은 인간이구나 싶을 때, 그 모멸감을 참을 수 없다. 그런 일상들이 내 인생을 수놓고 스며드는 게 싫다. '갈비 맛 통닭'이 밥도둑이 되는 것 마냥, 내 갑질의 욕망도 내 인생을 송두리째 가져갈 것만 같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진짜 원하는 게 무언지 먼저 물어야 하는 이유